여자는 여자가 낳고 남자는 남자가 낳았으면 좋겠다
첫째와 둘째는 세 살 터울이다.
곧 태어날 셋째 역시 둘째와 세 살 터울이 될 터였다.
셋째 정도부터는 출산 하나로만 출산 이야기가 꾸려지지 않는다. 큰 아이들이 매사에 끼어있다.
셋째 아이가 아들로 확정될 때 딸들은 아직 어려서인지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큰애는 여동생이 있는데 남동생까지 생겨서 좋겠다는 말을 듣곤 했으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건가보다 했을 것이다.
큰딸은 무심하기로는 그 기원이 태중일 것이라 추정될 정도로 시종일관 무미한 아이였다.
"얘는 왜 표현도 잘 못하고 항상 시큰둥할까"
(질문이 아니라 불만)
겨우 대여섯살 먹은 아이에게 무심하다니, 사람에게도 각자 태깅된 유형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린 사람이라고 누락시킨건 큰 오산이었다. 큰딸이 기질적으로 표현을 잘 안하고 내성적이라는 건 아이의 형질이 보다 명확히 드러난 초등 고학년쯤 돼서야 인정한 부분이다.
(같은 문제로 걱정인 부모가 있다면 한마디 해드리고 싶다. 소심한 어린아이는 신중한 큰 아이가 된다. 부모의 대응 태도에 따라 신중히 선택하는 아이가 될 수도 신중히 포기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을 뿐이다. 그러니 반응이 무심해 보인다 하여 칭찬과 리액션을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셋째의 출산 이야기에 큰딸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이유는 그 아이에 대한 연민 속에서 임신막달을 보냈기 때문이다. 좀처럼 속엣말을 하지 않고 무뚝뚝했지만 엄마의 무거운 배를 제손으로 받치며 걸을 정도로 끊임없이 나를 아끼고 사랑을 표현하던 아이였다. 반면 나는 큰딸에 대해 생각한다면, 왠지 모를 답답함과 화도 서려있고, 미안함과 후회도 있었으며, 종국에는 자책과 회한이 밀려왔다.
뭐, 그렇다고 관계에 그림자가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큰딸이 태어난 후 지금까지도 이 아이를 사랑하는 크기와 맞먹는 걸 유무형을 통틀어 본 적이 없다. 애증에 앞서 나의 자격지심에 기인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육아도 살림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뭐가 찝찝한건지도, 그 문제를 해결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게 최선이라고 스스로 방어하며 외면했다. 큰딸의 냉소를 안아주기는 커녕 도리어 안기고 싶었다. 그 아이를 보는 것은 거울을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마주함이었다.
그래서 유독 셋째의 출산과 육아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뭔가 내가 다양한 분야에서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뭔지는 모르겠는 불안함과 자격지심. 특징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을 더 하게 되는 바, 셋째 출산일엔 남편과 싸우기까지 하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셋째는 남편이 탯줄을 잘라주지 못했다.
분만현장에 없었기 때문이다.
싸워서는 아니고, 남편에게 도저히 취소할 수 없는 일이 있어서 금방 다녀오려 한 것이 길바닥에서 몇 시간을 버리는 통에 출산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다. 셋째 분만이라 금방 될 줄 알고선 계획을 잘못 세우기도 했다. 이쯤 이쯤 분만 끝날테니 저쯤 저쯤 다녀오면 좋겠다고 했던 것이다. 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좀처럼 아이가 내려오지 않아 더 예민해진 상태로 감정싸움이 오고 갔다. 도중에는 그만 떠들고 애 낳는데나 집중하랜다. 이게 집중해서 될 일인가. 오로지 내 몫으로만 밀어 넣고 채찍질해대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했다. 실타래를 풀어야 집중을 하든말든 하지, 이 정도의 상처는 남편의 칼부림 언어 베스트 10 안에 족히 들어갈 수준이다. 분만을 함께 하려는 마음에 나온 말이라고 애써 잊어보려 했지만 이미 또렷해져버렸다. 우리가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어쨌든.
경산일수록 진행이 빠르다고 하는 건 보통은 이런 식이다.
진통이 계속 잔잔하게 있다. 자궁문도 잔잔히 열린다. 그러다가 7할이든 8할이든 내 몸이 허락한 시점이 되면 그때부터는 사정없이 페달을 밟는다. 베개를 쥐어뜯기 시작할 때부터 갑자기 진행이 빨라지다가 베개솜이 끌려 나올 정도가 되면 머리가 보인다. 소모되는 힘이 집약적이며 짧고 굵다. 베개커버를 단 몇십 분 만에 해지게 만들 정도다. 직전의 잔잔한 진행이 나지막이 내려놓은 평균속도를 순식간에 쳐올려버려 그 결괏값이 '경산은 빨라요'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분만을 마친 경산부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게 된다.
"어디를 갔다온거 같아..."
아까와 지금 사이의 작은 시공간은 여기에 있지 않다. 저세상에 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세상을 보고 왔어."
"미안해.."
이번 출산은 셋째라는 특수성(?)이 있어 막달에 특히 좀 예민하게 굴었던 면이 있었다. 셋째니까 의례 일찍 나올 줄 알고 툭하면 가진통에 속아 가족들을 긴장에 빠트린 일도 많았다. 시어머니께서 갓 태어난 아기를 보고 싶으시다며 출산예정일에 맞춰 올라와 계셨는데 그래서 더 빨리 낳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죄짓는 것 같았다. 하지만 소식은 더디기만 했고 어머님께선 머무를 수 있는 최대한의 기간을 채우고도 신생아를 보지 못한 채 아침 일찍 빈 마음으로 가셨더랬다. 그런데 그날 오후, 여차저차의 이유로 갑자기 유도분만을 하게 된 것이다. 어머님은 공항에서 다시 발길을 돌려 혼자 있던 내게로 오셨고 마침내 극적으로 손자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