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했다를 읽고
얼마전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맨날 똑같은 시간,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연을 보고 새로운 곳에서 잠을 자고 새로운 곳에서 책도 보고 글도 쓰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여행길에 책 제목에 끌려 구입한 구본형의 “ 나는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했다”라는 책을 읽으며 공감한 부분이 많았다. 저자는 43세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고 46세에 다니던 회사 IBM을 그만두고 나와 일인기업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내가 42세부터 삼 년 반 동안 일인기업을 운영했고 47세에 글을 처음 쓴 사실 때문일까? 마흔에 대한 구본형 작가의 여러 구절 이 딱 내 얘기 같았다.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진국이 나오는 시기다.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오르고 온갖 양념과 채소들의 진수가 고기 맛에 배고 어울리는 먹기 딱 좋은 시절이다.
40대는 이제 특별한 사회적 상징을 담은 단어가 되었다. 그것은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진 나이다. 40대의 10년 가운데 어딘가에서 버려진 사람이 늘고 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버려졌고 성장의 문턱에서 거부되었으며 왕성한 상태에서 퇴출되었다.
내게 마흔은 각성의 시기였다. 나는 40대의 10년 사이에 이루어지는 위대한 종결과 똑같이 위대한 새로운 인생에 대해 말하고 싶다. 40대는 사회적 폐기물이 된 자신을 구해내어 빛나는 삶으로 창조하는 시간이다. 어쩌면 반전만이 이 시기를 사는 교훈일지 모른다. 전환과 변곡, 이 두 단어야 말로 40대를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언어이다.
도대체 나랑 너무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검색해보니 이미 암으로 돌아가신 지 4년이 되신 분이었다.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내 고민을 함께 토로하고 싶은 인생의 멘토가 되셨을 분 같은데 참 아쉽다. 책 속에 죽음에 대한 다음 구절은 가슴이 저릿하게 내 마음속에 남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천천히 삶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다. 두루마리의 앞부분, 즉 젊은 시절의 그림이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싱싱하고 발랄하며 모험적인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짜 놓은 인생의 직물은 은은하고 통찰력에 차 있으며 완숙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의 부름에 따라 모두 놓아두고 낡은 껍데기만 남기고 떠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부디 그러 수 있기를 기도하다. 아름다운 봄날은 빨리 지나간다. 모두 그리워하고 섭섭해한다. 그러나 가을은 또한 곱게 온다. 나이가 머금은 가을을 즐기는 것이다.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릴케처럼 말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신이여, 우리 각자에게 합당한 죽음을 주소서. 그리고 모두에게 그 삶에 걸맞은 합당한 죽음을 주소서.
과연 내게 합당한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는 바람대로 합당한 죽음을 맞았을까?
‘죽음이 명함을 남겨놓고’ 간 다음 적절한 때, 사랑하는 사람들 품에서, 참을 수 있을만한 짧은 통증 속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았을까? 궁금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늘 이런 소리를 듣는다. 엄마는 절대 아빠처럼 일찍 죽으면 안 된다고. 건강해야 하고 치매도 걸리면 안 되고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 얘들아 그건 엄마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살아 있는 하루하루를 너희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밖에 없단다. 그저 언젠가 너희들을 두고 먼저 가는 날 후회 없이 사랑했다고 웃으며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란다."
아무튼 집을 떠나 미국에 머무른 건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체감 일수는 보름은 된 것 같다. 물론 제일 큰 이유는 시차 때문 일 수 있다. 도착 첫날밤 12시에 눈이 떠져 새벽까지 영화도 보고 라면도 먹고 간신히 버티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6시 반부터 움직였다. 낮에는 정오 12시면 졸리고 그래서 잠이 들면 저녁때나 눈이 떠진다. 그러니 다시 또 밤에 잠을 청하면 잠이 안 오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항상 머리가 시키면 몸이 따라서 움직이며 평생을 가만히 못 있고 바지런하게 살았는데 드디어 몸이 파업을 한 거다. 머리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나는 잠이 안 오고 지금 몹시 배가 고프며 네가 움직이라고 하는 지금은 다시 졸리다. 뭐 이런 식이다. 머리 따로 몸 따로인 며칠을 보내다 보니 이것 또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왜 항상 머리가 잘 시간이라고 하면 졸리지 않아도 자야 되고 일어나라고 하면 졸려도 일어나야 되는지 따져 본 적이 있는가 말이다. 가끔은 내 몸의 말도 좀 들어주고 내 몸이 원하는 걸 해 주는 게 맞았다. 그렇게 몸이 시키는 대로 생활하다 보니 머리도 덩달아 쉬게 된다.
끊임없이 무언가 생각하고 걱정하고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이 싹 사라졌다. 멍 때리기 최적의 상태인 것이다. 그저 배가 고픈지 졸린지 원초적인 나의 상태로 돌아간 거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참으로 천천히 간다. 서울의 24시간이 낯선 곳에선 48시간처럼 길게 느껴진다. 몸과 머리가 늘어져 시간도 함께 늘어진 이 느낌은 단순히 시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은 익숙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시간이 창조되는 것이다. 내가 창조한 새로운 24시간은 기존의 것과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모두들 여행을 최고로 치는가 보다. 그리고 여행중 영감을 주는 책읽기야말로 나를 쉬게 하고 나를 찾게 하는 최고중의 최고임을 알게 되었다.
어디 한번 다시 시작해 볼까?마흔 일곱 딱 좋은 때 아닌가? 요이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