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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Dec 13. 2023

김장, 긴장, 긴  장면, 긴  추억

맛있게 익었다. 탄력있게 익은 돼지고기에 김장김치의 조합은 궁합의 정수를 보여준다.    

  

결혼 후 매해 11월이 되면 이 맛을 즐길 수 있다. 이걸 맛보겠다고 몸이 부서져라 배추에 양념을 치댄다. 

누가 이런 조합을 만들어 냈는지 기똥차다. 고생한 며느리를 위한 보상처럼 느껴진다. 고기라도 먹고 보신하라는 의미인가 보다. 가끔 선조들의 지혜에 마음속으로 감탄한다. 


된장 큰 2스푼, 소주 1컵, 커피 작은 3스푼을 넣고 30분 이상을 푹 삶은 돼지고기를 건져냈다. 옅은 갈색을 띠고, 반짝반짝 윤이 난다. 소주를 넣은 덕에 잡내도 나지 않는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흉내쯤은 낼 수 있다. 어차피 김장 수육은 김치가 다 할 거니 고기맛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부위만 잘 사면 80% 이상 성공이다. 아무리 요리를 못하는 똥손 며느리라도 이날은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음식이다. 


김장김치는 칼로 썰어서도 안 된다. 이때만큼은 손을 잘 이용해야 한다. 손맛! 엄지와 집게 손가락을 써서 세로로 잎의 맥을 따라 쫙쫙 찢어줘야 맛이다. 칼로 싹뚝싹뚝 잘린 김장김치는 먹기도 전에 입맛도 잘린다. 

김장김치는 조용히 옛 기억을 불러온다.           



결혼 전을 떠올려본다. 엄마의 김장을 도운 기억이 없다. 밤사이 배추를 소금에 절여놓고,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서 씻어놓는다. 아파트에서 살았기에 마당보다는 욕실에 놓인 배추를 더 자주 보았다. 목욕탕 의자에 쭈구리고 앉아서 몇 번을 씻어내던 엄마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딸이 셋이나 있었는데도 와서 거들어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귀하게 크지 않으면 커서도 고생한다는 엄마의 오랜 믿음이 있어서다. 딸아이들을 귀하게 키우셨다. 돕는다고 도왔지만 기껏해야 소금을 집어다 드리고 김치통을 내어드리고 하는 정도다. 엄마는 손이 빨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미 배추들이 빨간 양념을 입고 통속에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솜씨 좋고 행동도 빠른 엄마는 그렇게 혼자서 척척해 내셨다. 엄마는 그렇게 혼자서 모든 것을 척척 해내셨다. 그때는 엄마가 일을 하시는 모습이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정말 철인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더라. 결혼하고 나서야 그 일의 힘듦을 알게 되었다.

시집와서는 임신으로 배가 부른 채로 와서도 김장을 도왔고, 해마다 거르지 않고 김장하러 시댁에 온다. 이 일이 얼마나 고된지를 직접 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걸 혼자 다 해내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자식은 부모 자리가 되어봐야 부모의 노고를 알게 되나 보다.      


올해는 남편없이 세아이들만 데리고 김장을 하러 갔다. 배추를 씻는 일조차 만만치 않았다. 남편이 있었다면 배추 씻는 걸 해주었을 텐데 올해는 그것도 내몫이다. 어깨가 빠질 것 같다. 찬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찡한 무언가가 올라온다. 엄마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배추 잎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찬바람이 옛 추억을 소환한다. 어느덧 빨간 옷을 입은 배추들이 통가득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뒷모습과 지금의 나를 이어주는 다리처럼 늘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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