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88

by 포근한 바람

세 아이의 엄마란 이름으로 불렸다지만, 당연하게 그는, 내 이름이 붙은 00이 엄마로 가장 오래 불렸을 것이다. 동생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고 나서 동생 친구들 엄마들이나 그를 동생들 이름을 붙여 누구 엄마로 불렀을뿐 동네에서는 대개 내 이름이 붙은 00이 엄마로 통했으니, 그의 장례식장에서 동생 친구의 부모들이 동생 이름을 붙이며 누구 엄마로 부를 때마다 그게 그의 다른 호칭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순간순간 낯설곤 했다.


그는 아들인 막내 동생의 엄마로 더 불리고 싶었을까? 아들을 귀히 여기고 기꺼워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던지, 아니면 그래도 맏이의 이름으로만 불린 시기가 있으니 이미 익숙해져서 별로 따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인지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의 이름은, 그 시기 여자 아이들에게 흔히 붙여주는 이름이었다. 영화 제목으로도 나오기도 했던, 아마도 동네에 서너 대여섯 명은 있었을.


외할머니나 할머니 이름이 오히려 신경 써서 지었다 싶게 요즘 시대에 불러도 이질적이지 않은 느낌인데 비해 그와 이모들 이름은, 막 지었다 할 수는 없지만 많이 고심해서 지었다 보기는 어렵다. 막내 이모가 태어나기 전에 외할아버지가 이미 부재하셨으니 막내 이모 이름은 어쩔 수 없었다 쳐도 큰이모와 그에게 그 똑똑했다던 외할아버지가 흔하디 흔한, 子가 들어가는 이름을 지어줬다는 것은 꽤 여러 갈래의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외할아버지가 실종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셔서 세 딸들 밑으로 줄줄이 자식을 더 낳고 그 중에 아들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 아들에게는 바로 옆집에 살던 외작은할아버지의 아들들이 가졌던 돌림자를 넣어 이름을 지으셨겠지. 한자로는 의미가 있겠으나, 어감 자체는 썩 좋지 않은 그 글자를 넣은 이름에 대해, 단어의 어감에 민감한 나와 동생은 둘이서 아무래도 저 글자는 좀... 이라며 킥킥댔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도 하다.


딸만 셋인 큰집이어서, 마지못해서인지 당연하다 생각해서인지, 외할머니는 담도 없이 바로 옆집에 살던 작은집의 두 아들 중 막내를 양자로 들였다. 그래서 실제 혈연관계는 5촌 당숙인 법적 ‘삼촌’이 우리에게 생겼다. 세 딸 모두 초등학교만 겨우 보낸 외할머니는, 대학생이 흔치 않던 시대에 그 ‘양자’를 대학까지 가르쳤다. 마침 우리 집과 삼촌이 다니던 대학이 그나마 가까워서였는지, 어릴 때 그 삼촌이 방 두 칸인 우리 집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학교에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공부 욕심이 없었을까? '삼촌'이 양자라는 사실은 당자를 포함해 조카인 나까지 아는 일이었고, 듣기로 바로 옆집이었어서 사실은 법으로만 양자이지 외작은할머니가 아들 가진 유세란 유세는 다 떨어서(왜 안 그렇겠나, 자기 배 아파 낳아 기른, 그것도 아들!인데) 막상 외할머니는 그 양자와 표면적으로라도 적절한 모자관계를 형성하기 매우 어려웠다고 들었다. 그 양상을 다 보고 자란 그가 자기는 못한 공부를 '법적 남동생'이 당신 어머니의 지원으로 하는 것도 모자라 그 동생을 당신의 지붕 밑에 들이게 되었을 때 어떤 마음으로 그 선택을 했을지 이제 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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