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수학과외 선생님이다.
3년 전, 아주 마른 여자아이가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내 앞에 섰다. 첫 인상부터 눈치가 빠르고 이해력이 좋은 아이였다. 수업을 해보니 성실함은 조금 부족했고, 무엇보다 체력이 너무 약했다. 계절이 몇 번을 바뀌어도 감기를 달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자칭 ‘미친 이해력’으로 금방 성적이 90점을 넘겼다. 1:1 과외만으로 쑥쑥 오르는 점수를 보며, 정말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성적이 잘 나올 땐 같이 떡볶이를 시켜 먹으며 작은 축하를 나누기도 했다. 떡볶이를 주문한다하니 옵션으로 메추리알 비엔나소시지 치즈떡 등을 야무지게도 선택했던 그아이.
아이 어머니도 “이런 날이 오네요”라며 기뻐하셨다.
그런데 해가 두 번 바뀌고부터 이상한 기척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등 수학은 이해력만으로 버티기 어렵다. 복습과 성실함이 필수다. 그런데 아이는 특별히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숙제를 검사하면 기가 막히게 전부 동그라미였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성실함이 부족한 아이가 고등 과정 숙제를 완벽하게?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틀릴 문제에선 틀린다. 그걸 짚어주는게 내 할 일인데. 이아이는 모든게 동그라미였다.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친 이해력’이라는 꼬리표를 잠시 떼어놓고 아이를 다시 보기로 했다. 그리고 결국 찾았다.
숙제에서 맞힌 문제를 다시 풀게 하자, 단 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솔직한 대화를 시도했다. 결국 아이는 답지를 베껴왔다고 고백했다.
그로부터 1년. 이과정을 1년이나 반복했다.
숙제검사를 하고 베껴온 증거를 찾고 성실히 해오기로 약속하고 다시 베껴오고...
그 버릇은 끝내 고쳐지지 않았다.
더는 “스스로 해오라”는 말만으로는 이 아이를 바꿀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아이 어머니께 상황을 말씀드렸고, 더 이상 수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조심스레 사과를 드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그 말을 할까 봐 아이가 이미 어머니께 상황을 전했는데도 그어머니는 나와의 대화를 차일피일 미루어왔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뚝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 아이를 더는 가르칠 수 없다.
계속 데리고 있었다면 정말 책임질 수 없는 지점까지 갈 수도 있기때문이다. 언젠가 스스로 깨닫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아마 수능이 끝난 뒤일 것이다. 일을 더 악화일로로 빠뜨리기보다는 아쉬워도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아이에게도 야속하고, 그 어머니 생각에 마음도 무겁다.
아무리 미성숙한 시기라 해도, 과외 선생님과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렇게까지 숨기고 버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참 아팠다.
이것도 인연인데, 이렇게 끝맺음해야 한다는 것이… 참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