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부여 성장기. 03
고등학교 3학년.
태권도학과 진학을 위해 태권도 입시학원에 다니면서, 다양한 대회를 나가고
입상성적과 실기테스트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가O대학교 총장기 대회 겨루기 시합을 뛰었을 때 겪었던 이야기이다.
"쓰읍~ 너무 아파.."
겨루기 스텝을 하루종일 밟으며, 발차기 연습에 매진했던 나는
양 발바닥에 동전 크기와 같은 물집이 생겼다가 없어졌다를 반복하며
구멍이 뚫렸다는 표현을 하고 다닐 정도로 큰 자국이 생겼다.
대회를 나가기 전까지도 고통을 참으며 반창고를 사용해 붕대처럼 발바닥을 감싸기도 하고,
태권도화를 신고 연습하기도 했다.
"탕헌아 허리 더 집어넣어"
"빠질 때 뒤로 확 더 빠지고"
며칠 전 대회 연습을 하다가 무릎을 다쳐서 시합을 뛰지 못하는 동기가,
열정을 다해 도장에 나와 피드백을 주고 코칭을 해주고 있었다.
품새도 잘하고, 겨루기도 참 잘하는 든든한 동기가 무릎을 다쳐서 마음이 아프고
함께 시합을 뛰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공허하기도 했는데,
완치하지도 못한 상태인데 도장에 나와 함께 자리를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드디어 시합 날이다.
태권도하면 가장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국기원'에서 대회가 열렸다.
함께 출전하는 동기들과 후배들을 응원하며 몸을 풀고 내 차례를 기다렸다.
발바닥 물집의 고통이 매우 신경 쓰였고, 제대로 스텝을 밟을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아드레날린을 믿고 경기에 임하기로 마음먹었다.
"윤탕헌 파이팅!!"
"가자 가자!!!"
"양손 들고 기합 모아서~~!! 윤탕헌 파이팅!!!"
동기, 후배들의 전투적인 응원을 받으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왼발잡이이며, 받아차기, 반달찍기가 주특기였던 나는 스텝을 이용해 거리를 벌리고
상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서로 점수를 주고받으며, 시간은 1분이 채 남지 않은 상황.
1점을 뒤지고 있었다.
"찍어!!! 찍으라고!!!"
"형!! 들어가야 됩니다!!"
응원석에서 동기와 후배들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머리 득점을 이용해 상황을 역전시키라는 뜻으로
찍기 기술의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 제대로 된 공격과 스텝을 밟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반창고가 밀리고 물집은 더 찢어져 아드레날린만으로는
고통을 이겨낼 수 없는 상황이 오고 만 것이다.
거리를 벌릴 수도, 좁히면서 공격을 할 수도 없었고 결국 경기가 종료되어
1점 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가쁜 숨을 내쉬며 상대 선수와 인사를 나누고 상대 코치에게 예를 표한 뒤
돌아서 나의 경기를 지켜봐 주시던 감독님께 두려움을 안고, 절뚝거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수칙이 있었다.
경기에서 허무하게 지지 않고, 절대 상대방의 공격에 겁을 먹고 등을 보이지 않는 것.
위 수칙을 어긴 경우, 감독님의 불호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감독님 앞으로 달려가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혼날 준비를 속으로 하고 있었다.
깔끔하고 포스 있는 자세와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감독님께서는 내 눈을 바라보며,
딱 한마디를 하고 경기장 밖을 나가셨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절뚝거리며 국기원 1층을 계속해서 혼자 돌아다녔고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경기에서 패배하고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했으며,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나를 이기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스럽고 창피했다.
나 자신도 이기지 못한 상태에서 그 누구와 겨루기를 하여 이길 수 있겠는가.
시합에 나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나약한 내 모습을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감독님의 그 한마디는 단순히 승리와 입시에 집중하며 마치 기계처럼 운동하던 나에게 변화를 일으켰고,
그날 이후로 생각을 달리해서 운동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바른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성취하는 삶으로 말이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승패와 등수의 압박을 맞이할 텐데, 그때마다 결과와 등수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내가 세운 목표와 마음먹은 자세를 끝까지 지키면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열심히만 달리던 나에게 방향의 선택권과 지혜를 심어주신 감독님께 다시 한번 너무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