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결심하다.

저장강박증 엄마와 살고 있습니다.

by 생각잡스 유진


“휴~”

토요일 아침 나도 모르게 한숨이 늘었다. 아이셋을 돌보고 공부방 일을 하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다. 그것보다 나를 죄어오는 건, 남편과 엄마 사이에서 애쓰고 있는 내 모습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공기 속을 숨죽여 지냈다. 감정을 억지로 속이고 늘 즐거운 듯 생활했다. 종일 수업으로 지쳐 말 한마디 하기 싫은 날도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 쉴새 없이 재잘거린다.

그래야 잠시 현실을 잊으니깐.

남편과 엄마는 이런 내 마음을 알지도 모른 채, 실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니 푼수라고 한다. 늘 실없이 떠들고 웃는다고.

눈치 많은 아이로 자란 탓에 눈치 없는 척하는 행동을 많이 한다.

‘모든 걸 다 알고 있어’라는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면 부담스러울까봐 일종에 사람들을 배려하는 나만의 태도다. 이건 아주 어릴 때부터 생긴 버릇이다. 실없는 말, 실없는 농담. 실없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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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설거지를 하다가 너무 지친다는 생각이 한번에 몰려왔다.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하루하루를 너무 애쓴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지?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집에서 조차 내 목소리를 못 내고 눈치를 보고 사는 내 모습에 숨이 턱 막혀왔다.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아니 안 하는 내 성격도 싫고, 나 하나 참으면 모든 게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 가족들의 선 넘음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휴~~~~~~~~.” 이번에는 더 길게 내뿜어 본다.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답답하다.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사를 결심했지만 당장 집이 나가지도 않고 마음만 들떠 있다. 현실에서 더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 커졌다.



‘그래, 내가 이 집에서 벗어나야겠다.’

모든 화살을 남편에게 돌렸다.

그동안 참아오면 살았던 일, 남편 역할을 다하기 보다 밖으로만 나돌려고 하는 그 사람이 원망스러웠다. 시작은 분명 이게 아니었을 텐데 이미 화살의 방향을 틀었다.

‘못 살겠다. 이대로는.’

내가 결혼 생활을 끝내야 엄마도 제자리로 가시지 않을까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지금 하는 일을 정리하고, 재산분배는 방 한 칸 얻을 정도만 가져가고, 아이들은 무조건 모두 데려가야겠다. 가급적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곳으로 가서 그곳에서 새롭게 시작해보자.

지긋지긋하다. 이 현실이. 애씀이.

즉흥적인 행동이었다. 가방을 쌌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물건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거실에 있던 엄마가 물으신다. 어딜 가냐고.

분명 집을 나갈 생각이었는데 엄마의 질문에 여행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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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여행 가자, 엄마. 강화도로.”

“언제 준비한 거야.”

“아..오늘, 그냥 애들하고 가보지 뭐.”

급하게 당일 방이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동막해수욕장에서 10분 거리에 하얀색 목조건물로 되어 있는 펜션에 방이 있었다.



여행가방 한가득 애들과 나, 엄마 옷을 넣고 강화도로 향했다. 여름이라 해수욕장에 사람이 가득했다. 갯벌체험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캐는 사람들, 모래놀이를 하는 아이들,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바다라며 소리치던 차 안의 아이들도 즐겁긴 마찬가지다.



펜션과 해수욕장이 가까운 게 좋았다. 하루에 한 번은 해수욕장에 나와서 아이들을 맘껏 놀게 해줬다. 집에만 계셨던 엄마도 아이들과 함께 조개 잡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평화로웠다. 숨을 쉴 수 있었다.

눈치 보는 나의 모습도 없고, 짜증을 부리던 남편도 없다. 물건을 모으는 엄마의 모습도 없다.

이 모든 건 어쩌면 남편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혼을 한다면 이렇게 매일이 평화로울 것이다. 생각은 이미 다른 방향을 향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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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예지 엄마, 오랜만이야.”

신혼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으로 친하게 지내던 이혼전문법률사무실에 다니던 예지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형님, 잘 지내셨어요?”

“혹시, 사무실에 이혼 서류 있어.”

“아.. 있죠. 형님, 그런데 이혼 서류가 왜 필요하셔요?”


“아.. 나, 이혼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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