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앞치마를 입어 본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주부 20년 차이지만 앞치마를 입고 뭘 해본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물론 회사를 다닌다는 이유로 요리를 아예 안 하지는 않았지만 앞치마 입고 정성껏 요리를 할만한 여유가 늘 없었다. 후딱 한 끼를 먹기 위해 최대한 간단하고 빠르게 요리해서 굶지 않는 형태로 먹었고 몇 년 전까지 내 삶도 그랬다. 바쁘고 여유가 없었다. 바쁜 삶에 제동을 걸고 느리게 살기 시작한 이후 책도 보고 시도 읽고 화초 키우는 맛을 알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의 많은 시 중에서 유독 '앞치마를 입으세요'가 나를 잡아끈 건 좀 의외다. 왜? 뜬금없이 앞치마를 입고 싶어 졌을까? 설마 내가 생전 안 입어본 꽃무늬 앞치마를 입고 시간이 좀 걸려도 천천히 깊은 맛을 내는 요리를 해보고 싶어 진 걸까? 글쎄.. 꼭 그렇다기보다는 흙냄새 비누냄새 반찬 냄새를 싫어했던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니 수녀님의 시가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인 것같다.
일하는 여자로 남고 싶다는 소망데로 평생 밖에서 일을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집에서 앞치마를 입고 반찬 냄새를 풍기는 일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삼십 대까지는 차라리 아줌마를 두고 밖에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강했고 사십 대 초까지도요리에 재미는 당근 알지 못했고 화초를 가꾸는 즐거움도 알지 못했다. 더러운 건 못 참는 성미에 청소는 유일한 즐거운 노동이었다. 여성 노동력 착취라는 부당함에 반기라도 들고 싶었는지 앞치마를 입고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삶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져 여유가 생겨서 인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금 더 기쁘게 움직일 때 앞치마가 희망을 재촉하는 친구가 될 거라는 수녀님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바쁜 일터에서 조금씩 멀어져 내 집에서의 시간이 늘어날 때 나의 삶이 지루하다고 느껴지기 쉽다. 그럴 때 앞치마를 입는다는 건 어쩌면 특별한 의식 같은 거 일지도 모르겠다. 군인이 제복을 입듯 학생이 교복을 입듯 경건하게 집중하려는 마음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에 집중하고 청소에 집중하는 모습. 어쩌면 주부라는 타이틀을 순수하게 사랑과 기쁨으로 한 번도 받아들여 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의식 인지도 모르겠다.
앞치마를 두르고 오늘은 화초에 물을 주고 요리를 하고 광나게 청소를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려 봐야겠다. 삶이 지루할 틈이 없다. 쉬는 날 놀아야지 집안일하는 걸 고역으로 생각하던 젊은 시절의 내가 보면 놀라겠지만 오늘은 화분 몇 개 사다 화초들 분갈이를 좀 해줘야겠다. 그나저나 어떤 무늬 앞치마를 사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