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질문하지 않는 자에게 대답하지 않는다
어린아이들 중에서 많은 질문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어렸을 때 나 역시 유난히 질문을 많이 하는 어린이였던 거 같다. "이건 뭐야?", "저건 뭐야?", "이건 왜 그런 거야?", "왜?", "어째서?"... 등등 하루에도 몇 백가지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아이에게 '과학'을 추천하고 해당 질문을 자연과학적으로 풀어서 즉각적인 대답을 주고, 아이에게 '과학'에 흥미를 가지게 만들어 과학고를 들어가게 하고 나아가 의대 진학을 위해서 아이를 단련시킨다. 글쎄, '과학'이라는 대답도 참 멋진 대답이지만 '철학'이라는 대답은 어떨까?
철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특히, 철학은 세 가지 질문으로 그 근간을 이룬다고들 한다. 첫 째, 세상은 무엇인가? 둘째, 나는 누구인가? 셋째, 인생은 무엇인가? 이 세 가지 질문은 외연(External)에 대한 질문인 '세상'에 대한 질문, 내연(Internal)에 관한 질문인 사고의 주체인 '나'에 대한 질문, 그리고 외연과 내연이 만나는 지점인 '인생'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된다.
외연에 집중했을 때 '사회학' 혹은 '과학'에 가깝게 될 것이며, 내연에 집중했을 때 칸트나 헤겔 같은 순수 철학에 가깝게 될 것이다. '인생'에 집중했을 땐 외연 혹은 내연과 함께 융합되어 심리학 혹은 공학, 법학 등등과 같은 실제적 학문에 가깝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성경은 질문하지 않는 자에게 대답하지 않는다
"성경은 질문하지 않는 자에게 대답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처음 보고선 너무나 마음에 쏙 들었다. 정말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무런 질문 없이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다면, 과연 성경의 텍스트에 내 삶을 비추어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나는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이러한 주요 질문들과 그 질문들에서 파생되는 질문들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성경을 볼 때 비로소 성경에서 말하는 '나라'와 '제국' 그리고 '왕정'과 '제사장 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인식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성경을 읽을 때 비로소 하나님과 성경의 인물들의 관계 그리고 신이 인간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이 '나'와 연결될 수 있다. 인생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성경을 읽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성경을 내 삶의 지침으로 삼게 된다.
조병호 목사님이 매 주 이야기 했던 "성경 한 권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이제야 조금씩 이해된다. 외연을 담고 있는 질문(세상), 내연을 담고 있는 질문 (나: 자아), 그리고 내연과 외연이 만나는 지점인 인생에 대한 질문 모두가 성경을 통해서(만) 대답될 수 있다.
이 수많은 질문들 없이 성경을 읽는다는 건 "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 "성경 한 권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무색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질문하고 고민하고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그 과정 속에서 '만남'은 시작되고 '대화'는 시작된다. 성경은 점잖게 읽는 것이 아니다.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읽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땐 '질문'이 없다. 내가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 (마치 어린아이 같이), 우리는 비로소 질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마음의 가난한 없이 나오지 않는다. 질문을 그렇게 시작되고, 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아 그렇구나, 성경은 질문하지 않는 자에게 대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