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집에서 자란 나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생활권이 통째로 바뀌어버리는 이사를 하게 된 2021년 8월. 마음이 심란하다. 내 의지에 의해 옮기는 이사가 아니라 더 그런가? 어제는 집을 계약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참에 글을 쓰며 마음을 정리해보려고 컴퓨터를 켰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생활권이 크게 바뀐 이사 경험이 2번(보령-노량진, 수원-마산), 조금 바뀐 이사 경험이 3번(시골집-아파트, 노량진-안양, 안양-수원) 있다.(물론 같은 생활권에서 이동했던 경험은 좀 더 있지만 대략적으로 그렇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생활권을 바꿨던 것일까? 그 경험을 정리해보려 한다. 더 늦어서 잊어버리기 전에 스스로 기억하기 위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처음 경험한 이사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지금 시골 부모님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주거지를 옮겼던 것이다. 사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집에는 아궁이가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피워 난방을 하던 시골집. 그랬기에 겨울이 되기 전 가장 중요했던 것이 그해 겨울을 날 장작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작패기. 아빠가 산에서 통나무를 많이 베어 온 것인지, 사 온 것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무를 가져오면 도끼로 나무를 쪼개 장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닭을 키우던 곳 맞은편 담벼락에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서 보관해 겨울을 보냈다. 어릴 땐 아빠와 장작을 패던 경험도 재미있었던,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어린 시절. 그 아궁이에 구워 먹던 고구마와 밤이 참 맛있었는데...
그 시절을 조금 지나 연탄보일러를 설치했을 땐 조금 편해졌다. 뭐, 그래봤자 겨울이 되기 전 연탄을 쌓아놓던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장작을 사용하던 것보단 편했던 기억이 난다. 대신, 밤에 추워지면 누군가가 일어나 연탄을 바꿔야 했던 불편함이 있었던 집. 새롭게 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번개탄 연기를 마셔야 할 수밖에 없었던 연탄보일러.
이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던 난, 그 당시 내가 살던 지역의 중심지에 생긴, 그리고 지금까지 그 지역에서 유일한 10층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신발을 신고 마당을 지나야 했던, 부엌에서 만든 음식을 들고 처마 밑을 지나 방문을 열어 방에서 식사를 했던, 난방을 위해서는 연탄을 피워야 했던, 여름철이면 화장실에서 올라오는 구더기를 봐야 했던, 휴지가 없을 땐 신문지로 엉덩이를 닦았던 그런 집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했던 어린 나는 참 신났었다. 사실 양변기도 처음 봐서 뭐하는 건지 몰랐으니 말 다 했지만. 처음 써보는 침대 위에선 어찌나 많이 뛰었던지. 아련한 그 시절의 추억.
-애가 잠을 깨서 일단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