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용석 Aug 10. 2018

'무혐의'와 '무죄'는 다른가?

일반인도 꼭 알아야 하는 형사법 이야기

I. 들어가며

  평소에 즐겨 찾는 커뮤니티에 유명 가수에 대한 성폭행 무혐의 기사가 올라왔다.  이에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통해 갑론을박하며 의견을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핵심적인 논쟁은 바로 증거 불충분에 의한 '무혐의'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를 가지냐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무죄는 정말 깔끔하게 죄가 없는 것이고, 무혐의는 죄는 있는데 증명하지 못한 것이라는 의견을 펼쳤다.  또 누군가는 무혐의는 실제 증거는 없고 정황증거만 있는 것이라는 의견을 펼쳤다.


  모두 사실과 다른 틀린 의견들이다.  사실 이 문제는 형사법 중에서도 기초적인 내용인데,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는 단지 정규 교육과정에 단지 법교육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공교육에 이러한 내용들이 포함되지 않았는데, 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미래 우리나라 정규교육과정에 반드시 기본적인 법교육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하루를 멀다하고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의 수많은 무혐의 및 무죄와 관련된 기사는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다.  그만큼 무혐의 및 무죄는 우리 일상과 가까운 법 개념이라는 점에서 알고 있으면 좋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많은 검색을 해봐도 이러한 개념을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쉽게 풀어쓴 글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해당 개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보려 한다.  얼마 안되는 이 짧은 글을 통해 많은 분들이 해당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한다.



II. '무혐의'와 '무죄'

1. 개요

  "드디어 저 무죄를 받았습니다!"라는 말과, "드디어 저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라는 말은 왠지 다르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에서 보았을 때, '무죄'라는 단어가 가지는 힘이 더 강력한 것처럼 느껴진다. 무혐의라는 말은 뒤가 켕기는 것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것이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분들이 두 단어를 보았을 때 받는 뉘앙스(nuance)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혐의와 무죄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하지만, 법 공부를 전문적으로 받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것은 아니다.  무죄와 무혐의는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정도의 다른 것이라기보다는 '기술적'으로 다른 단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결과를 선포(가장 일반적인 단어로 표현하자면)하는 주체가 다른 점이다. 무혐의의 경우 '검찰'에서 '처분'되며, 무죄의 경우 '법원'에서 '판결'되어 결과로 나오게 된다. 그래서 무혐의에는 '처분'이라는 명사가, 그리고 무죄에는 '판결'이라는 명사가 각각 어울린다. 나아가 무혐의 처분은 기소를 당하지 않은 '피의자의 신분으로 처분받는 것이며, 무죄 판결은 기소를 당한 피고인의 신분으로 판결받게 되는 것이다. 법률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단어다. 하나는 재판이 시작하기도 전에, 하나는 재판이 다 끝나서 결과가 나오게 된다.  그럼 앞으로의 글을 통해 어떤 부분에서 무혐의와 무죄가 다르고, 어떤 부분에서 동일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2. 무혐의 처분

  무혐의 처분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 중 하나로, '검사'가 판단한다.  무혐의 처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혐의 없음(범죄 인정 안됨)과 혐의 없음(증거 불충분)이 그것이다.  혐의 없음(범죄 인정 안됨)은 범죄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 중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는 경우 내려지는 처분이다.  다시 말해, 원론적으로 범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한다.  반면, 혐의 없음(증거불충분)은 객관적 또는 주관적으로 판단하였을 때, 증거가 없거나 피의자에 대한 유죄 판단을 하지 않는 경우에 내려지는 처분이다.


  쉽게 말해서, 피의사실이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피의사실을 인정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는 경우 또는 피의사실이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경우에 하는 처분을 우리는 '무혐의 처분'이라고 말한다.  이는 검찰사건사무규칙 제70조에 규정되어 있다.

제70조(혐의없음 결정시의 유의사항)
검사가 고소 또는 고발사건에 관하여 혐의없음의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고소인 또는 고발인의 무고혐의의 유·무에 관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3. 무죄 판결

  그렇다면 이제 무죄판결에 대해 알아보자.  형사소송법 제325조에서는 무죄판결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25조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무죄를 선고한다.


