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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Jan 18. 2022

지금 놓치고 있는 건 없나요?


“3개월 남았습니다. 수술하셔도 의미가 없고, 항암치료로 생명을 연장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건강이라면 자신만만하던 든든한 지지자인 아버지가 대장암 4기 그것도 말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었다.           

평소에 건강에 대한 자부심으로 그 흔한 검진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가 어느 날 전화를 걸어오셨다. 서울 큰 병원에 가보고 싶은데 대장 쪽을 잘 보는 곳을 알아봐 주시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때가 큰아이 출산 한 달 정도를 남겨둔 9개월 만삭 때의 일이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녹색 창에 검색하여 대장암 연구센터가 있는 병원으로 예약했다.

시골 병원에서는 괜찮다고 하는데 그냥 찝찝한 마음에 한번 검사해보고 싶은 산다는 것이다. 사람의 예감이라는 것은 불길할수록 더 뽀죡하게 잘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모든 검사를 마치고 시골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터미널에서 걱정으로 안색이 안 좋은 아버지에게 별일 없을 거니 걱정하지 마시고 결과는 나 혼자 가서 듣고 오겠다고 했다.

결과가 나오는 당일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하철로 이동해서 갔다.

당시 30㎏ 이상 불어난 몸무게는 내 삶 자체도 가볍지 않게 여길게 해줄 만큼의 무게였다.

‘별일 없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아버지가 얼마나 건강한 분이신데, 절대 그럴 일 없어.’

대기 순번이 돌아올 때까지 기도문같이 주절거리며 아무렇지 않은 듯 평온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내 차례다.

의사는 다급하게 당장이라도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할 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차분하다. 일단은 안심된다….     

“3개월 남았습니다. 수술하셔도 의미가 없고, 항암치료로 생명을 연장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아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에 듣고 있는 나도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다양한 환자들을 겪으면서 이런 일쯤은 수십 수백 번의 경험이라는 듯한 의사의 표정이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담담하게 진료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몇 분인가를 소리 내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 대기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겨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곁에 있는지를 여쭤보고 조용히 밖에 나와서 들으시라고 했다. 이 엄청난 소식을 꺽 꺽 거리며 울며 겨우 전달하고선 엄마에겐 아버지에게 그대로 말씀드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둘째 동생에게 다급하게 전화해서 이 사실을 알리고 오진일 가능성도 있으니 다른 병원도 예약해보자고 했다.


2주 뒤 다른 병원에서의 재검이 이루어졌다. 말기 결과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아버지를 살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해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래도, 수술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대장에서 시작되어 간으로 전이가 된 상태여서 상황은 좋지 않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최선을 다해보겠다.’    


아버지의 수술의 첫 수술이 이루어졌다. 수술은 만족할 만큼 잘 되었지만, 간이 문제였다. 70% 이상 전이된 상황이라 수술로는 힘들고 항암으로 크기를 줄여나가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힘겨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프다는 것은 어떤 일도 별것 아닌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이보다 더한 일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가던 가족들이 아버지의 병으로 삶 전체를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다. 가족 모두가 한마음으로 아버지의 치료에 매달렸다. 그리고 아버지는 4년 정도를 우리 곁에 더 머물러 주셨다.      



내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34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었다. 돈과 명예는 노력으로 얻을 수 있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다.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암 선고 이후 4년 동안 아버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아버지가 건강하실 때 더 자주 찾아뵙고 많은 추억을 쌓아둘 걸 하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 후회는 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더 크게 남아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현재를 살며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놓치며 살아가는 게 너무나도 많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바로 여기, 내 옆에 있는 사람이다. 그것도 가족이라는 것을.  

늦게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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