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스텔라가 남들보다 느리다는 것을 인지한 생후 4개월부터 지금까지, 아이의 발달을 끌어올리기 위해 반 미친 상태로 공부했고,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치료 방법을 시도했다. 거기에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법도 있었고, 검증되지 않은, 소위 유사과학(사이비)이라 불리는 방법도 포함되었다.
나는 아이가 좋아지기만 한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다.
자폐, 발달장애. 그 단어들이 낯설던 초반에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방식부터 시작했다. 자폐 아이들의 행동개선과 언어, 인지 발달에 효과가 있다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ABA(Applied Behavior Analysis)가 가장 메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발달이 현저하게 느렸기 때문에, 재활의학과에서 시행되는 물리, 작업, 언어, 인지, 감각통합 치료 등도 빽빽하게 집어넣었다. 이밖에도 놀이치료, 미술치료, 수영과 특수체육과 같은 기타 치료도 곁들였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서울대 의대를 보내기 위한 포트폴리오를 구하기 위해 엄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처럼, 이쪽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방법- 누가 어느 센터에 다니고 좋아졌다더라 하는 정보가 들려오면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귀한 정보를 얻고 나면 센터에 전화해서 스케줄을 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실력 좋다는 치료사의 수업은 이미 스케줄이 꽉 차있었다. 그나마 남은 시간대는 아침 일찍이거나 밤늦게, 혹은 식사시간과 겹쳐져있어서 아이의 컨디션을 고려하면 도저히 선택할 수가 없었다.
운 좋게 적당한 시간이 나와도 이미 있는 다른 치료 스케줄과 겹치게 되면, 다시 전체 일정을 조율해야 했다. 테트리스 하듯이 시간을 넣었다 뺐다, 이쪽저쪽으로 조정해 보면서, 내 스케줄과 센터 스케줄이 맞물리도록 수십 번 계산했다. 전화기를 붙잡고 이쪽과 저쪽을 조율하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나갔다.
이 작업은 너무나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일이라, 웬만하면 자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또 어디의 누가 실력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다시 전화기를 잡고 있었다.
그것은 의지가 아니라 강박이었다.
내 안의 조급증과 ‘기필코 아이를 끌어올리고 말리라’는 집착이 결합된 강박.
그렇게 수십 번의 고뇌와 스트레스를 견디며 스케줄을 짰다. 두 센터 사이에는 보통 30분 정도의 이동 시간을 남겨두었다. 너무 짧으면 숨이 막히고, 너무 길면 애매했다. 결국 언제나 아슬아슬한 경로를 택했다.
늘 핸드폰에는 센터 스케줄표 사진이 있었다. 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하게, 주 5일도 모자라 주말까지도 센터 사이를 오가며 아이를 실어 날랐다.
30분은 늘 빠듯했다. 언제나 미친 듯이 액셀을 밟았다. 내 운전은 어느새 카레이싱 선수급이 되어있었다. 복잡한 도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보통 40분간 이루어지는 치료 수업 한 타임에 가격이 기본 5만원, 7만원, 더 비싸면 10만원이었다. 메인으로 유지했던 ABA는 더 비싸서 한 달에 200~300만원 사이였다. 숫자가 통장의 피처럼 빠져나갔다. 수업시간에 1분이라도 늦으면 돈이 너무 아까웠다. 늘 급한 마음으로 주차하다 차를 긁었다. 내 차도 긁었고 남의 차도 긁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부서졌다. 치료비에 허덕이고 스케줄에 쫓기며 버티는 내 인생의 실밥이 하나씩 터져나갔다. 차를 긁은 날엔 어김없이 그동안 쌓여왔던 스트레스가 분출되어, 내 삶과 삶에 대한 의지마저도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모든 센터 스케줄을 마치고 해가 어스름하게 지는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텔라는 노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곤 했다. 보통의 아이들이 누리는 그 평범한 하루를 누리지 못하는 아이. 고3 스케줄보다 더 심한 센터 쳇바퀴를 돌며 시달림을 당한 아이가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졌다. 미친 듯 시간을 쪼개 카레이서처럼 달리며, 아이를 싣고 돌아다니는 내 신세가 처량해 많이도 울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가 좋아질 수만 있다면, 이 길이 아니라 더한 길도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나는 버티고 또 버텼다.
그건 사랑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통제였다.
사랑은 아이를 향해 있었지만, 통제는 내 불안을 향해 있었다.
사랑과 통제는 다른 얼굴을 한 같은 감정이었다.
두려움이 사랑의 탈을 쓰면, 그것은 통제가 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불길은 아이를 향해 타올랐지만,
그 불은 결국 나를 태워버리고 있었다.
사랑과 통제의 경계,
그 사이에서 나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