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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Oct 30. 2022

둘이 있을 때 더 춥고 외롭다면

결혼한 첫해에 이혼을 떠올리다

남자친구가 남편이 된다는 것은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그는 아직 학생이었고, 그가 먼길 통학에 지쳐 청혼하고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을 때, 그의 아버지는 물었다.

내 아들이 아직 학생인데 괜찮겠냐, 하고.

그때 나는 무슨 맘이었는지 씩씩하게 "아드님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는다는 말은 못해도 밥은 굶기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는데,

일반적으로 남자가 해야 할 말을 감히(?) 여자가 하다니,같은 거부감과 애가 싹싹하고 성실해보이는 군, 하는 호감이 반반 섞인 묘한 표정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그때, 아니오, 못하겠습니다~라고 했어야 했다고 훗날 방바닥을 치며 후회했지만, 그땐 이미 21평 아파트에서 월세를 내며 세끼 밥을 지어먹이고 있을 때였다.


남편은 입맛이 까다로웠다. 익지 않은 김치를 좋아하고 묵은 반찬같은 건 손에 대지 않아서 끼니마다 새로 반찬을 만들고 찌개나 국같은 요리를 해야했다.

카레를 한 솥 끓인다든지, 오징어채나 멸치볶음 같은 걸 두고두고 상에 내놓는다든지 그런 건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집과 가까운 학교에서 밥을 먹으러 곧잘 들어오곤 했기 때문에 점심까지도 새로 밥을 지어서 먹이곤 했다.

그래도 신혼이라는 이유로 소꼽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식사준비 같은 건 즐겁게(?) 할 수가 있었는데 문제는 새로운 집안에 내가 접붙이기 하듯 들어가야 하는데 있었다.


처음 보는 며느리라고 집안 어른들은 나를 예뻐하셨는데(예뻐서 그랬을 거라고 믿었다)

매일 안부 전화를 하라든지, 연락없이 자주 집에 오신다든지, 일년에 8번 있는 제사와 명절 및 생신, 친척모임에 이르기까지 일찍 와서 준비를 하라는 요구가 그러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내게 일어나다니! 이런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가시기도 전에 이리저리 불려다니는 동안,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남편의 태도였다.


그는 효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결혼 전엔. 집에 불만이 가득한 큰아들이었고, 이모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


그는 효자였다. 결혼과 동시에. 그의 어머니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었고, 그러니 나는 그 어머니를 딸처럼 사랑해드리고, 아버지에게는 살뜰한 며느리로 큰집에는 작은집 도우미로 충성을 다해야 하는 몸이 되었다.


결혼하고 일년이 지나기 전, 그의 졸업식에서 그가 던진 한 문장은 이런 결혼생활이 과연 내가 꿈이 맞는지 회의하게 만들었다.

그가 카메라를 주며 내게 던진 말,

"우리집 식구끼리 사진 한 장 찍게, 저기서 찍어봐."


나는, 우리집 식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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