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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쳐라이즈 Aug 13. 2021

인생 이사 경험 정리(3)

시골 촌놈, 서울 상경

자잘한 이사 경험을 한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재수를 결정하면서 삶을 송두리째 바꾼 이사(?상경?)를 경험하게 된다. 


사실, 재수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점수 나온 대로 대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교대를 지원하려던 나에게 담임 선생님이 다른 대학교를 쓰라고 설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사가 되려던, 그것도 임용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교대 진학을 꿈꾸는 나에게 수도권의 H대를 추천했던 담임 선생님. 내가 싫다고 계속하니 결국 우리 부모님께 연락이 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거절하셨던 부모님도 결국 다른 곳 지원하기로 결정. 아무래도 계속 떨어질 것이라는 담임선생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우여곡절 끝에 H대 법대를 썼지만 나는 대학교 입시에서 떨어졌다. 그해 H대로 엄청난 지원이 몰려 교대 커트라인보다 높았던 H대 법대. 결국 소신 지원을 했던 내 친구는 G 교대에 입학했고, 그보다 수능 점수가 한참 높았던 난 떨어졌다. 물론 1년 뒤 합격해서 다시 그 친구를 만났지만 그 친구는 1년 선배가 되어있었다는...


어쨌든 4년제 대학 입시에 실패한 나는 그냥 우리 지역 근처에 있는 C 전문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졸업할 때까지 학점이 특정과 상위 3등 안에 들면 지역 9급 공무원 특채가 된다는 혜택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입학할 때 수능 성적 1등에게는 각종 장학금과 생활비 보조를 준다는 매력까지 있었다. 원서를 쓰고 발표가 난 날, 당연히 전체 수석입학일 것이라 생각해 당당히 입학처에 전화를 걸었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여보세요? 거기 C 전문대학 입학처죠? 뭐 좀 물어보려고요. C 대학 전체 수석 입학자에게는 장학금 혜택이 있잖아요. 아무래도 제가 수석일 것 같아서 혜택 좀 확인하려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당돌(좋게 말해서 당돌이지 미*)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전화를 받으신 분은 침착하게 내 인적 사항을 물어보시고는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학생 성적이 좋은 것은 맞는데, 전체 수석은 아니네? 물론, 아직 모두 등록한 것이 아니니까 학생에게 기회가 가게 되면 다시 연락 줄게요."


하,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전체 수석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던. 게다가 내가 C 전문 대학교에 입학원서를 쓴 지 몰랐던 아빠가 합격증을 받고는 재수를 설득하기 시작해 재수학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나중에 수석자 혜택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이미 그때는 재수를 결정한 시기였다. 그나마 전화를 받아 덜 부끄러웠다.)


당시 내가 살던 곳은 워낙 시골인지라 재수를 하기 적합하지 않았고, 결국 친척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나보다 한, 두 살 많은 사촌 2명이 재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과 연락해 재수학원 정보를 얻기 시작! 이게 이사의 첫 단추였다.


먼저 2살 많았던 누나는 대전에서 삼수를 하고 있어서 대전에 무턱대고 갔다. 나와 친한 단짝 친구와 처음으로 고속버스를 타고 간 대전. 그곳에서 누나가 알려준 재수학원을 찾아 상담을 받고 주위도 둘러보았다. 시골에서 그나마 가까워 좋았던 대전의 재수학원. 하지만 무엇인가 부족해 다른 곳도 가보기로 했다.


그다음에 방문한 곳은 노량진. 한 살 많은 사촌 형의 영향으로 간 곳이다. 당시 형은 전국에서 유명한 M사립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졸업해 노량진 대성학원에 들어가 육사 수석, 경찰대 합격을 한 뒤, 경찰대로 진학했다. 때문에 우리 부모님도 노량진 대성학원에 입학하기를 원하셨고, 나도 한 번 시험이나 보려고 올라왔다.


사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본다니? 게다가 시험 결과에 따라 상급반과 하급반으로 반이 나뉘다니? 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대성학원에 시험날 와서 보니 그럴만했다. 10층(기억이 잘 안 난다.) 건물이 모두 대성학원인데 한 반에 80명이 넘게 들어가서 수업을 받는단다. 게다가 반도 많아서 종합반에 다니는 학생 수만 4천 명가량. 이건 무슨 대학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입학을 원하는 학생 수는 더 많아 시험을 쳐야 한다는 웃긴 상황이었다. 어쨌든 시험을 봤고, 상급반에 합격한 뒤, 서울에서 놀고 싶다는 생각에 노량진으로 오길 결정했다.


결정을 내린 뒤 일정은 촉박했다. 바로 잠만 자는 방을 구해 함께 상경하는 친구와 짐을 들고 올라왔다. 그리고 학원 등록 후 주위 탐색. 옷을 사기 위해 동대문도 다니고, 장을 보기 위해 용산 이마트도 다녔다. 철권을 좋아하는 친구는 정인 오락실(철권의 메카, 그런데 이름이 정인 오락실 맞나?)의 매력에 푹 빠졌고, 나는 대성학원 옥상에서 63빌딩을 보는 풍경에 반했다. 


시골 촌놈이 처음 접한 도시의 낯선 모습. 내 삶을 뒤흔들어 놓기 시작한 이 이사는 그해 6월 대성학원에 입학한 한 여자를 만나게 되면서 완성된다.(이후 결혼해서 아내가 된 여자와의 스토리는 언젠가 자식들을 위해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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