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은 공부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라 마치 평생을 수험생처럼 사는 것과 비슷하다. 평일 저녁이고, 주말이고 마음 편히 쉬기에는 묘한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여행은 정말 큰 맘 먹고 결정하는 일 중에 하나다. 하지만 대학원생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다. 그들과 함께하는 사회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쉼도 필요하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동료연구생들은 가끔, 아주 가끔 여행을 떠난다.
박사 첫 학기를 마치고 짧은 시간 동안 가족과 함께 제주여행을 떠났다. 나의 바쁜 스케줄을 배려하시느라 엄마께서 남은 비행기 티켓을 급하게 끊어 준비해주셨고, 그 때문에 한 개의 좌석만 떨어져 있었다. 학기가 끝나자마자 출발했던 여행이어서 그랬는지 너무 피곤했고, 자면서 가고 싶은 마음에 내가 혼자 앉겠다고 자청했다. 내 좌석은 창문 쪽 이었고 나머지 두 개 자리의 주인들도 금방 왔다. 노부부셨고, 제주도에 사시는 분들 같았다. 혼자 여행가냐며 너무나 친절하게 인삿말을 건내시길래 기분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는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라, 비행기 내에서 마스크는 필수였다. 숨쉬기가 조금 답답하다고 느끼던 때에 갑자기 기체가 너무 작아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 내부가 좁아지는 듯한 느낌이었고, 죽고 싶지 않은데 반드시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졌고, 마스크를 콧등까지만 내려 공기를 여러 번 크게 마셨다. 그러자 과호흡이 올 것 같았다. 과호흡이 오면 손끝 발끝이 말리고 앞이 잘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상황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때 뜬금없이 옆자리 노부부의 시선이 걱정됐다. 더 정확히는 점점 이상해지는 나의 상태에 겁을 먹으실까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두 분을 등지고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다른 어떤 생각도 들지 않게 계속 숫자를 세면서 제주로 향했다. “1, 2, 3, 4, 5, 6, 7, 8, 9,,,” 잘 진정이 되지 않았다. 계속 죽을 것만 같았다. 죽기 싫었다. “취소 퉤퉤퉤”
그날 탄 비행기 안에서 인생 첫 공황을 경험했고,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나만의 주문이 탄생했다. “1, 2, 3, 4, 5, 6, 7, 8, 9,,, 취소 퉤퉤퉤”
여행 직전, 첫 학기에 수강한 과목 중 A수업 때 했던 과제를 논문으로 써보면 어떻겠냐는 A교수님의 제안을 받았다. 최종과제 제출 시 욕심내서 분량을 채웠던 덕에 이미 데이터 분석 결과는 모두 있었고, 이에 대한 해석만 보충하면 됐기 때문에 해 볼만 했다. 그런데 이때 학회가 겹쳤다. B과목에서 했던 과제를 발전시켜서 학회발표를 하고 싶었고, 그 연구를 하루 빨리 학회지에 게재하고 싶었다. B연구에 집중하려던 때에 A교수님의 메일을 받았다. 조만간 논문 관련 미팅을 잡아보자고 제안해주셨다.
말이 안 됐다. 서울대 교수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 주신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물론 대학원에 진학해서 학생이 교수님과 논문을 쓰는 것은 당연한 과업이지만, 내게는 의미가 남달랐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배운 삶의 태도 중 하나가 ‘스승은 곧 하늘이다’였는데, 서울대 스승은 하늘을 뚫고 우주 너머에 있는 신격화된 어떤 존재 같았다. 과장된 표현이지만 정말 그랬다. 그만큼 부담이 됐다. 내가 어떤 글을 가져가든 A교수님께서는 실망하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의 미팅 후 A교수님을 피해다녔다. 그러면 안 됐다.
교수님께서 나에게 화가 나셨을 거라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1, 2, 3, 4, 5, 6, 7, 8, 9,,, 이제 더는 교수님과 논문을 쓸 수 없고 나를 싫어하고 계실거라는 확신에 답답해졌다. “취소 퉤퉤퉤.” 그 이후 우연히 복도에서 A교수님과 마주칠 때면 고개도 못 들고 개미 목소리로 인사드리는 게 전부였다.
내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나보다 먼저 연구한 사람들의 논문을 살펴보고 이론, 개념 등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쉽게 말해, 뭘 알아야 쓸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앞선 연구들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확인하면서 내 연구와 비교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내 연구결과와 다르게 나타난 부분이 있다면 나만의 해석을 더하는 것이 논문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논문은 훌륭한 선행연구자님들께서 잘 정리해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나만의 발견점을 펼치는 글인 것이다. 그래서 일단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선행연구를 잘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시 내가 해야 하는 건 B과목의 연구를 빨리 마무리 짓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때부터는 완벽주의 성향이 극에 달했다. 내 논문과 관련된 모든 선행연구를 다 읽고 정리해야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키워드별로 선행연구를 정리했고, 국내와 국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모조리 읽어재꼈다. 그러자, 연구방법에서 빈틈이 보였다. 당시 내가 시도했던 연구방법에 대한 선행연구가 많이 부족해서 논문만으로 방법론을 학습하기에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코딩도 해야 했기에 시간이 점점 더 지체됐다.
5월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를 마쳤는데, 4개월 동안 딱히 진행된 부분이 없었다. 계속 공부만 했다. 그건 연구가 아니었다. 나만의 데이터로 나만의 해석을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했는데, 남의 생각만 외우다시피 학습했다. 그 즈음 B교수님께서 메일을 보내셨다. 연구 진행상황이 어느 정도냐고 물어보시는 내용이었다. 2장 <이론적배경>과 3장 <연구방법론>만 작성되어 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러니까, 나는 4개월을 기다려주신 교수님께 지금까지 선행연구자들의 논지를 잘 정리해둔 게 전부라고 말씀드린 셈이다.
B교수님께서도 나에게 실망하실거라고 생각하니까 조급해졌다. “1, 2, 3, 4, 5, 6, 7, 8, 9,,,” 내 생각을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무서웠다. 못할 것 같았다. 포기하고 싶었다. “취소 퉤퉤퉤.” 그렇게 교수님들을 피해다니다가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종종 새벽이었다. 주중에 학교에 가서 교수님들을 뵐 낯이 없었다. 용기가 안 났다.
새벽 연구실은 아늑했다. 원래라면 어둠을 무서워 하는 탓에 깜깜한 곳을 혼자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도 없으니 그만한 곳이 없었다. 연구실에 불을 켤 때면, 이제라도 왔으니 됐다고 나를 조용히 환영하는 듯 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위로하는 듯 했다. 회전의자를 뱅글뱅글 돌려가며 생각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무너질 수는 없었다.
의자를 곧추세우고 마지막 저장일이 일주일 전이던 B연구의 논문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다른 이름으로 저장’을 눌러 ‘ver2’를 붙였다. 새로운 파일을 생성한 것뿐인데 내가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었다. 갑자기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날 B연구 논문작성을 재개했다.
(참고로 A교수님께는 여전히 너무나 죄송한 상황이다. 이렇게 글로 내 상황을 박제했으니 박사 졸업 전까지 꼭 투고할 수 있게 내 영혼을 갈아 넣고 찾아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