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by Jenny


한 해를 돌아보며 인간관계를 돌아본다. 몇십 년 동안 꾸준히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온 사람도 있고 그럭저럭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과연 계속하는 게 맞는가 싶은 관계들도 있었다. 대체로 형식적인 관계일수록 기대도 없고 미련도 없어 시간 속에 묻어두면 자연스럽게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항상 어렵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과도하게 의지하고 챙겨주고 또 그래서 상처를 받습니다. 너무 많은 요구를 하고 너무 많은 요구를 받아 결국에는 서로 가 감당이 안 되는 채무관계처럼 돼버립니다. 그래서 관계는 난로를 다루듯 해야 합니다. 너무 뜨겁게 가까이 다가오면 한걸음만 뒷걸음 하세요


혜민스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상처를 받는 경우는 보통 가족이나 친구처럼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는 경우다. 과도하게 의지하고 챙겨주고 내 기대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상대를 섭섭해하고 미워하며 힘들어한다. 내 경우 한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또한 인간관계의 대표인 고부관계, 조직관계, 교우관계의 人間이었다.


형식적으로 지내온 아이들 할머니와 20년 만에 언쟁을 하고 휴전 중이다. 내게 뭔가를 기대하시는 게 늘 부담스러웠고 결국 솔직한 심정으로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을 쏟아냈다. 사실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를 풀려면 한참 더 토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직도 맺힌 응어리를 발견한다. 물론 나보다 더한 응어리를 가지고 계시겠지만 더 하면 상처만 남길까 싶어 그만뒀다. 이대로 뒷걸음쳐서 좀 관계를 잊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조직에서도 오랜 시간 함께 일한 동료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오히려 독이 되어 섭섭함을 자꾸만 쌓아두는 나를 발견했다. 결국 단순한 동료로 업무상 최소한의 일만 상의하고 기대를 접고 형식적인 관계로 남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쓸데없는 채무관계는 만들지 말고 속 편하게 살자가 결론이다.


교우관계도 가끔 만나 즐겁고 안부를 묻고 밥 한번 먹는 친구가 제일 속 편하게 오래 만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자주 만나 많은 얘기를 할수록 기대가 커지고 많은 요구를 하게 되어 집착하고 실망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게 되는 것 같다.


긴 인생을 살면서 인간관계에 다치지 않으려면 뜨거운 난로는 뒷걸음치고 추우면 조금 다가서 온기만 유지하는 게 방법임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너무 뜨거워 손을 데고 나서야 물러서는 어리석음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데... 누군가에 기대고 의지하는 나약한 마음은 함께 갈 수 있을 거라는 착각만 불러일으킨다.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새해 나의 인간관계는 이렇게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른다.

연정에서 우환이 생기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친구를 동정한 나머지 마음이 얽매이면 손해를 본다.

가까이 사귀면 이런 우려가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애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 속에서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