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00일의 기록 89

by 포근한 바람

입덧같은 것은 없었다 했다. 임신 기간 중에 별다른 특이 사항 같은 것은 경험한 일 없이 너희들을 낳았다고 그는 내 임신 소식을 듣고 말했었다.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안 이후에 앉으나 서나 계속되는 울렁증을 견디면서도 엄마가 그랬다니 나도 그러려니 했었다.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버스에 올랐다가.


이미 상당 기간 동안 구름 위를 걷는 듯, 흔들리는 땅 위에서 살아가는 듯한 울렁임은 계속 있었지만 그 정도에서 그치려니 나름 익숙해져서 미처 대비를 못한 내 탓을 해야 할까? 오랜만에 나선 길이었는데. 버스 안에서, 늘상 울렁거리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위장 속 물질들이 치솟는 느낌은 없었는데, 아직 내려야 할 정류장은 몇 개가 남았는데 자꾸만 울컥거렸다. 승객들이 여럿 있는 한낮에, 어, 이걸 어쩌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틀어막고서, 큰 숨을 쉬면서 진정을 하려다가 결국엔 내리기 직전에 솟구치는 속엣것들을 일부는 입에 담은 채, 일부는 되넘기려 애썼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화단에 왈칵!


입덧 때문에 하게 된, 이후 수차례 겪게 된 구토의 시작이었다. 아무런 증세도 없었다고 장담하던 그의 얼굴이 맨 처음 떠올랐을 것이다. 입덧 안 했다며! 나중에 따지듯 물었으나 그는 여전히 말짱한 얼굴로 네가 별난 것이라고 했었다. 기억력 좋은 그의 말이니 그런가 했다. 나보다 더 심하게 입덧을 하는동생의 상태를 보고서야, 그러고 보니 한 서너 달 입덧을 한 것도 같다, 고 말하기 전까지는.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 그 환했던 버스 안, 내가 서있던 자리, 메슥거리고 울컥거리던 느낌, 입 안에서 목구멍으로 되넘어갈 때 내용물들의 거슬거리던 느낌, 급한 마음에 먼지 가득 쌓여 토사물을 뱉어도 되겠다 싶었던, 그렇지만 빛깔은 화사했던 화단이 생생한데, 지난 일 하나하나 너무 상세히 기억을 해서 아부지한테 뭘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기억하느냐 타박을 듣던 그가 여러 날 동안 이어졌던 입덧의 경험을 없었던 일처럼 잊었다?


그 시기의 경험 자체를 다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너무 지긋지긋 고생스러웠던 시기의 일이라 입덧 정도는 우스워서 기억 밑으로 가라앉아 있었던 것일까. 입덧 쯤은 사소하게 느껴질 만큼 녹록지 않았던 세월이었을 테니 일부러 기억 저 아래로 묻어두었다기보다 그냥 그런 일은 스쳐지나는 별 일 아닌 작은 일들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 말까진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는, 입덧 정도로 뭘 그리 유난을 떠느냐고, 세상 살기 편해서 네가 그런 일들을 그리 세세히 기억하지,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는 그런 말을 했는데, 내가 무심히 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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