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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Jun 04. 2016

배제와 관용

해석학의 물음 생각과 진리는 공존할 수 있는가?

모든 현실은 사회적으로 '해석'된다


모든 현실은 사회적으로 '해석'된다. 해석학에 따르면, '해석'의 과정을 거치는 순간 모든 것은 상대적, 주관적모습을 가지게 된다. 쉽게 말해, 들판에 있는 나무는 그 자체로 객관적이지만 나의 인지를 통해 해석됨으로써 나의 주관이 포함된 '내게 해석된 나무'가 되는 것이다.


해석학을 기초로 시작할 때, 우리는 큰 걸음을 시작할 수 있다. 모든 현실은 해석되기 마련이고, 그 해석은 인간을 통해 주관성과 상대성을 갖게 되기 때문에 객관적 진리에 대해 맹목적으로 혹은 무조건적으로 믿는 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되어버린다. 이를 자세히 설명한 학자가 바로 플라톤을 비판하며 이름을 세게에 널리 알렸던 '칼 포퍼'이다.


포퍼는 자신의 책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플라톤을 비판하는 방법론으로 '반증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포퍼의 반증가능성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의심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을 틀릴 수 있고, 특히 '나'는 틀릴 수 있다는 그 반증가능성은 어떠한 것을 '진리'로서 거부감 없이 막연하게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배제한다. 또한 내 자신의 목소리를 '진리'라고 말하면서 말할 수 없도록 만드는데, 나는 이를 성서적 방식으로 해석하여 '가난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표현하고 싶다. 


마태복음 5장 3절
"마음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요"
Matthew 5:3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n the kingdom of heaven"


가난한 마음은 앞서 말한 그대로 '내가 틀릴 수 있다'는 반증가능성의 전제를 의미한다. 내가 '진리'를 알고 있고 이를 모르는 너는 잘못 되었다는 생각은 반증가능성이 결여되어 있기에 결코 가난한 마음이 아니며, 이는 배제를 야기시킨다. 가난한 마음에 배제는 존재할 수 없다. 오직 '관용'이 함께 한다.



피터 버거는 진지하고 일관성 있는 의심은 '관용'의 원천이라고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에서부터 타자에 대한 존중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심이 없이 우리는 발전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을 의심없이 믿음으로서 우리는 정말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나의 생각과 진리는 공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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