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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Jan 28. 2024

부지런한 사랑과 순대국

이슬아 작가의 작품을 연속해서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출간된 여러 책 중, 눈에 띄는 제목의 책을 2권 구매했다. 빳빳한 새 책은 처음 펼쳐 볼 때가 가장 두렵다. 혹시나 구겨질까 싶어 책장을 넘기는 손동작이 조심스럽다. 먼저 도착한 한 권을 들고 도서관을 향했다.     

도서관에 가서 내 책을 읽는 것이 취미다.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은 독서 욕구를 부추기는 배경화면으로 충분하다.     





층고가 높은 도서관 앞면은 흘러가는 구름을 볼 수 있도록 높은 통창으로 되어있다. 구름을 바라보다가 몇 달 전 전자북으로 읽었던 이슬아 작가의 '날씨와 얼굴'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검색대에 가서 서가에 책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이 ‘대출가능’이다. 스크롤을 더 내려 구매하지 않은 책들 중 빌려가지 않은 책이 있는지 확인했다. '부지런한 사랑', 한 권이 더 있다. 이슬아 작가의 글쓰기 지도 경험을 엮은 책이라 호기심을 부른다. 연한 핑크색에 높낮이가 다른 두 개의 나무 밑둥의 그림. 조금 더 키가 큰 밑둥이 자신보다 조금 더 낮은 밑둥을 끌어 안아 주는 듯한 표지가 시선을 끈다. '무슨 의미일까.'   

  

날씨와 얼굴보다 먼저 펼쳐보고 싶었던 이유는 순전히 표지 때문이었다. '빠져든다.' 이슬아 작가의 특유의 툭툭 내던지는 듯한 문장은 묘한 매력이 있다.     

던져진 문장을 후회하지 않는 자신감이 보인다. 그녀의 문장은 그렇다. 

작가들은 써놓은 문장을 몇 번이고 읽고서 감추고 숨기고 지우고 싶은 문장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슬아 작가는 그렇게 쓰지 않을 것 같다. 순전히 나의 상상이지만, 주워담지 않아도 되는 문장을 슬슬 써내려갈 것 같은 느낌이다. 툭툭 내던진다.

분명한 매력이다. 


아이들이 실제 쓴 글을 예시로 올려두며 그때의 상황을 묘사해 두었다. 2014년, 글선생의 역할을 했을 때 이슬아 작가에게 글쓰기를 배운 아이들은 행운아다. 부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같은 선생이라는 역할을 하는 나에게도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르쳐준다. 아이들을 따뜻한 호기심으로 바라봐주라고.     

이슬아 작가의 글도 아이들의 글도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책 속으로 끌어당긴다.     





정신 없이 절반가량 읽었을 때다. 하얀 종이가 보인다. 얼핏 복 메모지라 생각했는데, 흐리하게 남은 인쇄글을 보니 카드 명세서다. 꺼내본다. 자세히 들여다 본다.     

2023-12-21 12:55:11 신의주 찹쌀 순대 20,000원     

이슬아 작가의 책을 빌려 가는 도중 순댓국집에 들렸나보다. 시간을 보니 점심을 먹기 위한 것 같다. 마음의 양식과 신체의 양식을 모두 챙기는 명세서의 주인이 새삼, 멋지다. 그리고 먹고 싶어졌다. 부지런한 사랑을 읽으며 나도 순대국이 먹고 싶어졌다.     

한 장이 더 있다.     

2023-12-21 12:54:58 신의주 찹쌀 순대 20,000원     

몇 초 차이로 같은 금액을 결제했다.

‘같이 먹을 사람이 있었나.’     

책을 읽다 말고 명세서를 뚫어져라 자세히도 들여다보고 있는 지금 이시간, 내가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질 만한 타이밍이다.     

변스럽다.     

그런데 순대국은 먹고 싶다. 갑자기 허기도 느껴진다.     

책의 세네카에 문구가 눈으로 성큼 들어온다.     

‘몸과 마음을 탐구하는 이슬아글방’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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