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유 Oct 23. 2024

10. 6년이 만든 소실점

압축폴더를 풀어보니 자유로움이 해제됐다

셋째 아들이 태어나면서 우리는 중고등학교 졸업식이 겹치면 어쩌냐, 제비뽑기를 해야된다는 둥 먼 미래를 두고 우스갯소리를 나누었다. 각 3년의 시간차로 그들은 형제가 되었고 나는 명실공히 다자녀엄마가 됐다.(지금은 두자녀부터 다자녀라죠.)




사실 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구간이 바로 이 시점의 이야기이다. 세 자녀 이후의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넷째는 어떻게 생기게 된 건가요?


이 질문에만 답하자면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지만, 셋째와 넷째 출산 사이에 무려 6년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할 수가 없다.

그 6년을 나는 어떻게 보내왔는가.


둘째 임신 포기할 때부터 복직한다더니,

6년이면 하고도 남았겠네?



그러지 못했다.


첫째, 3년의 터울이 주는 연속성

상당수 워킹맘들이 자녀의 초등 저학년 시기에 육아휴직을 낸다.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학교에 들어가는 8살 정도가 되면 내 손이 많이 필요 없지 않을까 해서였다. 대단한 오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가 7개월 정도 됐을 때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왐마, 챙겨야 할게 왜이리도 많은가. 또 학교는 니가 입학한건데 내가 다니는 거 같다. 가나다라마바사, 일 더하기 일을 배워오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가족신문을 발행하기 위해 아이의 외할머니에게 인터뷰를 요청해야 했다. 아이의 친구 엄마들을 컨택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핫케이크 맛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야 하는 과제도 있었다. 권장도서목록을 들고 도서관을 돌아다니고 때론 우산을 들고 학교로 달려가야 했다. 등교시켜놓고 뒤돌아서면 하교할 시간이다. 배움의 터전인 학교는 교과서 안에 있는 수업보다 사회적응센터 1기 체험수업과 더 비등했다. 그 와중에 모유수유 하는 아기를 끼고 있어야 한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리고, 첫째가 제법 초등학생티가 날 때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이 상황은 3년 뒤 또 올 터였다.


둘째, 지워진 나의 지도

특정한 재주가 없지만 단순업무라도 해보기 위해 도보권의 일터에 이력서를 내보곤 했었다. 나의 특기도 반영돼있지 않고 급여는 왜소했으며 결정적으로는 성장의 기회가 전무한, 그저 일을 위한 일을 찾는 것을 보고 남편이 번번이 실망하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가정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면 지금 당장 돈벌이가 안되더라도 미래를 보고 성장할 수 있는 나만의 강령을 만들어 나아가는 게 맞다.

하지만 들어앉아있다고 해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블로그를 해본다던지, 재테크를 심도 있게 공부해본다던지, 최소 남편이 권유하는 몇 가지를 시늉이라도 해봤으면 좋았을텐데, 경력단절이 오래되서인지 마냥 무섭고 자신이 없었다. 이건 이래서 안 될 것 같고 저건 저래서 포기, 합당한 이유랍시고 둘러댄 건 "나 그거 잘 못해" 또는 "애들 때문에 안돼"였다. 가장 비루한 변명일 것이다. 못한다고 평가받을 게 두려워서 싫었다.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던지 이미 실패한 죄인마냥 지냈다. 찌질이의 표본이랄까.


셋째, 아들의 느린 육아

첫째는 4살 때 처음 어린이집에 입소했다. 입소 당시 나는 둘째 임신 7개월쯤 됐었는데, 아마 임신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가정육아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둘째는 3살 때 입소했다. 복직이라는 목적이 있는 입소였다. 곧 마치 일을 안하겠다고 선언하는 모양새로 셋째를 임신하게 됐지만...

그런데 셋째 아들은, 5살이 돼서야 기관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많지만 모두 각설하고, 아들이 주는 불안함에 기인한 느린 육아였다고 요약해 보겠다.


넷째, 실은 넷째 아이가 잠시 들렸었다

그 그리움을 이겨내지 못했다.



이런 연유들로, 아니, 이런 연유들의 동시다발로 6년이 그렇게 긴 기간은 아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자유로움'을 하루의 반나절 지속할 수 있을 때가 되자, 그리웠던 넷째 아이가 다시 돌아왔다.




자유로움이란 무엇일까.

생각할 게 눈앞에 없으면 자유로움이라 하는 걸까.


보이는 것들은 상이 맺힌다.

눈을 열어 머릿속으로 들어와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로움이란 눈을 감아야만 이룩할 수 있는 유토피아인가.

아니었다.

삶의 다단함 속에서도, 비단 그것이 의도치 않았음에도 겸허히 수용하는 것.

내면의 통제가 규율을 갖고 성숙함을 잃지 않는 것.

귀환한 넷째 아이가 들고 온 선물이 외려 실재하는 자유로움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아가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