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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잡스 유진 Feb 07. 2022

감정을 나누어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책 읽기 방법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멤버들마다의 방법이 모두 달라 서로에게 자극이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인상에 남는 분은 재독을 하는 습관을 지닌 멤버였습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으신다고 하십니다. 저에게는 없는, 부족한 부분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왜 재독 하지 않을까? 기억에 남고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책이 있는데 어째서 재독을 하지 않을까 하고요. 


갑자기 드라마가 생각났습니다. 텔레비전을 시청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인생 드라마다 싶을 정도의 괜찮은 시나리오의 작품들을 만납니다. 대사, 장면, 하나하나 눈여겨 듣고 봅니다. 감정이입이 되어 힘들어지는 상황도 종종 있었습니다. 마지막 회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작품을 만나게 되더라도 두 번을 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남편은 저와 달리, 괜찮은 영화다 싶으면 10번 이상을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루는 물었습니다. 

“지겹지도 않아요? 몇 번이나 보면요?”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했듯이

“아니 ”입니다. 

이유는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과 생각할 부분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런 의미가 있었구나 .” 잠시 잠깐 짧은 깨달음 같은 것이 있었지만 없던 습관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도저히 따라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책, 드라마, 영화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한 번 갔던 장소에서 두 번을 가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더라고요. 호기심이 많은 성격 탓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를 마치기 전에 이미 눈은 다른 곳을 향해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일까.      




    

다시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곰. 곰. 이.

감정을 나눠쓰는 버릇이 있더라고요. 기분 좋은 감정은 그대로 간직하고, 부정적인 감정은 조금씩 나누어 쓰고 있더라고요. 

인상에 남는 장소나 감명 깊은 드라마를 보고 나면 그때 그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처음 봤던 그 느낌을요. 두 번, 세 번 봤을 때 달라지는 생각과 감정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무언가 감정을 훼손하는 느낌입니다. 

부정적 단어가 연상되는 감정들은 나눠쓰려 은연중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너무 슬프거나 우울할 때 그 감정을 모두 쏟아내지 않습니다. 힘드니까요. 지금 아니어도 감정을 나눠써야 하는 곳이 많은데 한 번에 다 쏟아내면 정말 필요할 때는 그 감정이 나오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많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있는 저를 보고 놀랐습니다. 임종을 앞둔 시점에서 너무 많은 감정을 쏟아내서였던 것 같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너무나도 태연한 저의 모습에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대학 동기가 묻더라고요. 많이 힘들어할 줄 알았는데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라고요. 그때는 옅은 미소로 답을 했지만, 그 후로 그 말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괜찮아 보였구나.’

괜찮지 않았음에도 괜찮아 보였나 봅니다.      




감정나눠쓰기는 여전합니다. 지금 이곳 말고도 감정을 써야 할 곳은 많으니까요. 사람에게 진정한 감정을 쓰기 위해서 드라마나 책에서 뺏긴 마음은 그때 잠시 그곳에 머물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들추지 않습니다. 

정말 필요할 때 저의 마음을 보여줄 수 없을지도 모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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