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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Jan 25. 2024

우리는 모두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목요일은 출근날이다.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는데, 거리가 있다는 이유와 양육할 어린아이들이 셋이나 있다는 이유로 한 달에 몇 번 출근하지 않는다. 회사의 배려다. 몇 주 동안 얼굴을 내비치지 못해 이번 주는 어떻게든 하루라도 출근을 해야겠다 싶어 새벽부터 분주하게 준비한다.

  8시 54분 등원인 막내를 유치원차에 태우고 출발하려면 부터 10까지 순서를 정해두고 일정대로 움직여야 차질이 없다. 차이가 생기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어떤 목표가 있으며 역으로 계산해서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움직인다. 첫째와 둘째 아이가 방학 중이라 아이들 공부와 오전 할 일을 체크하는 일부터 막내를 케어하고, 출근 준비까지 하려면 마음만큼 손발이 재발라진다.

  새벽 5시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장과 머리 손질, 입고 나갈 옷을 미리 준비해 두고 큰아이들의 오전 공부를 체크한다. 

“일지 썼니?” 방학 중, 자유롭게 풀려있는 시간을 붙들여 매려면 계획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도 꼼꼼하게 말이다. 그렇지 않으며 꼬삐 풀린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간다. 

어제 한 일과 오늘 해야 할 일을 모두 기록해온 아이들이 노트를 내민다. 어젯밤에 썼어야 할 일기란이 비어있다. 

“기록은 매일 하는 게 좋아.”

잔소리는 여기까지만. 오늘은 출근날이니 감정소비로 늘어질 시간이 없다.      

  늦게 잠든 막내를 흔들어 깨어, 반쯤 눈이 감긴 상태에서 밥을 먹인다. “유치원 가야지.”

스무 번쯤 말하면 또랑또랑한 눈으로 마지막 숟갈을 뜬다. 

며칠 동안 한파가 심해, 아이의 옷매무새를 몇 번이고 확인한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목을 따뜻하게 감싸고, 찬바람을 막아 줄 마스크까지 씌워야 안심된다. 동동 싸매진 아이는 뒤뚱거리며 현관으로 향한다. 고개를 숙이기 힘든지 신발 입구를 찾지 못해 몇 번이고 헛발질을 한다. 보다 못한 나는 들고 있는 가방 4개를 현관바닥에 내려 놓고 아이의 신발을 신긴다. 

급하게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아이의 손을 잡아끌듯이 지하주차장으로 향한다. 

뒷자석에 안전하게 태우고 유치원버스 승차하는 곳까지 차로 이동한다. 

“그럼, 가볼까?”     

  평소 운전 습관이 곱지는 않다. 20살, 운전면허 학원을 다닐 때도 강사는 나의 난폭한 기질을 먼저 알아봤다. “레이싱 준비하는 거 아니죠? 뭐가 그리 급해요. 천천히 달리세요.” 

단속카메라를 피해 속도를 냈다가 줄였다가를 반복한다. 출근하는 길은 20km 정도다. 막히지 않는다면 30분 내로도 갈 수 있는 거리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들이 있을 때는 두 배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항상 여유를 갖고 나오기는 하지만 오늘 5분 늦게 집을 나선 게 화근인가 보다. 네비에 찍힌 도착 시간은 회사 지하주차장에 출근 시간 10분 전으로 찍혀있다.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잡고, 화장실을 잠시 들렸다가 갈 시간이 부족하다. 지각이 틀림없다. 조여드는 느낌이 싫다. 그래서 약속을 잡더라고 늘 여유있게 출발해서 기다리는 걸 좋아한다. 시간에 맞추려고 허둥대며 가는 걸 싫어한다. 혐오한다. 시간은 자신을 표현하는 기본 태도라고 늘 생각해 왔다. 

10분만 더 일찍 도착하면 딱 좋겠다. 그래, 딱 좋겠다. 

오른발에 힘을 실어 엑셀을 지그시 밟아본다. 조금 더 깊숙이 밟아본다. 속도를 높인다. 차선도 이리저리 바꿔보고 더 짧은 줄로 서기 위해 눈, 손, 발이 모두 바쁘다. 

‘좋아! 이 정도면 도착 시간을 10분 정도는 당길 수도 있겠어.’

고속도로를 탈까하다가 여러 번 꼼짝하지 못하고 길에서 시간을 보내던 경험이 있어 거리는 늘어나지만 막히지 않는 도로로 가기로 했다. 이 길은 막히지 않는다. 좀처럼.

막히는 구간이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몇 분이면 해소된다.  

앞의 차들이 서서히 속도를 줄인다. 1km 전방에 단속카메라의 영향일 것이다. 예상보다 시간이 늘어난다. 정체되어 있는 차들이 늘어선다.  지금껏 이 구간에서 차가 밀려본 적이 없었다. 

‘사고라도 낫나?’

앞차를 따라 서행하기 시작했다. 단속카메라 구간을 지나쳤는데도 앞차들의 움직임이 느리다. 

차선을 이리저리 바꿔본다. 

얄팍한 운전기술로 1분이라도 앞당겨보자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차들의 앞으로 나아갔다. 

큰 버스 한 대가 보인다. 얼핏 보면 통근버스같다. 

천천히 버스 뒤에 섰을 때 그제서야 하얀 두 글자가 보인다. 

한자로 된 글자, 謹弔.

‘아!’ 

그제서야 평소와 다른 정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버스는 속도를 올리지 않았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차선을 바꾸거나 하지도 않는다. 

나와 비슷하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단축하려고 하는 두 대의 suv는 버스를 추월해서 달린다. 

나는 버스의 뒤편에 섰다. 

버스를 잠시 따라갔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뒤따르며 읊조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애도의 마음도 보냈다. 謹弔를 붙이고 있는 버스는 속도를 내지 않는다. 천천히 나아갈 뿐이다. 

출근길이라는 것을 잠시 잊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근조버스를 타고 멀리 경상도 영주까지 내려가던 그때를 잠시 상상했다. 

4시간이나 걸리던 그 거리에 그 길 위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저 버스 안의 사람들의 슬픔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공감할 수는 있다.

  1분을 아끼려고 추월차선을 넘나드며 운전하던 나를 또 다른 자아가 바라본다. ‘넌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거야?’

근조 버스는 여전히 천천히, 고인을 위한 마지막 여정처럼 조용히 나아간다. 고인에겐 더이상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까.     

  매일 같이 빠른 속도로 살아가는 삶을 되돌아본다.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의 분주함, 아이들을 돌보고 출근 준비를 하며 늘 정신없이 바쁜 일상. 하지만 지금 이순간, 근조 버스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며, 나는 잠시 일상의 속도를 늦췄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한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주변을 둘러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멈춰 서야 하는 순간이 온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 순간까지는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어차피 같은 곳을 향하는 거라면 서둘러 갈 필요는 없다.      

  근조 버스와 짧은 동행은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천천이 내 삶의 길을 이어간다. 

나는 어디를 향해 이렇게 매일같이 속도를 올려 살고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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