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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력한 예린이 Oct 27. 2024

학회 <우수 논문상>을 수상하다! 수상하다!

    “짝짝짝! 서울대학교 강력한 예린이 단상 위로 올라오세요.”


    [2024년 4월 20일] 수상한 사실이 수상했다. 내가 <우수 논문상>을 수상(award)했다는 사실이 수상(suspicious)했다. ‘내가 왜? 내 논문이 왜?’ 라는 의문이 계속됐다. 000학회가 열린 00대학교 대강당에서 시상식이 진행됐다. 그날은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그래서인지 수상식에 자리하신 교수님과 학생분들이 많지 않아 보였다. ‘내가 상을 받아서 그런가?’라며 자격지심 가득한 오해를 했다. ‘근본 없는 내가 어쩌다 논문을 받아서 그런가?’라며 최악의 상상까지 해버렸다. 그 와중에, 나를 축하해 줄 한 명은 찾아야 했다. 상 받는 모습을 사진 찍어서 부모님께 보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연구실을 같이 쓰는 후배를 만났다. 지금껏 잘 해준 적도 없으면서 최대한 반가운 척을 했다. 미안했고 괜히 부끄러웠다. 사진은 아주 잘 나왔고, 엄마 아빠는 엄청 기뻐하셨다. 욕심쟁이 어머니는 다음에는 더 잘 써서 <최우수 논문상>을 받아보라며 너스레를 떠셨다.


    [2024년 4월 10일] 000학회에서 메일이 왔다. 2023년 000학연구 우수 논문상에 선정됐다는 내용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라는 상투적인 문장을 몸소 체감하니 그만한 표현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믿기지 않아서 메일을 다시 읽었다. 2023년에 게재된 논문 55편 중 내 논문이 우수상을 받았단다. 감사했고 눈물이 났다. 시상식이 포함된 학회가 물 건너 바다 건너 어떤 지역에서 열릴지라도 무조건 갈 마음이었다. 초흥분 상태로 우리 가족 단톡방에 기쁜 소식을 공유했다. 곧바로 엄마 아빠의 축하 이모티콘 행렬이 이어졌다. 엄마는 나의 대학원 생활 내내 바래왔던 순간이라고 하셨다. 나는 감히 꿈꿔본 적도 없는 상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동시에 의아하기도 했다. 항상 열심히는 했지만 잘 해본 적은 까마득히 옛날에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2023년 6월 22일] 이틀 전 투고한 논문의 수정본을 제출했다. 그리고 오늘 게재확정을 받았다. 투고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이것저것 모든 단계가 어렵게 느껴졌다. 게다가 잔뜩 적혀 있었던 심사위원님들의 피드백의 의미를 이해하느라 애를 좀 썼다. 피드백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두 지도교수님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았더라면, 수정본 조차 제때 제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번 해 봤으니 다음 논문은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2023년 5월 1일] 1년여 간 써 온 논문을 드디어 마무리했다. 그 와중에 큰 실수를 하나 했다. 내가 논문을 제출한 학술지는 지난 학회에서 발표했던 논문을 1년 이내에 투고하면 3명의 심사위원 중 1명이 면제되는 제도가 있었는데, 하루를 넘겨버린 것이다. 게재되기 까다로운 곳이라 심사위원 한 명이 줄어드는 것 자체가 매우 큰 혜택이었는데 그걸 놓쳤다. 처음 투고해봐서 자신도 없는 와중에 시작부터 실수투성이니 스스로에게 짜증이 좀 났다. 그래도 1년간 자식처럼 키워낸 논문이 세상에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떨렸다. 실제로 투고버튼을 누를 땐 손도 좀 떨었다. 


    [2023년 4월 21일] 지도교수님들께 메일을 드렸다. 염치가 없었다. 지난해 9월 연락드린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잠적했었다. 메일에는 무려 23줄 분량인 그간의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다행인 부분은 있었다. 이번에는 진짜 논문을 다 써서 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왜 이렇게 교수님들 앞에 서는 것이 자신이 없는지, 숨고만 싶은지 잘 모르겠다. 일단, 게으른 완벽주의 성향이라는 사실에 감사하자. 부지런한 미룸주의 성향만 있었다면 더 큰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2022년 9월 19일] B교수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연구의 진행정도를 물으셨고, 당장은 선행연구 고찰 이외에는 완전히 마무리 된 부분이 없어서, 12월 호에 게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뻔뻔하게 전달 드리지는 않았고, 거의 석고대죄의 자세로 연락을 올렸다. 왜 이렇게 안 써질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이미 데이터 분석은 다 했는데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걸까. 너무 많은 선행연구를 읽어서 어떤게 진짜 내 생각인지를 모르겠다. 어느 날은 문장 하나, 아니 단어 하나 결정하기가 어렵고, 어느 날은 노트북을 열기도 어렵다. 이러다가는 영영 연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학계에서 도태될 것만 같다. 


    [2022년 4월 29일] 학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이 무슨 우연인지 졸업한 대학교와 학회장의 위치가 매우 가까웠다. 학부 지도교수님께서도 학회에 참석하셨고 내가 발표하는 세션에도 들어오셨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발표만 해봤는데 처음으로 오프라인 자리에서 내 연구를 소개하려니 엄청 떨렸다. 대본만 보고 폭주기관차처럼 발표하다가 남은 시간을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온화한 미소를 띄고 나를 바라봐 주시는 학부 교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교수님께서 플로어(floor)에 계셔서 큰 힘이 됐고 마지막까지 발표를 잘 마쳤다. 


    대학원생으로서 연구노트와 연구일지를 모두 쓰는 나는 쌓인 기록물이 참 많은 편이다. 상기의 글은 연구일지라고 거창하게 이름 붙인 평범한 일기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역순으로 두고 보니, 학회에서 논문상을 수상한 것이 새삼 운명같이 느껴졌다. 특히, 연구의 시작 단계에 학부 교수님의 응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뭉클했다. 그제야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학부 내내 큰 가르침 주신 존경하는 교수님을 위해서라도 말도 안 되는 자격지심 만큼은 내려 놓자고. 그 자리에 자신감을 채워 더 발전하는 제자가 되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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