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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13. 2021

홍삼이야? 라벤더야?

꾸준한 노력의 결실


여름은 아이의 발가락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히 발가락 밑 살갗과 발뒤꿈치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다섯 살 무렵부터 아이의 발바닥이 이상해지면 ‘여름’이 열렸음을 체득했다. 병원에 다니며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면 발바닥은 복숭아빛 보드라운 맨살이 되었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채근을 해서 병원을 더 다니다가도 맨도롬한 피부는 매해 게으른 안도를 부채질했다. 신념이 없는 희망은 여름마다 아이의 발바닥이 증명해 주었다. 스테로이드의 장난이란 걸 알면서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복사빛 발바닥이 주는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끌려다녔다.

 

‘이건 아니다’ 싶어 민간요법에 매달리다가 두꺼워진 각질이 쩍쩍 갈라진 틈새로 물약을 바르기도 했다. 아이는 고통에 겨워 진저리를 쳤다. 아이의 소망은 여름에 ‘쪼리샌들’을 신고 다니는 것이었다. 보이 스카웃이나 태권도 학원에서 가는 캠핑에서 물놀이를 할 때면 창피해 발가락을 바짝 오므리고 걷는다고 했다. 변산반도 채석강 같은 아이의 발뒤꿈치는 책 만권이 아닌, 친구들 앞에 떳떳하게 발을 디밀지 못하는 상처가 주상절리처럼 켜켜이 쌓여감을 보여줬다. 참새 같은 아이의 성정에 그런 ‘그늘’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아득해졌다.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건강서적에 탐닉하던 시절에 어느 서적에서 본 일이 있었던가, 전광화석처럼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조청처럼 진득거리는 ‘홍삼정’을 발에 발라주자고 결심을 하고,


 당장 실험을 했다. 우리는 귀한 ‘정관장 홍삼’을 먹으려고 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아이의 발바닥을 위해서 샀다. 3월이 문을 열고 있던 날, 아홉시 뉴스를 보기 위해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바닥에 눕고, 나는 반 스푼의 ‘홍삼정’을 소량의 미지근한 물에 희석했다. 진한 홍삼 스킨을 만든 것이다. 비닐장갑을 끼고 아이의 발치에 앉아 뉴스를 보며 발가락 구석구석, 온 발에 칠했다. 그리고 발 마사지를 했다. 거무스름한 홍삼정은 제 색을 아이의 발에 옮겨주고 말라 갔다. 아이가 노곤하게 잠에 빠지면 따듯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발을 닦았다. 

 

그 시절 나에겐 ‘아로마오일’이 잔뜩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한 향유는 단연 ‘라벤다’였다. 라벤다의 효능은 피부의 재생과 상처치유. 심신안정에 탁월하기도 하지만 부드럽게 퍼지는 향기는 모든 향유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라벤다 향은 생산되는 지방에 따라, 또는 라벤다의 종류, 원액을 체취하는 방식에 따라 달랐다.



 

발 마사지가 끝나면 뜨거운 수건으로 구릿빛 발을 닦아내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에 라벤다 향유를 혼합해 손수 만든 바디오일을 바르고 양말을 신겨 주었다. 이 과정을 하루도 빠짐없이 9개월을 했다. 하루도 빠뜨릴 수 없게 힘을 준 것은 나날이 좋아지는 아이의 발 상태 였다. 더 이상의 마사지가 필요 없다고 깨달은 순간 11월은 가고 있었다. 그렇게 1985년생의 발은 아직도 무사하다. 어린 시절 하도 발가락에 힘을 주어 오므려서 그런지 남보다 한 마디는 더 긴 발가락으로 성큼성큼 걷는 아이에게 말한다. “짜아식아! 고마운 줄 알아!”

 

아이의 발이 멀쩡하게 돌아온 이유가 ‘홍삼정’ 때문인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에 투입된 ‘라벤다 향유’인지, 아니면 둘의 합작인지 나는 모른다. 하나, 분명한 건 나는 이 세상 향기 중에 ‘라벤다’ 향이 가장 좋고, 향이 좋은 ‘라벤다 오일’을 마음껏 사고 싶은 희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단지, 라벤다 향이 난다는 이유로 몽땅 쟁여 놓아 이젠 기름 쩐내가 나는 '버츠비 레스큐 오인트먼트'를 버리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다. 벌레가 물면  바르게 되는데, 순하게 스미는  라벤다향이 단연 갑이다.



당연하게  차의 방향제로 천연 라벤다 향유를 쓴다. 작년에 구입한 향이 맘에 들었다. 늘 차 안에 두고 다니는데, 향을 충전하기 위해 찾아보니 늘 두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며칠을 뒤지고, 집에서 찾아봐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찾다가 다른 제품으로 대용량을 구입했다. 엊그제였다, 콘솔에 손을 넣어 뭔가를 꺼내려는 순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향유가 손에 잡힌다. 그것은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걸 찾느라 며칠을 시트 밑까지 모조리 뒤진 내가 허망했다.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찾았던 것일까! 내 기억의 정확성에 항상 의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이제 내 눈의 구체성에도 의심을 해야 할 판이다. 

 

하니, 내 기억, 내 눈이 본 것이 옳다고 우기지 말기다. 지갑만 빈번히 열기다.참고로 기억력 증진에는  로즈마리 아로마 오일이 최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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