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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쿠아마린 Aug 12. 2021

고흐의 사이프러스나무와 내촌 목공소



울산 태화강변에서 나는 하늘을 향해있는 저 미루나무에 눈이 머물렀다.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 가서도 보고, 돌아오면서도 아쉬운 무언가를 두고 오듯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날은 이울고, 우리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마음이 고요해질 때 어린 시절 왕숙천으로 향한 길목을 지키던

미루나무 세 그루와 함께 저 나무가 눈에 어른거렸다. 하늘을 향한 염원이 무엇이기에 저리도 간절한 자세인가 말이다.



고흐는 남프랑스의 도시 프로방스 지방의 아를이란 도시를 좋아했다. 나 또한 프로방스를 오래도록 꿈꾸며 살았다. 고흐의 그림에도 <아를의 여인>이 있고, 비제의 음악에도<아를의 여인>이 있으며, <마지막 수업>과 <별>로 유명한 알퐁스 도데의 작품에도 <아를의 여인>이 있다. 고흐의 <싸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길>이란 그림의 무대는 프로방스의 어느 마을이다.

나는 사이프러스 나무를 좋아했다. 일본에선 이 나무를 <삼나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삼나무와 사이프러스는 다른 나무다. 사이프러스는 측백나무다.  

덕소에 살 때,  화단에 키 작은 측백나무가 있었다. 나는 집에 들어갈 때 가끔 측백나무 가지를 꺾어가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아름답다고 표현하기 뭣한 측백나무의 향기가 좋았다. 코에 대고 향기를 흡입하면 몸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사이프러스 에센스 오일과 사이프러스의 사촌쯤 되는 <노간주나무>의 에센스 오일 <주니퍼>를 어렵게 샀다. 그 시절엔 아로마 오일이 흔하지 않았다.  프랑스 산 아로마 오일은 향기가 고급스러워 만족스러웠다.

레바논 국기에 그려 진 나무가 <삼나무>라는 걸, 나는 내촌 목공소 고문 김민식의 <나무의 시-간>이라는 책에서 알았다. 지중해의 섬, <키프로스>는 사이프러스라고 읽기도 한다. 사이프러스라는 지명 때문에 나는 지중해의 섬, 키프로스를 꿈꾸듯 그리워했다.



어느 봄날, 영월 법흥사에 갔다가 속초를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홍천의 내촌 목공소를 들렀다.물론, 텅 비어 있을 것이란 짐작은 틀림없었다. 정적이 감돌았다.



인적 없는 <김민식>고문의 집엔 윤기 반지르르한 항아리 세 개가 오두마니 서 있었다.. 누구 말마따나 있어 보이지 않는 집. 이정섭 목수의 가구에 반한 김민식은 그가 지은 집에 살게 되었다. 나무가 이어준 인연이다.

세계 각지를 돌며 목재를 구하던 그는 여기에 머물며 토요일엔 관람객을 맞고, 목공소의 고문으로 있다.




목공소 건물을 지나 산 아래에 자리 잡은 이정섭 목수의 집이다. 역시 비어 있었다.

그의 집 벽은 몬드리안의 면 분할을 보는 것처럼 친숙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집을 빙빙 돌아보았다.

서울대 미대 출신의 재원이니 그의 예술적 감각은 무조건 패스다. 이정섭이 지은 집들의 지붕은 저렇게 골이 파였다. 옛날 슬레이트 지붕 같다. 설마 철거 대상인 석면 슬레이트는 아니겠지.. 그럴리는 절대 없을 것이다.



이정섭 목수가 만든 가구를 전시하는 창고일까?  미국 화가 밥로스가 붓으로 탁탁 찍어내는 풍경 안에 서 있는 느낌으로 저 창고를 바라봤다. 야트막한 산과 거부감 없이 잘 어울린다. 미국 동부의 애팔래치아산맥 아래에 있으면 더 어울릴 창고다.




뒤에서 보면 1층이지만, 전면에서 보면 2층인 집이다. 앞에 도랑이 흐르고 숲이 정원이다. 통창으로 숲과 개울을 거실로 끌어온 집이다. 2층은 갤러리고로 사용하는 듯했다. 옆에 사이프러스가 장승처럼 서 있다.

이 마을에 나는  꼭 와보고 싶었다. 이번에 몇 채의 건물만 보고 왔지만, 매주 토요일 관람객을 맞는다고 한다. 홈피에 예약을 해야 하며, 입장료는 5만 원이다. 토요일에도 근무를 해야 하는 나는 언제쯤 시간을 낼 수 있을까!


명작,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예>에 나오는 나무도 사이프러스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최근에는 별 하나가 보이는 사이프러스  나무 그림을 그리고 있어.
길에는 하얀 말이 묶여 있는 노란색 마차가  서 있고, 
갈 길어 저물어 서성거리는 나그네의 모습도 보여.
 이와 같은 그림을 또 그리고 싶어.
같은 색이지만농도가 다른 다양한 초록색이 다른 초록색을 형성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가 그린 사이프러스의 수형을  태화강변의  미루나무로 대신했던 나는, 

내촌 목공소 어느 집 뒤편에서 주변의 초록색과 농도가 다른 사이프러스를 만났다.그날 나는, 연두에서 연초록으로 변해가는 귀룽나무 잎새가 곱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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