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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Dec 06. 2018

채식주의자

한강 연작소설을 읽고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 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 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을 걸음걸이로.


그녀는 하루하루 말라갔다. 그렇잖아도 튀어나온 광대뼈가 볼썽사납게 뾰족해졌다. 화장하지 않으면 피부가 병자처럼 핼쑥했다. 육식을 끊는다고 모두 아내처럼 살이 빠진다면 누구든 체중감량에 애를 끓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가 여위는 건 채식 때문이 아니었다. 꿈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상 그녀는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아내는 약간 달라붙는 검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두 개의 젖꼭지가 분명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녀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을 살피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전무 부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태연을 가장한 그녀의 눈이 호기심과 아연함, 약간의 주저가 어린 경멸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나는 알아보았다.


이대로 좀 이상한 여자와 산다 해도 나쁠 것 없겠다고 나는 가끔 생각했다. 그냥 남인 듯이. 아니 밥을 차려주고 집을 청소해주는 누이. 혹은 파출부 같은 존재로서라도. 그러나 한창나이에 무덤덤했다곤 하나 결혼생활을 유지해 온 남자에게 장기간의 금욕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회식이 있어 늦게 들어온 밤이면 나는 술기운에 기대어 아내를 덮쳐 보기도 했다. 저항하는 팔을  누르고 바지를 벗길 때 뜻밖의 흥분을 느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정말 강렬한 책이다. 2016년 부커상을 수상하고 영국과 미국, 독일 등에서 번역 출간되며 뉴욕타임스 선정 최고의 책 10권에 뽑혔다. 최근 2018년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이제야 집어 든 나는 새삼 놀라웠다. 그녀의 글은 확실히 강한 흡입력으로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단숨에 나를 채식주의자 아내의 꿈속으로 빨아들였다.

남편의 시점에서 시종일관 이야기는 서술되지만 너무나 평범하고 이기적이고 전형적인 대한민국 남성의 모습인 그가 말하는 아내는 평범해서 자신의 열등감을 건드리지 않고 과분하지 않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여성이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며 냉장고의 고기를 전부 내 다 버리고 채식주의를 선언하며 사건이 시작된다.


어느 날 그녀가 꾼 꿈.. 그것은 어린날 자신을 물어덨 개가 잔인하게 식용으로 둔갑해 밥상에 올랐던 기억들이 아주 오랜 시간 잠재해 있다 갑작스레 떠오른 악몽 같다.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한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대 막대에 매달려  있고  마르지 않은 붉은 피가 떨어져 흰옷이 붉어지고 나무 뒤에 숨어 자신의 입과 손에서 발견한 피.. 생생하게 떠오르는 날고기의 감촉, 내 얼굴이 눈빛이 너무나 익숙하면서 낯선 생생하고 끔찍하고 이상한 꿈.


우리 어린 시절 한 번쯤은 동네 강가나 공터에서 개를 잡는 현장을 목격했을  수 있다. 나도 외갓집에 갔다가 할아버지가 개를 잡는 걸 멀리서 보고 너무나 무서워 근처에도 못 가고 도망 온 기억이 있지만 개를 패고 털을 그을려 도살하는 현장을 본 사촌동생은 아직도 그 기억이 너무나 생생해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그런 기억이 있다고 해서 모두 채식주의자가 되는 건 아니다. 그 동생은 아주 육식을 즐기고 나도 아주 고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개에 물린 상처를 낫게 하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말에 냄새나는 고기를 억지로 먹었던 주인공 영혜가 어느 날 악몽을 꾸고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그녀는 평범하지 않은 길을 가게 된다. 그녀를 이상하게 보는 남편, 가족, 직장 상사의 가족 모두 그녀를 비 정상적인 사람처럼 바라본다. 마침내 그녀의 아버지가 억지로 그녀의 사지를 잡고 입에 고기를 밀어 넣는 순간, 그녀는 칼을 들어 자신의 팔을 긋는다.


평생을 조용히 튀지 않게 무채색으로 살았을 그녀, 그런 그녀를 선택한 남편의 바람을 완전히 뒤엎고 평범하지 않는 길로 탈출하는 영혜에게 남편은 술기운에 강제로 관계를 하고 아버지는 폭력을 휘두른다. 가부장적 사회에 저항하는 여성의 모습이 애처롭지만 엄마나 언니조차 영혜편이 아니고 영혜를 뺀 그 가족 모두가 한편이다. 우리 사회에서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걷는 여성이 언제나 듣는 말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조차 조용히 남들처럼 살라는 말 아닌가?

그녀가 벗어던진 브래지어는 그냥 단순한 브래지어가 아니다. 그녀를 억압하고 그녀를 힘들게 하는 모든 관계였을 것이고 그걸 벗어던진 그녀가 하는 말은 그저 "더워서"다.  내가 더우면, 내가 벗고 싶음 벗을 수 있는 게 자유 아닌가? 그런 그녀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또 다른 여성들, 남편의 시선을 벗어던지고 영혜가 하는 말은 " 내가 믿는 건 내 젖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이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오직 내가 원하는 데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영혜는 그 한계에 저항하기 위해 팔을 긋고 병원에 들어가 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흑염소를 몰래 한약이라고 먹인다. 자신의 배로 낳은 자식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느끼는 비애를 공감한다. 세상을 살면서 내편이라고 믿었던  유일한 사람들조차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만 혼자가 되는 상황속에서 얼마나 공허하고 외로웠을.  마지막에 그녀 손에 쥐여 있던 힘없이 죽은 동박새.. 더워서 웃옷을 벗었을 뿐이라며 조용히 앉아 상처 난 손목을 핥으며  동박새를 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작가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그녀의 고통을 선명하게보여준다 .


연작소설 "몽고반점" 영혜의 형부 관점에서 스토리가 연결된다. 예술인지 외설인지 기묘한 감정에서 처제에게 욕망을  갖게되 그 욕망 결국 다시 영혜를 정신병원으로 몰고간다.  영혜언니 인혜의 관점으로 이어지는 "나무불꽃"에서 결국 영혜는 극한의 상황에서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죽음을 앞둔 위기로 치닫으며 이야기는 끝나버린다.  어쩌면 꿈일지도 모르는 현실감있는 소설..간만에 손에서 책을 뗄수 없었다.


작가는 평범하게 정상적으로 살 수 없는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감추고 살아온 환멸, 고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단한 사람이다. 이런 작가가 대한민국을 벗어나 세계에서 인정받게 된 걸 뒤늦게 축하하며 그녀의 팬이 되길 자청한다. 50살이 안된 젊은 작가이기에 20년 안에 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녀를 응원해보련다. 간만에 발견한 보석같은 작품, 멋진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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