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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Jan 30. 2022

카드 한 장으로 결혼한 여자

감사함으로 스트레스를 녹이는 법


5월 5일 어린이날, 햇살이 좋았던 그 날, 학교 동기 언니와 예술의 전당 안쪽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같이하고 있었습니다. 휴일의 여유와 예술의 전당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누리고 있었을 때입니다. 등록되지 않은 일반전화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휴일인 데다가 지금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잠깐 고민했습니다. 진동의 울림이 길어지자 저도 모르게 통화버튼에 손이 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유진 강사님이시죠. 저희는 OOO 교육강의에이전시입니다. 이번에 강의가 있어서 의뢰하려고 전화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교육회사였지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여자분의 씩씩하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신뢰감이 들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날 뵙도록 하겠습니다.“

휴일에 강의 의뢰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우연한 사건이 결혼으로 이어질지는, 눈이 부시게 햇살이 좋았던 5월 5일, 예술의 전당의 한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있던 저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인생은 그래서 재미있습니다. 예측이 안 되니 말입니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잠시 해봅니다.     


서른 명 정도 되는 수강생들과 수업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입니다. 수강생 중 두 분께서 회사 내에 괜찮은 사람이 있는데 소개를 받아보지 않겠냐고 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두 분 모두 같은 사람을 소개해주려 했다고 합니다. 지금의 남편이었던 겁니다. 

옆 교실에서중국어 수업을 듣고 있었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참 재밌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만약 제 수업을 들었다면 수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소개받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 당시 바쁜 강의 일정으로 데이트로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던 때라 결혼으로 얻을 수 있는 안정감에 대해 꿈을 꿔본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적지 않은 나이여서 가볍게 만나볼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몇 차례밖에 만나보지 못했지만, 남편의 선한 인상과 책임감 있어 보이는 모습에 결혼을 결정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픽사베이


고민은 그때부터였습니다. 배움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저는 실질적으로 모아둔 돈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도 결혼을 생각하지 않았고 어쩌면 평생 이렇게 혼자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목돈이 모이면 학비로 모두 사용을 했었습니다. 배움의 목마름을 해소하고 나면 돈은 알아서 뒤따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세 딸을 공부시키시느라 고생하신 부모님께 결혼 준비자금을 받기도 너무나도 죄송한 상황이었습니다. 결혼자금은 충분히 된다고 거짓말을 하고서 ‘카드 한 장’으로 혼수준비를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남편에게도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모아둔 돈이 없다고요.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용기 내 말 했습니다. 

”괜찮아요. 내가 다 준비할 테니 숟가락만 들고 와요. 하하하.“

그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고가의 가전을 본인이 준비하겠다며 저의 상황을 배려해주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가구만 준비하면 되었습니다. 

카드로 구매 가능한 가구와 물품들을 모두 준비하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신혼여행과 결혼식장 대금 모두 남편의 배려 덕분이었습니다.      



명절이 되면 음식 준비 스트레스가 밀려옵니다. 요리실력이 형편없어서 더 그런가 봅니다. 스트레스가 넘치면 남편에게 감사했던 일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고 마음을 고쳐먹어 봅니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명절을 즐거운 마음으로 대하자고요. 스트레스는 감사함으로 녹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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