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나한테 이런 일이?

by 슈퍼거북맘

스텔라가 낮병동에 입원해 하루 8시간의 집중 재활치료를 받던 시절, 주말에 잠깐 짬을 내어 친구들을 만났다.

스텔라와 동갑이거나, 한 살 아래의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었다.


아직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아기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서로 만났으니, 대화의 주제는 당연히 육아 정보였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육아에 필요한 금쪽같은 정보들을 주고받았다. 문화센터, 어린이집, 영어유치원. 그 대화의 밑바탕에는 하나의 전제가 깔려있었다.


바로 그들의 아이들은 '정상발달'이었다는 것. 내 눈에 그들은 아무 걱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랑스런 자신의 아기가 무슨 장난감을 좋아하고, 언제 말을 하기 시작했고, 첫걸음마를 뗐을 때의 감동 등에 대해 말할 때면, 마음 한구석에서 그렇지 못한 스텔라의 모습이 떠올라 속이 너무 쓰렸다.


스텔라는 아무 장난감에도 관심이 없었다. 뒤집고 기고 걷고 말하는 모든 단계들에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고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그들의 아이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잘 성장하고 있었지만, 나는 전력을 다해도 늘 제자리였다.


그 비교는 누군가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친 듯한 충격과 아픔이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친구들의 얼굴 사이로,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눈물이 앞을 가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친구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자, 나를 지키는 경계선이었다. 다들 기분 좋게 만난 자리에서 괜히 분위기를 망치는 것도 싫었다. 여기서 한번 울음이 터져버리면 도저히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겨우겨우 울음을 참은 채 모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한번 가동된 마음속 울분은 억누른다고 결코 잠재워지지 않았다. 끝끝내 참았던 울음이 미친 듯한 괴성과 함께 폭발했다.


처음엔 목 끝에서 떨리던 숨이 끓어올랐고, 이내 활활 타오르듯 터져 나왔다. 가슴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온몸을 흔들며 울부짖었다.


“왜 나야! 왜 우리 아이냐고!!”


목이 찢어질 듯한 비명이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눈물이 아니라 쏟아지는 울음이었다. 나는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한 마리의 들짐승이었다.


남편은 놀라 말문이 막힌 채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 비친 공포와 당황스러움이 오히려 내 울음을 자극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인간이 아니라, 절망과 공포 그리고 분노 그 자체였다.


결국 정신과 의사가 급할 때 먹으라고 처방해 준 ‘항불안제’를 삼키고서야, 몸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끝내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가슴속에서는 여전히 울음의 잔향이 웅웅 거리고 있었다.


울음이 멎은 뒤 거실엔 적막만이 남았다.

그 적막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무리 울어도, 세상은 단 한 줄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그 뒤로 나는 가급적 친구나 지인들과의 만남을 피했다. 특히 스텔라와 비슷한 또래의 정상발달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더더욱.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할 수 있겠지만, 내 마음은 처절하게 난도질당해 파열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텔라의 치료 스케줄과 정보 탐색으로 바쁜 일상 가운데서도, 한 가지 의문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며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왜 내 육아는 이렇게 힘든 거지?

왜 나는 이렇게 불행해야 하지?


그 무렵 몇몇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고.

하지만 그 말은 내게 위로가 아니었다. 마치 ‘이제 그만 포기하라’는 무언의 압박처럼 들렸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싸워야 한다고, 아직 포기할 수 없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며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이전 06화내 아이가 그럴 리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