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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용석 Mar 09. 2020

시간을 돌려 20대가 된다면, 뭘 할 건지에 대한 대답

아직 계속해서 꿈을 꿀 수 있을까?

1. "20대로 돌아갈 수 있으면 뭘 할 거예요?"

생각보다 자주 받는 질문이다.  세상에 수많은 시간여행 영화가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시간을 뒤로 돌리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진다.  내게도 이러한 질문들이 던져졌었고, 상대방이 이에 대해서 답변하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여러 차례 존재하는 걸 보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 질문을 던져봤었다.


대부분 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꿈꾸었었지만 현재 이루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실컷 놀아보고 싶어요. 어렸을 때 공부만 하느라 제대로 놀아보질 못해서 그게 한이 됐네요" 혹은 "세계 여행을 하고 싶어요, 항상 그것을 못한 게 아쉬워요"와 같은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의대에 가보고 싶어요, 어렸을 때 의사가 꿈이었는데 현실의 벽에 막혀서 결국 의대에 진학을 못했거든요" 혹은 "방송국 pd 준비를 해보고 싶어요, 아버지가 반대하셔서 못했거든요" 같이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결국 이 질문의 답은 자신의 '꿈'과 가깝게 향할 수밖에 없다.


다시, 생각해보시라 만약 여러분에게도 누군가 와서 이렇게 질문한다면,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뭘 할 거예요?" 뭐라고 말씀하실 것인가?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만들 수는 없지만, 생각은 해볼 수 있지 않는가?


2. "제 꿈은..."

며칠 전 미국 워싱턴 D.C. 에서 변호사 시험을 치렀다.  몇백 명이 한 곳에서 일렬로 앉아 시험을 치르는 모습은 참 장관이었다.  내 옆자리는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아저씨가 함께했다.  이틀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마지막 종료음이 울리고 나서야 우리는 간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시험 어려웠지?" 하는 이야기와 함께 시작된 우리 대화는, 서로가 어떻게 로스쿨에 왔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까지 이어졌다.  상대는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이민 1세대로서 콜롬비아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미국에 왔고 로스쿨에 진학해 콜롬비아-미국 사이의 자신과 같은 이민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기 고향의 사람들을 돕는 것이 자기 꿈이라고 한다.  그의 얘기가 끝나고, 이제 그가 특유의 콜롬비아 억양이 들어간 영어로 내게 묻는다.  "How about you?"


20대부터 내 꿈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좀 특별한 법조인이다.  브런치 작가 자기소개란에도 이미 적어놨지만, 나는 법조인이 되어 추후 남북관계와 남북통일을 위한 법제에 기여하고 싶다.  국내법이 완벽한 구속력을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한 남북관계가 밀접하게 연관된 행정업무에서 어떠한 것이 법에 저촉되고, 어떠한 것이 합법의 영역인지 판단하는 역할과 추후 그러한 부분을 법제를 통해 성문법화 하고 싶다.  특히, 헌법과 형법 같은 기본적인 법률을 새롭게 개정하거나 만들게 될 때 이를 설계하는 것을 돕고 싶다.  법이 사람을 규율하기 때문에, 좋은 법은 사람들을 더 행복할 수 있게 만든다는 믿음 아래 이러한 꿈을 꾼다.   대학 교수로서도, 실무 변호사로서도, 통일 법무과의 검사로서도 그러한 목표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필수적인 조건은 '남북관계' 혹은 '남북통일'과 관련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러 국가의 법을 비교법적으로 공부한 '국내법 전문가'여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간단히 내 꿈을 위해서는 한국법을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법학과를 졸업했지만, 학부 4년간 공부했던 법학 지식으로는 그러한 꿈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기가 더딜 수밖에 없다.


콜롬비아 변호사에게 무엇이라 이야기했을까?  짧은 시간이기에 저렇게 길게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나도 너처럼 2개 국가 법을 공부해서 남북관계에 법률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간단히 말했다.  "와, 엄청 힘들어 그거.  내가 콜롬비아 법을 배우고 나서, 미국법을 배우는데 예전에 갖고 있던 지식이랑 엄청 부딪치더라니까?"라며 그는 내게 행운을 빌어줬다.  그리곤, 주변에 있는 자기 로스쿨 친구들에게 "얘는 또 로스쿨 간대"라며 나를 동네방네 소개해주는 바람에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이어나가야만 했다.  (추가로 그는 콜롬비아의 경우 법대를 졸업하자마자 변호사 자격증이 나와서, 자신보다 네 공부가 훨씬 힘들 거라는 얘기를 굳이 함께 덧붙이며 나중에 보자는 얘기를 했다.  물론, 서로 연락처는 나누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20대로 돌아가게 된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나는 망설임 없이, 한국법을 다시 전문적으로 공부할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오래 공부를 했는데, 또 공부를 하냐며 미쳤다고 이야기하겠지만 말이다.


