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by Jenny

주변에 젊은 친구들이 자꾸만 사표를 던지고 떠난다. 나도 그랬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길이 아니라면 얼른 최대한 빨리 결정해서 다른 길을 찾아가는 게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딘가 다른 길이 있겠지 하고 막연히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최대한 신중하게 판단할 일이다. 최근 퇴사 후 세계여행이 유행병처럼 돌았던 적도 있지만 세계여행 정도 떠나려면 적어도 한 회사에서 십 년, 이십 년 정도는 일하고 떠나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뭐 이런 게 통하는 거 아닐까?


나도 첫회사에서 석 달만에 나와 혼자 유럽여행을 다녀왔었고 그 후 전시업에 입문했으니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면 얼른 풀고 다시 끼우는 게 맞다. 문제는 일할만 하면 도지는 방랑벽이다. 보통 삼 년에서 오 년 사이에 찾아오는 요놈의 병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많다. 지난에 알랭드보통 "여행의 기술" 리뷰에서 발췌했던 보들레르의 말을 빌면


삶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다. 이 환자는 난방장치 앞에서 앓고 싶어 하며 저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딘가로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않는다.”


이런 식 아닐까? 저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모든 병이 나을 것 같지만 다른 자리로 가면 다시 또다시 옮겨야만 나을 것 같은 이직병? 좀 더 나은 연봉으로 좀 더 편한 곳을 찾아보지만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인 그 밥상 아닐까? 아마 이건 내 능력의 한계로 나만 느낀 현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 년마다 삼 년마다 점프 업하면 정말 고지에 도착할 수는 있을까?

재직기간? 사실 뭐 그리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굵고 짧게 일 년만 일해도 번아웃 될 수 있고 개인 사와 겹친다면 한 달도 십 년처럼 길게 느껴질 수 있는 법이니 꼭 오래 일해야만 쉴 자격이 있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곳에서 떠나 그냥 논다는 개념이 아니라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놀다 보면 일하기 싫어질 수 도 있고 일이 하고 싶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이 싫어서가 아닌데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보통 여성은 애를 낳고 경력단절로 인한 경우가 흔하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무기력감에 휩싸여 남에게 뒤쳐지고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될 때 또는 남이 봐서 꼭 필요한 역할이 없을 때 복귀가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반면 재충전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를 얻어 더 좋은 기회를 찾게 되기도 한다. 독서도 하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고 명상도 하고 자아성찰도 하면서 때를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이 '때' 도 적당한 유효기간이라는 것이 있다.

매일 같은 시각 일어나서 같은 시각 밥을 먹고 출근해서 일하는 반복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기를 얻는 게 정말 바람직하지만 그 또한 적당한 선이 있다. 년씩 늦게 일어나서 매일 TV를 보고, 매일 영화를 보고 매일 독서를 해도 새로울까? 내 경험을 보면 그렇지는 않았다. 적당한 여가와 적당한 업무, 적당한 스트레스와 적당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 버렸네?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놀다 보니 그냥 쭉 쉬게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그래서 너무 긴 휴식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몇 년이 후딱 가버린다.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경력단절이 생겨 버려 재취업이 힘들어지는 게 현실이지만 가능하면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최소한의 자기 시간을 갖고 뭔가를 배우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한숨 자고 커피 마시고 수다 한두 시간 떨면 하루가 다 가버리는 생활을 하기 싫어도 영원히 하게 될 수 도 있다. 아줌마인 내가 아줌마의 여가생활을 모를 리가 있는가? 물론 그 또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인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 간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 공간을 지키지 못하면 혼자 있는 방법을 못 찾고 나를 찾는 시간도 잃어버릴 수 있기에 잘 노는 게 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표를 던지는 동료들이 잘 쉬고 잘 놀고 반짝반짝 해진 눈빛과 영혼과 육체로 다시 만나게 되길 바라며 오늘도 응원의 인사를 보낸다.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쉬어라! BUT 더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