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72

by 포근한 바람

아프다는 것과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은, 같은 선상에 있지만 다른 말이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그는 아프지만 스스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었다. 평상시 하던 일의 범위가 점점 줄기는 했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못하지는 않았다. 혼자서 걷고 혼자서 씻고 혼자서 화장실 가고 혼자서 먹는 일을 하나하나 하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그는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는 그 모든 과정이, 여하튼 병명을 알기만 하면, 원인을 알게 되면, 당연히 방법을 찾아낼 것이고 그러니 낫는 쪽으로 돌이켜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니던 병원에서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 아부지는 동생에게 연락을 했고 동생은, 병원에서 집으로 다시 서울의 병원으로 부모님과 함께 움직였는데, 그 때 이미 그는 거의 걸을 수 없는 상태였고, 그래서, 그 날, 그 병원, 그 밤에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은.


병원 응급실로 들어갔지만, 당장 입원은 되지 않는다 했다. 내일 다시 검사를 하자고 했고, 갑작스레 크게 다쳐서 병원에 간 게 아니니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잘 걷지 못하게 된 그를 어디 먼 곳으로 데려갈 수도 없고, 그래서 병원 근처에 숙소를 잡아 일단 아부지와 머물게 했고, 그 밤이, 누구보다 아부지에게 답답하고 두려웠을 것이었지만, 떠나는 자식들의 뒷꼭지를 따라오던 아부지처럼 따라나설 수도 없었던 그는, 가족들이 쉬시라고 이불 다독이며 눕혀준 그 낯선 방에서 홀로 남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를,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 그 어느 날에 맥락 없이 터트렸고.


그래서, 첫 병원 근처에서의 그 첫날, 그 날엔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나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던 그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사실은, 그가 이후 주욱 죽음으로 달려가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좀더 세심히 아픈 그를 배려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길어야 몇 십분. 그를 눕혀놓고, 쉬셔야 하니까, 걱정 많은 아부지를 다독이느라 멀리 가지도 못하고 근처에서 다 같이 모여 얘기 나누던,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던 그에겐 너무나 멀고 길었을, 그래서 낯선 곳에 버려졌다는 느낌을 갖게 한 그 상황을 만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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