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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리 Aug 11. 2022

데드리프트

'할 수 있다'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컨벤셔널 데드리프트를 처음 배운 날, 피티 선생님은 "오 잘하는데요?"라고 말했다. 두 번째 배운 날도 자세가 좋다며 바로 무게를 10킬로 올려 50킬로를 들었다. 그러면서 "70킬로까지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다음번에는 좀 익숙해질 테니 올려봅시다!"라고 했다.


이 말에 그만 신이 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피티 선생님으로부터 '아무리 운동 신경이 별로여도 노력하면 나아진다는 것을 증명한 회원'이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잘 하는 웨이트가 있다니! 얼른 70킬로를 들고 싶었다. 자신감에 가득 찬 상태로 혼자 데드리프트를 연습했다. 이십 킬로짜리 바를 꺼내는 것조차 끙끙대면서도 '나는 70킬로도 들 수 있는 사람이니까!'하고 씩씩하게 세팅을 했다. 몇 번의 웜업 세트를 하고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뭔가 약간 어정쩡한 느낌이지만 일단 잘 들리기는 했다. 원래 새로 배운 운동을 할 때 처음엔 자극점이 잘 안 찾아지고 적응 시간이 조금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무거운 걸 번쩍 드는 스스로에 취해 50킬로를 여러 번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세트까지 허리와 골반에 어정쩡한 느낌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허리 통증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동안 허리에 통증이 갈 만한 운동은 못 하게 되었다. 운동능력을 간과하고 욕심을 부려서 다치게 된 것이다. 이날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마음만으로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는 거란 걸 알게 되었다.


한계란 극복해나가야 할 대상이고 스스로에 대한 한계를 정해놓지 않아야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살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한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웨이트를 하며 한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다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로 욕심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도 말이다. 생각해 보면 웨이트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인생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예상치 못한 일에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얼마나 미미한지, 욕심에 비해 실력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마주하게 된다. 내 주제를 모르고 덤볐을 때 깨지는 것도 나다. 객관화가 되지 않은 상태의 도전은 뼈저린 실패로 이어진다. 그 실패는 때로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할망정 후퇴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나의 한계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그 한계는 '현재 나'의 한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은 현재 시점의 한계이지, 영원하지 않다. 웨이트에 그런 말이 있다. 15개의 동작을 할 때 힘들어 죽겠는 마지막 3개가 사실상 진짜 운동이라는 말. 근육은 찢어지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찢어질 듯 아파야 성장을 한다는 말이다. 모든 피티 샘이 '한 개 더!'를 외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렇게 진짜 죽을 것 같은 15개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16개가 가능해진다. 이제 더 이상 나의 한계는 15개가 아니다. 16개인 것이다. 미래의 나는 20개도, 100개도 할 수 있는 사람일 수 있다.


여전히 나는 내가 언젠가 100킬로로 데드리프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내일의 나는 다시 50킬로를 도전한다. 그게 지금 나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되 가슴 한 편에는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을 마음껏 열어둔 자세로 운동도 삶도 열심히 해나가고 싶다.



+그리고 진짜로 나는 70키로 데드리프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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