3. "어제까진 30대였지만, 오늘부터 20대로 살기로 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젊음을 갈망하고, 그리워한다.  '꿈'을 꿀 수 있었고, 그 꿈이 현실로 이룰 수 있었던 환경이 그립고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까진 30대였지만, 오늘부터 20대로 살기로 했다」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꿈을 잃어간다는 것이기에.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서른이 되면 그 꿈을 이미 이뤘거나(그 길을 걷고 있거나), 혹은 꿈을 20대의 기억 속에 놔두고 앞으로 달려가게 되는 것 같다.  바로 그러한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우리 또래 사람들은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할 지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는 것일 것이다.


앞서 콜롬비아계 미국인에게 나의 꿈 이야기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돋보기 없이 글씨가 보이지 않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도 변호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시험장에 오는 그런 나라니까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꿈 이야기를 하면,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걱정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그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든다.  '이제 그 나이면 사회에서 자리 잡아야지', '아니 그럼 결혼은 어떻게 할 건데?', '집 살 돈은 언제 벌어?', '애는 언제 낳아?', '아니 그런 것 보다 우선 연애는 어떡하지?' 등등..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걱정'이 되어 나의 어깨에 은근슬쩍 자리 잡는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걱정과 질문에 대해 답을 내렸다.  어제까진 30대였지만, 오늘부터 20대로 살기로 했다고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용기를 잃어간다.  그런데 그 과정을 잘 보면, 많은 이들이  '나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로 인해서 용기를 잃어가는 것 같다.  '이제 서른이니까', 혹은 '이제 마흔이니까'와 같은 생각들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를 잃도록 만든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곤 술 한잔과 함께 작은 목소리로 되뇌게 만든다.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러한 것을 할 텐데... 저러한 것을 할 텐데...'  과거로 돌아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늘 사람들에게는, 과거에 갈 수 있다면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이라는 마음이 존재하고 그러한 마음의 존재는 현재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용기가 현재라는 시간에 가로막혀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잠시 인용했던, 최일봉 선생님의 나이 이론을 적용해보자.  우리의 사회적 나이를 알기 위해, 현재 실제 숫자 나이에 0.7을 곱하는 것이다.  서른이 넘은 내 나이는 (31 x 0.7 = 21.7) 21.7세가 된다.  이제 나 자신에게 묻는다.  '21세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넌 뭘 할 거냐?'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내가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것이 아닐까?  이는 다시 말해, 21.7세라는 숫자가 주는 '용기'를 잃지 않는 바로 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때로는 무언가에 쫓기듯 살게 될 때가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용기를 점점 잃어가곤 했다.  그래서, 이제 조금은 다르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20대였다면 무엇을 했을까? 를 생각한 뒤, 그 생각나는 것을 지금 하기로 결정했다.  이 나이엔 이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가 주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용기를 갖기로 했다.  그래서 난 어제까진 30대였지만, 오늘부터 20대로 살기로 했다.

본인의 글 「어제까진 30대였지만, 오늘부터 20대로 살기로 했다」 중에서..


4. 로스쿨 졸업 후, 또다시 로스쿨에 입학

난 어렸을 때부터 항상 "말 한대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입에 담고 살았지만, 대부분 말 한대로 살지 못했다.  너무 부족한 사람이기에, 정말 가끔 그렇게 살 수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 가끔 있는 일을 해보고자 한다.  어제까진 30대였지만, 오늘부터 20대로 살겠다는 그 말을...  학부 4년, 미국 로스쿨 3년을 마치고 변호사 시험까지 치른 지금, 이제 나는 다시 학교에 입학한다.  이번엔 한국법을 공부하기 위해, 국내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다.


학부에서 한국법을 공부하면서, 한국법의 난이도를 체험해봤던 나이기에 한국법을 공부한다는 것이 다른 학문들과 비교해도 상대적으로도 절대적으로도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일을 저질렀다.  합격의 기쁨으로 가득했던 것도 잠시일 뿐, 오리엔테이션에서 내 옆자리 학생이 97년생이라는 말을 듣고, 큰 충격에 휩싸였다.  사실 걱정도 앞선다.  자신? 전혀 없다.  또한, 20대의 지치지 않는 불같은 체력, 떨어지지 않는 총명함은 이제 온데간데없지만, 함께 응원해주는 가족들의 힘을 받아 새롭게 다시 마음속 꿈을 품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래 어제까진 30대였지만, 오늘부터 20대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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