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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Jan 19. 2022

꿈꾸게 해 준 아이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 찾으셨다고 해서요.”

지도교수님의 호출이었다. 나와 또 다른 학생 한 명이 다급하게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았다.

“자네들 선배인데, 이번에 대안학교를 만들었다는데 괜찮은 강사를 추천해달라는 거야. 그래서 물어보려고 불렀지.”

두 번 생각해보지도 않고 대뜸,

“감사합니다. 교수님 한번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뱉어 버렸다.

어떠한 일도 일단 해보고 생각하는 성격이라 이번에도 이성보다 말이 앞섰다.

그동안 성인 대상의 강의만 해봤지 고등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본 적이 없는 나는 큰 모험을 하는 셈이었다. 강의 계획서에서 자료까지 모든 것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대안학교라……. 재밌겠다.’

재미있겠다는 판단이 드는 일은 앞뒤 재지 않는다. 보수가 적든 많든 개의치 않는다.     




학교 교단에 서는 것이 꿈이었던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일본어 특성 고등학교라는 정보만을 얻고 면접을 보러 갔다. 온화한 미소로 받아주시는 교장 선생님은 이 학교에서 나의 꿈을 펼칠 수도 있겠다는 큰 희망을 안겨 주었다. 첫 느낌이 좋았다. 이어 학교 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실 때부터 조금씩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학생들 대부분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퇴학을 당하거나 중퇴를 했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처음인데 거기에 평범하지 않은 이력의 아이들이라니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번복하기엔 여러 사람에게 미안한 상황이 되었다.      


첫 수업이 있는 날, 센 언니, 아니 호랑이 선생님처럼 보이기 위해 눈화장에 한껏 힘을 주고 힘찬 걸음으로 교실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당당한 자세와 우렁찬 목소리로 ‘오하요고자이마쓰,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손유진이라고 합니다.’

칠판에 한자 이름과 한글 이름을 같이 적으며 내가 왔노라를 알렸다. (까악까악~방송에서 보면 나오는 그런 장면, 까마귀 날아가는 소리)

박수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도대체 이 살벌한 분위기는 뭐지?

딱 보기에도 짱으로 보이는 학생이 가운데 자리에서 두 다리를 있는 힘껏 쫘악 벌리고 상체는 반쯤 누운 자세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저 여자, 뭘하겠다는 거지.’ 그런 눈빛으로 말이다. 살짝 그 기에 눌렸다.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다시 해맑게 인사를 건네고 한 명 한 명에게 이름을 물어보며 분위기를 업시켜보려 노력했다.

“그만하시죠.” 짱이 한마디 한다. 명찰에 쓰여 있는 이름은 수현이였다.

“적당히 하시다가 가시라고요.”

순간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수현이의 한마디에 내가 살짝 당황한 모습을 보이자 금세 돌아가는 상황을 판단한 아이들이 놀리듯 웃기 시작했다.

“수현이구나, 이름이….”

“그래서요. 뭐요. XXXX.”

수현이 입에서 험한 욕설이 나왔다. 화가 서서히 치밀어 올랐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흥분하지 않으려 애썼다. 40분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위기에 압도당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한 듯하다. 처음부터 반쯤 누운 자세로 수업을 듣던 아이들은 마칠 때까지도 비협조적인 모습으로 시계만 쳐다보고 있었다. 겨우 한 시간을 마치고서 곧장 교장실로 들어갔다. 질려버린 얼굴색으로 교장실에 들어서자마자 했던 말이

“죄송합니다. 교장 선생님, 오늘 첫 수업을 해보니 도저히 저는 못 하겠습니다.”…….“제가 자질이 부족해서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힘들게 했나 보군요, 많이 힘드셨죠?”

“...........”

“선생님 마음 이해합니다. 여러 선생님이 적응을 못하고 가셨어요. 저 아이들은 공교육에서 이미 한 번의 실패의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에요. 이곳에서도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면 이 아이들은 정말 갈 곳이 없습니다. 힘드시겠지만 한 번만 더 수업해보시고 결정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네,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짧게 답변을 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집가는 길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냥 거절할 걸 하는 후회와 함께 두 번째 수업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걱정도 밀려왔다.     




못하겠다는 마음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고쳐먹었다. 첫 수업과 별반 차이가 없는 태도의 아이들이었지만 내 마음이 달라져서인지 아니면 예상을 하고 들어와서인지 못하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수현이의 이름을 자주 불러주기 시작했다. 수업 횟수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수업시간에 질문하는 아이, 마치고 교실 문을 나서는데 배웅해주는 아이까지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었다. 마음을 고쳐먹었더니 생긴 변화들이다. 아마 그때 포기하고 돌아섰다면 이런 변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첫 학기 때 일주일에 한 번 배정받았던 수업을 두 번째 학기부터 일주일에 3회 수업을 할 수 있는 메인 교사급 대우를 받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지켜보시다가 수업시수를 늘려주셨다.     


아이들은 한 두 가지씩  사고(?)를 쳐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곳까지 왔다. 대영이라는 친구는 학교 교사에게 심한 욕설을 해서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친구 어머님도 학교 교사이시다. 또 다른 친구는 오토바이를 절도하다가 퇴학을 당했다는데 이 친구 아버지가 경찰, 그리고 변호사 자제도 있었다. 내가 보기엔 좋은 환경의 아이들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면 아이들은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을 이런 식으로 풀어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는 나보다 컸지만,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보이는 아이들의 이름을 더 자주 따뜻하게 불러주었다. 변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내 마음이 변하니 아이들도 그 마음을 알아주었다. 스스로 진로도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설계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결혼으로 더는 일을 할 수 없을 때까지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대안학교 설립을 꿈꾸게 된 계기가 바로 이곳에서 부터이다. 이 학교에서의 경험은 많은 가르침을 남겨 주었다. '아이들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어긋남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어른이라면 그 소리에 귀 기울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어야 한다.' 는 나름의 철학을 남겨준 곳.  


내가 꿈꾸는 대안학교에서는 아이들이 행복한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보길 바라본다. 어떠한 이야기도 다 들어주는 친구 같은 교장 선생님의 모습도 상상해본다. 오늘도 이렇게 행복한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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