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으라니, 어떻게 내려놓으란 말인가. 나는 매일 전쟁을 치르며 버티고 있었는데.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던 어느 날, 스텔라의 소변 실수가 시작되었다.
미국에 와서 ABA 센터에 다니던 초반, 실수가 잦아졌다. 한국에서 이미 배변 훈련을 마치고 기저귀를 뗀 상태였는데, 미국에 와서 갑자기 횟수가 많아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미국이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어서라고 생각했다. 낯선 장소에서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려니 긴장한 탓에 실수를 하는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적응기간이 지나면 조금씩 괜찮아지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두세 번, 많을 때는 네 번까지. 끝없이 반복됐다. 여벌 옷이 모자라 새 옷을 들고 몇 번이고 센터를 오갔다. 매일 일과 후에 스텔라를 픽업하러 가면, 아침에 입혀 보냈던 바지가 다른 바지로 갈아입혀져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이자 걱정거리였다.
다른 바지를 입고 있으면 그 순간 내 마음은 바닥으로 꺼졌다. 어떤 때는 여벌의 팬티가 다 떨어져 기저귀가 입혀져있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렇게 실수가 잦은데 다시 기저귀를 채워야 하나’ 하는 절망이 몰려왔다. 이제 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법도 한데, 매일 반복되는 실수에 내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비단 ABA 센터에서만이 아니었다. 집에서도, 주말에도 스텔라는 자주 바지에 실수를 했다. 어떤 날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다가 앉은자리에서 그대로 싸버리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쉬하고 싶다고 말을 꺼내자마자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싸버렸다.
그나마 쉬하겠다고 표현한 후 화장실로 가는 길에 타이밍을 놓친 건 괜찮았다. 아직 어리니 그럴 수 있다고, 나는 스스로를 달랬다.
쉬할 거야? 하고 물으면 안 한다고 하더니, 잠시 후에 바지에 싸버리는 경우도 이해했다. 소변이 마려운 느낌과, 화장실에 가야 하는 그 정확한 타이밍을 아직 잘 맞추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다가 실수하는 순간만큼은, 내 안의 모든 공포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아이가 계속 이러면 어쩌지?
평생 소변을 못 가리는 발달장애인으로 자라면?
당시 내 머릿속엔 온통 ‘소변 실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뿐이었다. 스텔라가 센터에 가도, 집에 있어도, 어디 외출할 때도 늘 불안에 사로잡혔다. 늘 가방에 여벌옷 여러 벌을 챙겨 다니는 것은 물론 수시로 화장실 갈 거냐고 물었다. 안 간다고 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화장실에 데려가 변기에 앉히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화를 낸 적도 많았다. 특히 화장실 안 간다고 해서 그냥 놔뒀는데 잠시 후에 바지에 싸버리는 일이 반복되자,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아까 엄마가 가라고 했을 때 갔으면 됐잖아! 왜 안 가고 그냥 바지에 싸버리는 거야?!”
내 목소리는 이성을 잃은 비명에 가까웠다.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었다. 감당하지 못한 두려움과 분노를 아이라는 거울에 쏟아낸 것이었다. 결국 그 화는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깊은 공허와 죄책감이었다.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스스로에 대한 경멸감이 올라왔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미친년처럼 울었다.
그때, 내 안에서 작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너 정말, 어쩌려고 그래?’
그건 아이에게 던지는 말이 아니라, 무너진 나 자신에게 건 마지막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