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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Oct 24. 2024

11. 완성된 완결

부루마블이 미션 파서블이 될 때까지 일단 행복할게요.


첫째 아이부터 넷째 아이까지

항상 이번 녀석이 출석부의 마지막 이름이라 규정해 왔다.

이렇게 규정위반이 빈번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결말엔 자유로움이 있었다. 법경이 말하는 열반의 경지와 그 맥이 비슷하다.


가끔은

만약에 혹시 만약에 다섯째 아이가 생긴다면 그때도 자유로움을 정의할 수 있을까 하는 자문을 해본다.

감정의 방종을 탈곡하고, 내려놓음과 물러섬을 삶의 도리로서 가다듬은 '나의' 자유로움이었다. 그래서 자녀의 수는 나의 자유로움과 관련이 없어졌지만, 여기서 더한다면 욕심을 넘어 탐욕일 것이니...(돈이 없다는 말) 다섯째 아이, 그것은 내게 유니콘 내지는 그리핀 같은 존재다. (그런 건 없다는 말)




넷째 아이가 내 작은 세상에서 떠나가버렸을 때, 장마철의 폭포수처럼 참 많이 울었다. 울다 울다 배가 고파지니 그게 또 망령스러워 배를 안고 한참을 더 울었다. 남편은 아내를 위했음이 도리어 비탄의 포털이 돼버린 현실 앞으로 매일같이 퇴근해야 하는 일상이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옆을 지킨다.

참으로 야속하고 냉정했으나 중도엔 배포 있게 기억을 미화시켰다. 고마운 일이긴 한데, 작은 생명이 남기고 간 그리움은 오랫동안 내 안에서 고요히 머물고 있었다. 아마도 다시 올테지, 아무렴 다시 오겠지, 분수대에 동전 던지며 빌어보는 소원마냥 무게감이라곤 전혀 없는 그리움의 마지막 장에서, 넷째가 다시 나타났다. 다시 안오려고 했는데 꼴보기 싫어서 왔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넷째 딸이 태어났고,

난생처음 겪는 산후조리원 생활을 성황리에(?)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가 한창때라 면회를 못했었는데 오랜만에 아이들을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얼마나 보고싶었던지. 그저 내게 손 한번 흔들어주겠다고 조리원 앞을 찾았던 아이들이었다. 엄마의 부재로 혹시나 정서적 빈곤을 겪진 않았는지 측은함도 들었지만 아이들은 외할머니의 사랑 덕분에 더 풍성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작아."


겨우 팔뚝만한 생명체가 그저 신기하다며 옹기종기 관찰하는 아이들.

비대면수업이 일상이 되어 나 대신 아기를 안아줄 사람은 많았다. 나는 더 바빠졌으며 그건 넷째가 태어나서라기보단 네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터울이 있으니 망정이지, 이 아이들이 연년생이거나 쌍둥이들이었다면... 다면.. 음.. 아무튼.



우리는 셋째가 태어났을 때와 똑같은 말투로, 졸업식이 겹쳤을 때 어찌할 것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입학식은 전국공통 3월 2일이지만 부모는 보통 초등학교 입학식에만 참석합니다. 근데 졸업식은 다 가야죠..)


"얘 1학년 되면 쟤도 1학년이고 쟤도 1학년이고 나도 1학년이야."

넷 중 최고학력자 맏이(초6)의 계산력으로 재미있는 고민이 쏟아졌다.


"이제 넷이서 부루마블 하면 되겠다!"

아직은 막내에서 완전히 못벗어난 셋째(유치원생)의 미션임파서블도 계속됐다.


"야. 쟤는 먹거나 뒤집어놓는다고."

제2의 엄마 작위가 설정된 둘째(초3)의 통찰력 있는 분석은 그 뒤를 따랐다.


"끄엥!"

넷째 아기는 숨쉬기에 매진했다.




그로부터 오늘

어느새 4년이 지나 있다.

현재 유초중고 아이들은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있다.

그리고 큰 딸의 말처럼 머잖아 한날 한시에 초중고대 신입생이 될 것이다.


건강하게, 그렇게 컸다.


아이들은 때로 슬픔과 분노 속에서 삶의 울타리를 지을 테며, 때로는 기쁨과 환희 안에서 삶의 집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대로 매일같이 넓어지는 그들의 세상과 마주하겠지. 목적도 목표도 한계도 그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나의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비록 꽃길이 아닐지라도 부드럽게 디딜 것이며, 비바람에 흔들릴지언정 꺽이지 않을 것이다. 나무가 생장해 열매를 맺고 떨어뜨리고 다시 돋아나듯, 그들 각자의 걸음마가 위대한 날갯짓으로 성장해 나가리라 믿는다.

또한

12년 동안 이뤄진 임신과 출산, 17년간 이어진 양육의 현장에서 나 역시도 수없는 자아의 퇴고를 거치며 완성되어가고 있음을 감격하며, 이 글을 마친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는 다자녀 일상을 그려보려 했었는데, 어떻게 네 명의 자녀가 생기게 된건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셔서 뒤늦게나마 로그를 남겨봤어요. 그래서 이 시리즈는 다자녀 가정의 일상생활과는 무관한, 임신출산만 특정하여 다뤄본 다자녀탄생기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단히도 거슬러 오르며 한 편을 모아보았으나 완벽하지 못한 기억의 편린으로 어떤 아이는 분만의 현장을 이야기하고, 어떤 아이는 내면의 투시를 이야기하게 되었네요.
속전속결로 전개하느라 허술한 부분도 많고 마무리도 급작스럽긴 합니다만(시작해서 나흘만에 끝냈습니다.) 다자녀 탄생 궤적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더는 찌우지 않고 이쯤에서 끝내볼까 해요.

그리고 이 연대기를 브런치북으로 묶으려고 합니다. 1편부터 봐야 재미지니까요.ㅎ

다자녀 일상은 매거진으로 계속해서 올려볼게요. 더불어 자매품 '일상쪽지' 연재브런치북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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