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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Nov 17. 2023

슬픔을 위로해줄 언어를 구究합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위로하는 데 서툴 때가 많습니다. 어떤 말로 위로해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마음이 아프죠. 그럼에도 할 말이 없을 때는 길게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어떤 말로 어떻게 위로해야 마음이 잘 표현될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제가 슬픔에 빠졌을 때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특히,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상대의 슬픔에는 어떠한 말이라도 마음을 다독여주어야 합니다.     



부재중 전화가 2통 있었습니다. 9시가 넘은 시간에 연속해서 같은 사람으로부터의 2통의 부재중 전화는 급한 일임을 암시합니다. 설거지를 막 마친 상태여서 손이 약간 젖어 있었습니다. 손수건으로 물을 닦으려다 전화를 건 사람이 급한 일일까 싶어 대충 입고 있는 스커트에 손을 문질렀습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벨소리가 한두 번 울렸을 때였습니다.     

"형님," 한 살 위인 나를 그녀는 평소 형님이라고 부릅니다. 십여 년이 넘게 부른 말이라 익숙합니다.     

"어, 그래. 무슨 일 있어?" 남편과 떨어져 지낸 지 3년 차인 그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형님, 부여에 계신 실장님이 오늘 돌아가셨대요."     

"어?"     

"방금, 부고 소식을 들었는데 저도 믿기지가 않아서요."     

"어머나. 어쩌시다가."     

"독감으로 입원하셨다가 돌아가셨다고 해요."     

"연세도 얼마 안 되신 분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부여에 계신 실장님은 그녀의 옛 직장 동료입니다. 나와의 인연은 부여에 여행을 갔을 때 숙소를 제공해주셨고, 운영하고 계신 카페도 구경하고, 이후 카페를 넘기고 싶어하셨던 말씀을 하셔서 인수 건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건강하고 밝으신 분이셨는데 허망하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맥이 살짝 풀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언어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입 밖으로 나오려는 단어를 입술이 막고 나섭니다. 이렇게 입술이 무거웠던 적이 있는지. 한마디 한마디가 내뱉기 어렵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감정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슬픔은 가장 진솔하고 깊은 감정 중 하나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경험하며, 때로는 그 슬픔을 타인과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슬픔에 대한 위로의 말을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저는 특히나 이런 부분에 서툽니다. 한동안은 진지하게 공감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 적도 있습니다.     

때때로 말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 반대의 상황도 물론 있다는 것도요.      


어느 날, 친구가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건네지 못했습니다. 그저 옆에서 듣고, 마음속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 한켠에서는 '내가 더 좋은 위로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슬픔을 위로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로 위로를 전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침묵이나 경청을 통해 위로를 전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위로의 방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심이란 것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럼에도 적절한 언어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슬픔을 표현하고 위로하는 것은 언어의 가장 미묘한 영역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의 슬픔을 위로하고자 할 때,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말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위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감정을 이해하고 잘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모르니깐요. 마음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 언어니깐요.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타인과의 깊은 연결을 만들어내는 과정일 것입니다. 슬픔을 위로하는 나만의 언어를 찾는 것, 그것은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겠다는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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