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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Dec 27. 2021

‘치킨과 키친이 헷갈리는 여자’


일본 작가 ‘요시모토바나나의 키친’ 애정한다.

특유의 차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

문장 한 줄 한 줄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나와 부엌이 남는다. 나 혼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 그나마 나은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기진맥진 지쳤을 때, 나는 문득 생각에 잠긴다. 언젠가 죽을 때가 오면, 부엌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고. 홀로 있어 추운 곳이든, 누군가 있어 따스한 곳이든, 나는 떨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고 싶다. 부엌이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한다.  '   <요시모토바나나 키친 中>     



부엌, 일본어로 키친, 다이도코로라는 단어도 있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외래어 비중이 커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부엌의 의미는 키친이 차지하게 되었다.

스물살 때부터 일본어를 공부했다. 누군가는 애니메이션을 자막 없이 보기 위해, 혹은 게임설명서를 읽기 위해 공부했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일본어 자체의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일본 문화에 빠진 경우다. 애니메이션보다는 그들의 잔잔한 일상의 드라마같은 소설이 좋았다.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일본어 특유의 맛이 있다. 요시모토의 작품에 빠져들어 주변 일본어를 공부하는 동기, 선후배들에게 추천해주기도 했다.      

“요시모토바나나, 치킨 읽어봤어?”

“치킨이 아니라 키친이 아닌가?”

“.......................” , 이런....     



픽사베이 무료이미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외래어에 대한 두려움이 시작된 것이...

의도하지 않는 상황에서 비스무리한 외래어를 혼돈해서 사용한다.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름 가방끈을 길게 늘여놓은 여자인데 백치......미까지도 아닌 그냥 백지상태의 지식창고가 탄로 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공들인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은 그닥 유쾌하지 않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유머러스하게 웃어넘기기는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한번은 이런 적도 있다. 햇살 좋은 봄날, 잘 보이고 싶었던 남성분과 돌담길을 산책하고 있었다. 선거철이었던 그 당시 주요 벽마다 후보들의 벽보가 붙어 있었다. 어느 후보를 지지하냐는 말이 오고 갔고, 그때 당시 지지하지 않았던 한 후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믿음이 안 가요. 왠지,  이 사람, 사이버같은 이미지에요.”

“.........음.........., 사이비요?”

“.............................”, 얼음, 정지화면, 진땀, 순간 머릿속에 까악까악 소리와 함께 까마귀 100마리가 날아간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강의를 하다가 ‘키친’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긴장된다. 혹시나 ‘치킨’이라고 할까봐.

이 순간엔 국어를 몹시나 사랑하여 틀리게 사용해도 당당함으로 맞설 수 있는 의식있는 여성인 척하고 싶다.       



“치킨 타올 좀 가져다 줄래요?”

오~마이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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