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미애 Aug 12. 2020

벤야민, 흔적 찾기와 읽기

  

벤야민은 탐정 소설 애독가였다. 브레히트와 함께 탐정 소설을 직접 써볼 생각도 했다. 등장인물, 구성, 장면묘사까지 시도했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두 사람은 공동으로 기획한 탐정소설에서 새로운 유형의 탐정 유형을 소개하고, 죄를 지은 인간의 악함보다 범죄를 불러일으킨 환경이 더 치명적이라고 보았다. 이 의견은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벤야민이 치밀하게 읽은 탐정소설 중 으뜸은 에드거 앨런 포였다. 벤야민은 보들레르에 대해 쓴 에세이에서 포를 언급한다. 보들레르는 프랑스에서 포를 처음 번역한 사람이고 또 포의 탐정소설이 일정하게 보들레르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에 포의 단편 『마리로제의 수수께끼』가 언급된다. 저 유명한 탐정 뒤팽이 마리로제라는 파리의 한 젊은 여자가 살해당한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뒤팽이 다른 경찰과 다른 점은 범죄현장을 탐색할 뿐 아니라 사건과는 무관해보이는 신문기사나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하나에서도 단서를 찾는다는 점이다. 이 단편을 읽어보았는데, 뒤팽의 다음 말이 인상적이었다. "범죄수사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오류는 오직 직접적으로 당면한 문제에만 조사를 국한시키고, 간접적이고 부수적인 일은 전혀 무시한다는 점이다...대부분의 진실은 사건과 관계가 없어보이는 것에서 나타나는 법이다... 가장 가치있는 발견들은 대체로 간접적, 부수적 내지 우발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 뒤팽의 이 말은 벤야민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을 것 같다. 사소한 흔적이라도 놓치지 않고 그 의미를 밝혀내는 것, 이는 벤야민의 문학비평을 이끈 방법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실을 밝혀내는 단서가 되는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흔적 찾기에서 지침이 있다면 아마 이런 지침일 것이다. '맥락에서 돌출해있는 것을 찾아라!' 그런데 아무리 맥락에서 튀어나와 있어도 그것이 너무 사소해보이는 것이면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쩌면 대부분의 흔적은 놓치게 되고, 너무 늦게밖에는 찾을 수 없는 것인지 모른다.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벤야민이 언급하고 있는 시인 다우엔다이의 아버지의 약혼사진에 들어있는 단서도 마찬가지다. 시인의 아버지는 약혼녀를 꽉 붙잡고 있지만 그 약혼녀의 시선은 어딘지 먼 허공을 향해있다. 그녀는 여섯번째 아이를 낳은 직후 침실에서 자살하게 된다. 사진 속 약혼녀의 시선에 대해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의 시선은 그[시인의 아버지]를 비껴가고 있고, 마치 뭔가 빨아들이듯이 불길하게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선집 2권, 159쪽) 이 시선은 약혼이라는 맥락에 맞지 않고, 맥락에서 돌출해 있다. "오래 전에 흘러간 순간의 그러한 모습 속에 우리가 되돌아보면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의미심장하지만, 잘 눈에 띄지 않는 그런 곳에, 미래에 일어날 일"(159쪽)이 깃들어있다. 약혼녀의 시선은 미래에 일어날 슬픈 자살이 예고되고 있는 흔적이다. 하지만 그 흔적은 너무 늦게 찾아진다. 그래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듯 누군가의 부고가 날아들 때면 우리는 말문이 막힌 그 경악의 순간에 죄의식을, 비난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네가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니더냐?"(『일방통행로』, 154쪽) 이 글귀에서는, 청년시절 벤야민의 막역한 친구였던 시인 하인레의 자살을 애통해하는 벤야민의 모습이 읽힌다.      


"징표, 예감 그리고 신호는 낮이고 밤이고 물결처럼 우리의 신체기관을 통과하고 있다. 그것들을 해석할 것이냐 아니면 이용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다. 이 둘은 그러나 합일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들을 놓치고 말았을 때, 그때야 비로소 그것들은 해석 가능해진다. 그때 비로소 그것들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일방통행로』, 154쪽)     


흔적 찾기와 읽기가 지난한 작업이라고 해도 벤야민은 이 작업을 늘 염두에 두었다. 이론이 마련해주는 편한 길을 마다하고 흔적을 찾아나서는 벤야민. 망명 시절 파리의 국립박물관에 앉아 케케묵은 자료들까지 꺼내서 먼지를 털어내며 읽고 있는 모습은 사소한 단서를 찾는 탐정 뒤팽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풍경이 아우라를 잃을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