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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멘트는 준비했는데,
자세는 신경 쓰지 못했다.

알콩달콩 연애 이야기. 03

by 윤명

2015년 10월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그녀에게 고백했을 때의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강원도에서 대학생활을 했던 나와, 의왕에서 사회초년생으로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그녀는

주말마다 의왕 동네에서 걷거나 저녁을 먹으며 풋풋한 썸(?)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평일에는 학교 기숙사를 잠옷차림으로 계속해서 걸으며,

그녀의 퇴근시간에 맞춰 전화 통화를 했었고 매주 금요일이 너무나 간절히 기다려졌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처음 그녀를 알게 되었고, 그 당시에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청년부 교사와 학생이라는 격차로 인해서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그녀는 마치 엄청나게 차갑고 높은 철옹성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연하는 절대 안 만난다던 그녀는 나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고,

나는 점점 더 그녀의 웃는 모습이 보기 좋고, 매일 웃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아니 확신이 가득했다.

이제는 '고백'이라는 것을 통해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싶었고,

마음을 먹은 그 주 토요일에 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금요일 저녁 버스를 타고 원주에서 의왕으로 이동했고 토요일 오후 5시에 만나서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신 뒤 평촌중앙공원에서 분수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1시간가량 같이 걸어서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동네 한 바퀴만 더 걸을까?"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너무나 긴장되는 상황 속에 조금 숨을 돌리고 싶어서 동네를 한 바퀴 더 걷자고 말했다. 참 지금생각해 보면 마치 행군처럼 아주 긴 거리를 걸었는데 여자친구에게 고맙다. 같이 걸어줘서.

그렇게 결국 정해진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온다. 그녀의 집 앞.

나는 고백을 해야 했다. 긴장되고 떨리는 순간..

(물론, 나 혼자 긴장하고 떨면서 혼자만 긴박한 시간이었다.)


"우리 이제... 다음 주에 보니까... 나랑.. 연애할래?"


연하이기에 '사귀자', '만나자'와 같은 식상한 멘트는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라리 피하지 말 걸 그랬다.

뜬금없는, 도저히 문맥의 앞뒤가 맞지 않는 고백이었다. 그녀는 당연히 장난이겠거니 싶게 생각하며

제대로 답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화살은 이미 내 손을 떠났고 그럼에도 나는 노력해야 했다.

진지한 모습으로 연애를 하자며 다시 말했다.

안 그래도 다한증이 있었는데, 그 순간 나의 손은 물바다였다.


한참을 깊게 고민하던 그녀는 한마디로 정적을 깼다.


"짝다리 짚지 마"


그녀의 한마디에 모든 게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더 어이없는 것은 그 와중에 짝다리에서 군인 차려자세를 취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진짜 좋아해.."


답을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결국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한 뒤에 집으로 돌아섰다.

이불킥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다행히도 연락은 계속 이어졌고 그다음 날 저녁에 만나 사귀자는 대답을 포옹으로 대신 받았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고, 어제의 내 모습에 대한 이불킥은 웃긴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로맨틱하고 멋진 고백은 못했지만, 은은하면서 뜨겁게 우리는 8년의 연애를 이어나가고 있다.


내 옆에 그녀에게 지금 이 순간도 항상 고맙고 미안하며,

앞으로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짝다리가 아닌, 곧은 차렷자세처럼 변치 않게 그녀에게 사랑을 주면서 항상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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