  형사소송법 제325조에 따르면,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는 2가지다.  하나는 ①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않는 경우, 두 번째는 ② 피고사건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다.  전자의 경우는 공소사실이 증명되었다고 하더라도 구성요건해당성이 없거나, 위법성 혹은 책임이 조각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후자의 경우, 판사가 사실관계와 증거들을 종합해보았을 때, 피고인의 유죄에 대한 확신을 갖지 않을 경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무죄를 선고하는 것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① 피고인 ○의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지 않음을 선고하는 것과 ② 판사가 증거를 판단하였을 때, 피고인 의 행위가 유죄를 확신할 만큼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범죄가 되지 않음을 선고하는 것이다.


4. 검토

  무혐의 처분과 무죄 판결은 그 판단을 내리는 주체가 다르다.  무혐의 처분은 '검사'의 처분이며, 무죄 판결은 '판사'의 판결이다.  나아가, 피고인의 행위가 범죄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인지 혹은 증거가 피고인의 행위를 범죄라고 증명하기에 부족한 것인지에 따라서 각각 그 세부 이유가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무혐의 처분과 무죄 판결은 다른 것인가?  기술적으로는 그렇다.  예시를 통해 알아보자.


  A 씨는 B 씨에게 어떠한 행동을 했고, 이 행동은 검사에 의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1년 후, A 씨가 B 씨에게 한 행동과 관련된 강력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 경우 무혐의 처분을 받은 A 씨는 동일한 행동에 대해서 다시금 수사를 받고 기소를 당할 수 있다.  그러나, 판사에 의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면 정답은 달라진다.  일사부재리 원칙으로 인해서 A 씨는 동일한 범죄사실에 대해 다시는 형사재판을 받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무혐의 처분과 무죄 판결은 실질적으로 다른가?  이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차가 다를 수 있겠지만, 조금 더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III.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죄 판결

1. 미국의 형사법 체계

  더 풍부한 이해를 위해 미국법 이야기를 잠깐 꺼내보자.  영미법에서는 형사소송에서 Beyond a reasonable doubt(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이라는 입증책임(burden of proof)을 사용하고 있다.  형사소송이라는 것은 판사를 심판으로 놓고, 피고인(변호사)과 원고(주 검사)가 증거를 제시하여 그 증거가 과연 Reasonable doubt(합리적 의심)을 뛰어넘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산술적으로 표현하면 증거를 모두 취합해 보았을 때, 피고인의 범죄사실이 98-99% 확신될 수 있냐는 데에 확신될 수 있다는 대답이 나와야 범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증거를 보아하니 90% 정도 범죄자인 거 같다면, 그는 무죄다.  95% 정도 확신한다면?  그는 무죄다.


2. The People v. OJ. Simpson (오 제이 심슨 판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 소송 케이스 중 하나가 바로 O. J. Simpson(오 제이 심슨) 판결로 잘 알려져 있는, PEOPLE OF THE STATE OF CALIFORNIA v. ORENTHAL JAMES SIMPSON aka O.J. SIMPSON, No. BA 097211, 1995 WL 704342 판결이다.  이 사건은 살인 사건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죄 판결로도 가장 유명한 판결이다.


  미국 프로 미식축구팀의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던 오 제이 심슨은 부인 살해혐의로 붙잡힌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형사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사는 판사 앞에 증거들을 내세운다.  그때 검사가 가져왔던 증거 중 하나가 바로 현장에서 경찰이 직접 수집한 피 뭍은 장갑이었다.  게다가, 검사 결과 그 피는 오 제이 심슨의 혈액으로 증명되었다.  너무나 명백한 증거였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끝까지 그 장갑을 직접 오 제이 심슨에게 끼워볼 것을 주장하고 법원에서는 장갑 시착식이 진행된다.


  미국 전역의 이목을 끌었던 세기의 재판에 모두의 눈길이 집중됐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그의 손에 끼어지던 장갑은 손목 부분이 걸려 엄지와 검지가 아예 들어가지 않았다.  OJ. Simpson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수많은 증거들이 존재했지만, 이 장갑 하나가 너무나 주요한 증거가 되어 배심원은 오 제이 심슨에게 살인죄 무죄를 선고한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겠는가?  앞서 말한 Burden of Proof(입증 기준)였다.  오 제이 심슨 형사 소송에 제출된 증거물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았을 때, beyond a reasonable doubt라는 형사법상 입증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In the matter of the People of the State of California v. Orenthal James Simpson, we the jury... find the defendant... not guilty of the crime of murder and violation of Penal code Section 187(A)..."

