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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력한 예린이 Oct 27. 2024

반쪽이를 품어 주신 지도교수님께 감사드리며.

    만약, 내게 지도교수님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떨지 상상해 본 적이 있다.그런데, 정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의 교수님을 계속 모시겠다고 다짐할 것 같았다. 대학원 생활 5년 반 동안 교수님께서 주신 가르침은 인생에 대한 태도 전반을 바꾸어 놓았고, 느리지만 나는 그 가르침에 따라 변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먹은 것만큼 내 변화 속도는 빠르지 못했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도 부족한 제자는 교수님께서 실망하실 만한 일들을 몇 번 만들었다. 그때마다 화를 내실법도 한데, 항상 냉철한 태도로 문제 상화에 대한 해결책을 주셨다. 그렇게 한 말씀 하신 후에는 얼어붙은 제자를 위해 온화한 미소와 함께 응원의 말씀을 건네셨다. 그래서 나는 단 한번도 교수님께 감히 서운하다거나 속상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현재, 박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학위논문’을 작성 중이다. 지금껏 쌓아온 역량을 한데 모아 총력을 다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만큼 학위논문은 부담이 큰 작업이다. 논문을 완전히 마무리하기 까지 반년 정도 남은 시점에서, 미래의 강력한 예린이와 다른 대학원생분들을 위해 교수님의 가르침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언제 또 닥쳐올지 모를 논문 스트레스 상황에 유연히 대처할 수 있도록 머리에 새기고 마음에 새기기 위함이다. 


    첫째, 생각은 손이 한다.

    하루는 신문기사를 스크랩해서 주셨다. ‘생각은 손이 한다’라는 문구를 따로 기사 상단에 적어 놓으신 것이 인상적이었다. 당시는 부논문으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던 때였는데, 진행속도가 늦어지자 교수님께서 도움을 주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정보를 찾고 그걸 정리하는 일은 워낙 좋아하고 잘 하는 편이었지만, 그걸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데 두려움이 큰 상태였다. 한 마디로 ‘글 포비아(phobia)’가 생긴 것이었다. 그때 교수님께서 제 2의 두뇌인 손이 해내는 창의적인 작업을 먼저 시도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이미 머릿 속에 장기, 단기기억으로 여러 정보가 들어있을 테니 그걸 잘 구성하는 것은 손에게 맡겨보라는 말씀이셨다. 그날 오후, 책상 위 한 가득 쌓아 뒀던 논문더미를 다 치우고, 노트북만 켠 채 논문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반신반의로 시작했던 작업은 계속 막혀 있던 부분을 단번에 뚫어주었고, 그렇게 논문 진행도를 높일 수 있었다. 


    둘째, 선난후이(先難後易), 어려운 것을 먼저하고 쉬운 것을 뒤에 한다. 

    언젠가 매주 있는 교수님과의 미팅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날이 있었다. 하지만 학생된 도리로 안 갈 수는 없으니 무거운 마음을 안고 미팅시간에 찾아 뵈었다. 어느 정도 채운 부분에 대한 피드백을 상세히 해 주신 이후에 문득 어제 평소랑 다른 일 한 것 없냐고 물으셨다. 실제로 전날에 책장 정리를 완전히 새로 했었다. 색깔별로 크기별로 책을 정리했고 뿌듯한 마음에 사진을 찍어 뒀었다. 갑자기 푼수처럼 신나서는 사진을 꺼내들며 책장정리를 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나의 폐부를 꿰뚫는 예리한 질문을 하셨다. 



“책장정리 제법 힘든데, 논문이 더 힘들어?”



    그때의 교수님은 마치 금쪽이를 대하는 오은영 박사님 같았고, 아차 싶었다. 내 뇌는 논문은 어려우니 후순위로 제쳐두고, 차라리 몸을 쓰는 책장정리를 택했다. 그게 비교적 쉬워보인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어려운 일을 먼저 끝내야 다음이 있다는 것을 이렇게나 에둘러 가르쳐 주셨다. 교수님의 배려에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크게 밀려왔고 차주에는 반드시 교수님을 감동시킬 만큼 잘 해가리라 생각했다. 


    인사를 드리고 연구실로 돌아가려는 내게 농담을 건네셨다. 



“자네는 박사까지 꼭 해야겠다. 추석사는 뭔가 이상하잖아. 추석에 지내는 차례같으니까,,ㅎㅎㅎ”



    그렇게 교수님은 여린 나의 마음을 한번 더 살피셨다.

벌써부터 박사졸업 후드수여식이 걱정이다. 박사들은 졸업식 때 졸업가운 위에 입는 후드수여식을 진행하는데 지도교수님께서 직접 둘러 주시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같은 단과대학의 여러 학과가 함께 진행하기 때문에 보통 한 사람의 차례는 5분도 안 돼서 끝난다. 그 짧은 시간 내에 우는 사람은 못 봤다. 하지만, 나는 교수님의 반쪽이 제자로 남다른 가르침을 받았고, 주마등처럼 지나갈 장면이 많다. 결혼식에서 너무 많이 울어버릴까봐 걱정하는 울보신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는 요즘이다. 일단 졸업논문 통과가 먼저겠지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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