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수집하는 것은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와 정반대다. 법정 스님은 많이 가질수록 많이 얽히게 되고 번민에 사로잡힌다고 말씀하셨다. 버리면 버릴수록 무심(텅 빈 마음)이 되고 그래야 울림이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의 많은 번뇌가 소유와 집착에서 비롯되는 만큼 영혼의 치료법으로 무소유의 행복을 권고할 수는 있다. 그런데 부단히 새 제품을 만들고 광고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무소유는 합치되기 어려워 보인다. 광고는 구매욕과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수집도 소유의 한 형태에 속하기 때문에 수집가는 무소유를 실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수집가에게 소유는 단순한 소비자가 생각하는 소유와는 현저하게 다른 의미를 지닌다. 벤야민의 수집 이야기는 행복한 소유, 창의적인 소유의 가능성을 말한다. 물론 수집이 호사 취미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돈도 있어야 하고, 수집품을 구하기까지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어른이 수집가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거의 누구나 한때 수집가인 시절을 지니고 있다. 유년시절 말이다. 기억 속 유년의 공간에는 무언가를 수집해놓은 상자나 서랍이 있기 마련이다. 나처럼 종이 인형과 종이옷으로 가득한 상자일 수도 있고, 딱지나 구슬을 수집한 상자도 있고, 온갖 잡동사니로 채워진 서랍도 있다. 대부분의 아이가 어른의 눈에 '치울 줄 모르는 아이'가 되는 이유는 아이들이 수집가이기 때문이다. "주어온 돌조각, 꺾어온 꽃, 잡아온 나비 하나하나 아이에게는 수집의 시작이고, 또 아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이 아이한테는 하나로 통합된 수집품을 이룬다."(『일방통행로』)
아이의 수집품들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모은 것이라기보다는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여기에는 하찮아 보이고 사소한 물건에서도 그 진품과 가치를 알아보는 아이의 안목이 작용한다. 진정한 수집은 반드시 가치의 기준에 대한 어떤 전문가적 지식을 갖출 필요는 없다. 직감적으로 작용하는 개인의 안목이 종종 수집을 결정할 수 있다. 멕시코에서 만든 코카콜라 한정판을 구할 때처럼 미리 작정하고 구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서재를 열다」라는 글에서 벤야민은 자신이 대학생 때 발자크의 소설 『상어의 가죽』을 어떻게 구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프랑스의 유명한 삽화가의 그림이 그려진 호화판이 경매에 붙여졌지만 바로 앞서 그 삽화가의 다른 전집에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정작 이 호화판에 아무도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 결과 경매는 유찰이 되었고, 다음날 아침에 대학생 벤야민은 전당포로 되돌려진 그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경매에 얽힌 이모저모뿐 아니라 수집품을 발견하게 된 장소들은 수집의 역사에서 중요하다. 벤야민의 서재에 꽂힌 책들은 나폴리, 뮌헨, 단치히, 모스크바, 플로렌스, 바젤, 파리 등의 도시들에 대한 기억과 결부된다. 수집품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은 "수집가의 커다란 기쁨이자 한 개인의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된다. 필요한 물건을 손쉽게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물건은 유용성 외에 아무런 이야기도 전달하지 않은 채 침묵한다. 그와 달리 수집품에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이 기억이 수집가에게 밀려든다." 기억된 것, 생각된 것은 마치 수집품을 감싸는 상자나 액자, 혹은 수집품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생각될 정도다.
수집품은 수집가의 고유한 기억과 지식이 적힌 일종의 "마법적인 백과사전"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수집품은 단순한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물론 그 가치는 오로지 수집가에게만 지니는 가치이고 남들에게 전달되기 힘들기 때문에 남들이 볼 때 수집품은 쓸모없이 단순히 쌓여있는 물건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수집가는 폐기물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처럼 자신들의 수집도 창의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사물의 세계가 바로 자신들을 향해,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보여주는 얼굴을 알아보듯이, "( 『일방통행로』) 수집가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모든지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돈으로 얻은 물건들이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짐멜이 말한 것처럼, 돈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환상을 자극"하면서 행복에 대한 거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지만 현대적인 탐욕 또한 야기시켰기 때문이다. 부단히 새로운 것으로 그 열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데, 이미 다음 순간 그것은 옛 것으로 폐기된다. 행복의 진정한 실현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에 수집은 옛 것을 새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부단히 새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소비자와 달리 수집가는 수집품에서 상품의 성격을 지우고, 사용가치와도 교환가치와도 다른 가치를 부여한다.
벤야민은 어려서부터 수집광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엄청난 책 수집가가 되었다. 그러나 망명이라는 혹독한 시대에 벤야민의 수집품들은 새로운 운명을 맞는다. 베를린의 서재에 있던 책들 일부를 친구가 있는 덴마크 집으로 옮겨오기도 하고, 생계 때문에 일부 팔기도 했다. 정치적이고 유물론적인 사상으로 지평을 넓히면서 집단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비평가로서 벤야민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수집가의 행복이란 사적 인간의 행복"이다. 그러나 부정되고 비판된 모든 것이 다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새로운 맥락에서 구제될 수 있는 가치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이루어지는 소유의 삶을 돌아보면 이 말을 수긍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