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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쳐라이즈 Mar 04. 2021

캠핑 놀이

서현 1816일, 서아 42일

서현이가 갑자기 캠핑을 가고 싶다고 했다. 캠핑 감성... 좋지... 하지만 난 캠핑장의 축축함과 불편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캠핑을 주로 스카우트 활동으로 가서 그런가 보다. 나에게 있어 캠핑은 곧 일이다. 그래서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다행인 건 딸로 나의 그런 성향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서현이 역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캠핑을 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나 보다. 캠핑장의 모습을 이야기해 주니 그게 아니라 펜션이나 호텔 같은 숙소에서 자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서현아, 그건 캠핑이...


어쨌든 서현이가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은 것 같아 바로 집에 있는 재료로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기로 했다. 일명 캠핑 놀이! 아, 물론 캠핑 놀이를 하더라도 이게 학습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다음의 과정을 거쳐 놀이를 진행했다.


먼저, 캠핑을 갔을 때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고 우리 집 칠판에 적어보게 했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활동! 서현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음처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1. 먹을 것 챙기기

2. 텐트 챙기기

3. 돗자리 챙기기

4. 모닥불 켜기


자기가 생각한 것을 글로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했다. '이 정도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은 되겠지?'라는 자화자찬을 하며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봤다. 할 일을 정리했다면 이제 그걸 행동으로 옮길 차례! 서현이와 함께 하나씩 수행해나갔다.


서현이가 적은 1번은 먹을 것 챙기기. 그걸 위해 가방을 찾아 그 속에 짐을 챙겼다. 서현이가 마실 우유, 음료, 젤리, 과자 등. 하나씩 챙기면서 즐거워한다. 이어서 텐트를 꺼냈다. 사실 그늘막 텐트이기에 실제 캠핑장에서 사용할 수는 없다. 그래도 좋아하니 됐다. 그늘막 텐트까지 꺼내어 거실로 나왔다.


그다음은 텐트를 펴고 그 안에 돗자리 펴기! 텐트를 펴기 전에 바닥에 보자기를 펴고 그 위에 텐트를 펼쳤다. 아무래도 밖에서 사용했던 것이라 더러울 것 같아 바닥을 한 번 닦아주기도 했다. 그리고 돗자리도 실제 돗자리를 쓸 수는 없었다. 이미 밖에서 여러 번 사용한 돗자리이기에 비치타월로 대체했다.


이후 서현이와 그 안에서 간식도 먹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놀았다. 서현이는 이미 진짜 바닷가에 온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텐트 밖에 나갈 때에는 선 캡을 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뒤 나갔다. 그리고 걸으면서 모래사장을 걷는 것이라며 "사박사박"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상상력에 감탄했다.

우리가 자는 안방은 바닷물이 되었다. 서현이와 침대 위에서 수영 흉내를 내며 놀기도 했고, 이불 속에서 스노클링 흉내를 내기도 했다. 서현이는 예쁜 물고기들이 많이 보인다며 좋아했다.


밤이 되자 캠핑의 하이라이트인 모닥불 켜기도 했다. 물론 진짜 모닥불을 아파트 거실에서 켤 수는 없기에 향초 2개를 켜서 분위기를 내줬다. 집 안의 모든 불을 꺼서 어둡게 한 뒤, 아내와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향초를 켰다. 분위기를 내기 위해 유튜브에서 파도 소리를 찾아 배경음으로 깔아줬다. 그리고 잠시 분위기에 취해본다.


그 순간 서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이런 놀이를 하면서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아이와 이야기를 계속 나누다 잠들었다. 


이번 활동을 하면서 아이의 상상력은 어른의 것을 초월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이미 바닷가에 온 것처럼 행동하는 서현이의 모습을 보며 아이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느낄 수도 있었고...


서현이가 한동안은 이런 모습으로 자라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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