PEOPLE OF THE STATE OF CALIFORNIA v. ORENTHAL JAMES SIMPSON aka O.J. SIMPSON, No. BA 097211, 1995 WL 704342


O.J. Simpson의 Jury Verdict 영상이다. 짧은 영상이니 한번 시청해보시길 추천드린다.


  오 제이 심슨은 해당 형사사건에서 무죄인가?  단언컨대 그렇다.  그것이 증거 불충분임에도 그는 확실한 무죄다.  그가 90% 정도 유죄인거 같다 하더라도 그는 확실한 무죄다.  미국 형사소송법 및 헌법에 따라 검사는 이를 항소할 수도 없다.  물론 추후에 그는 민사소송에서 패소하여 엄청난 액수의 민사상 책임을 지게 된다.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의 burden of proof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민사소송에서는 크게 진 것이다.


IV. 나오며

1. 결론

  생각건대, 혐의 없음(범죄 인정 안됨)과 혐의 없음(증거불충분)은 모두 무죄이다.  무죄판결의 경우도 ①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않는 경우와, ② 피고사건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 모두 무죄가 맞다.  이것이 무죄가 아니라면, 법원이 존재할 이유가 없고, 판사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검찰도 그 존재의 목적이 없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그 많은 돈을 들여가며 누군가가 유죄인지 무죄인지의 여부를 따지는 형사재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헌법 제27조 제4항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제275조의2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2. 무죄추정의 원칙과 법교육

  이 글을 쓰기 전, 무혐의 처분과 무죄 판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쓰여있는 글들이 있는지 알아보던 중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를 하나 접했다.


  무혐의는 무죄가 아니라는 기사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① 기자가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과는 다른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거나, ② 무혐의와 무죄 그리고 무고에 대한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기사를 작성하여 발생된 실수라고 생각된다.  해당 기사를 읽어보니,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피고인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할 지라도, 그것이 상대에 대한 무고죄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었다.  이는 법률적으로 옳은 이야기다.  형법 제156조를 읽어보면, 무고죄의 요건으로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의 입증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무혐의 처분이 상대의 무고죄로 바로 연결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과 달리 기사의 제목으로 쓰여진 '무혐의는 무죄가 아니다'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잘못된 사실이다.

제156조(무고)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무죄와 무혐의와 관련된 논쟁들이 수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다시금 일반 시민을 향한 '법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깨닫는다.  특히 우리 일상과 밀접한 '공법', '민사법', '형사법'에 관한 기본적인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무죄추정의 원칙(presumption of innocence)은 결코 값싼 법원리가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다 셀 수 없는 수많은 목숨과 피가 흘러 만들어진 원칙이다.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람에게도 우리 법은 무죄를 추정하는데, 검사를 통해 무혐의 처분을 받아 재판장에 들어가지도 않거나, 판사를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는데도 무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우리 법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법은 법이다.  무죄(죄가 없음)는 무죄다.  무혐의 처분과 무죄 판결 모두 피의자에게 죄가 없음을 의미한다.


법원에서 재판 중인 사람에게도 우리 법은 무죄를 추정하는데, 검사를 통해 무혐의 처분을 받아 재판장에 들어가지도 않거나, 판사를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는데도 무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우리 법은 왜 존재하는 것인가?  법은 법이다.  무죄는 무죄다.  무혐의 처분과 무죄 판결 모두 피의자에게 죄가 없음을 의미한다.


"dubio pro reo"
(when in doubt, for the accused)
(죄책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있을 때, 법원은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다)


It is better that ten guilty persons escape than that one innocent suffer.
(무고한 한 명이 고초를 겪는 것보다 열 명의 범죄자가 도망치는 것이 더 낫다.)

William Blackstone (윌리엄 블랙스톤)






*참고

무죄추정의 원칙과 관련한 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