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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Oct 30. 2022

결혼한 이유와 이혼하는 이유가 같다면

결국 나는 혼자였나

내 우울의 시작은 다섯살이었다.

나이어린 남편을 군대에 보내고 혼자 돈을 벌어야 했던 내 엄마는 나를 시어머니에게 맡겼다.

젊은 나이에 다섯 자식을 데리고 과부가 되었던 나의 할머니는 술과 담배로 고단함을 이겨내는 분으로 그리 다정한 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주양육자가 할머니였기에 어린 나는 할머니를 많이 사랑했고, 징징 우는 애기를 업고 온 시골로 돌아다니느라 허리가 부서지는 거같았다는 할머니는 나름 나를 아꼈을 것이다.(그렇게 믿고 싶다)


문제는 엄마가 남동생을 낳고 나를 데려 오면서부터였다. 아기인 동생이 툭하면 열감기로 경끼를 일으키는 탓에 병원다니기 바빴던 엄마는 나를 방치(?)아닌 방치를 할 수밖에 없었고,

할머니에게 가겠다고 울어대는 딸이 딱하고 귀엽기엔 엄마 자신이 지쳐 있었다.

딸은 툭하면 소리지르고 화내는 엄마가 무서웠고,

그런 딸이 야속했던 엄마는 딸을 더 야단치며,

둘의 거리는 걷잡을 수 없이 서먹해져 갔다.


혼자 있는 방에서 할 수 있는 게 독서밖에 없었던 딸은 각종 동화책 및 신문, 썬데이서울 같은 잡지를 읽으면서 조숙하게 자랐다.

공부도 꽤나 잘해서 엄마는 딸에게 기대가 커졌고,

몸이 약한 아들에게 바라지 못하는 것까지 딸에게 다 걸면서 그 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말았다.


초등학교 일학년이 알림장에 글씨를 엉망으로 썼다는 이유로 저녁도 먹이지 않고 집에서 쫓아내거나, 늘 전과목 올백을 맞아오던 딸이 사학년 시험때 여덟개를 틀려왔다는 이유로(심지어 전교에서 제일 잘한 성적이었는데)

틀린 거당 다섯대씩을 때려 종아리가 시퍼렇게 멍든다든지, 조금이라도 성적이 떨어지면 고무신공장에나 가라며 여행가방을 던져줘서 울면서 짐을 싸는 것도 여러번...딸의 유년시절은 따뜻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 딸은 사랑받기 위해 지독하게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자랐고,

스물 두살에는 이 집을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살아야겠다는 엉뚱한(?) 꿈을 꾸게 되는데.  그 딸이 바로 나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겐 완전한 사랑을 주고,

정말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꿈.

그 집에서  나는 혼자가 아닐 거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나는 결혼을 꿈꿨다.

나를 사랑해주지도 않으면서 바라는 것만 많은 냉혹하고 엄격한 엄마와 자기외에는 무관심한 아빠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스무살때 만난 남자친구는 말수가 적고 가끔 하는 말은 와닿지 않는 불안한 면모가 있었지만,

잘생겼고,(그렇다, 나는 얼빠였다) 착해 보였고,(이게 중요하다! 착한 게 아니라 착해 보였다)나를 매우 좋아한다(사랑한다,와는 다른 거였는데)믿었다.

그와 함께라면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따뜻하고 포근한 집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다고 믿었던 내 꿈이 부서지기 시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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