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이라는 이름

<천 개의 파랑>을 읽고

by 연만두

어느덧 사랑이 없어진 세상이다. 너와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와 너희가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 말고는 온통 그들과 저들뿐인 세상이 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분명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출근길에 우유 바구니에 열쇠 넣고 가기를 깜빡하시면 옆집에서 투니버스를 보며 6시 30분을 기다렸었는데, 어느새 집 안에 들여놓지 못한 택배 때문에 복도 자리 차지하지 말라며 공동현관에 민원지가 붙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상상을 종종 하지만 남에게서만 귀책을 찾을 게 아니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옆집 동생이 복도에서 축구를 해도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금은 윗집에서 전화 소리가 크게 들리면 주인집 아주머니를 향해 핸드폰을 두들긴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싫었다. 남들이 각박한 세상을 만든다며 손가락질하던 나였는데, 나 또한 그들 중 하나였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내가 싫다면 싫은 이유를 바꾸기 위해 나부터 바뀌면 될 테지만, 나는 나에게 귀책의 화살을 돌리기 싫어 활시위를 세상으로 돌리곤 했다.

'저들이 먼저 나한테 깐깐하게 대했잖아. 먼저 사납게 대했잖아. 저들이 먼저 시작했어. 나 때문이 아니야.'

누가 먼저 시작한 건지 알 수 없는 악의 고리가 빙빙 돌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단지 내가 손해 보기 싫어 고리를 끊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뿐이었다. 내가 원하는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소망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함에도, 그게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어째 잘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 마음이 가장 '인간다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인 동시에 피해 회피의 동물이니까. 그런 개체들이 살아남아 지금의 우리가 되었을 테니까.

<천 개의 파랑>에서는 가장 인간답지 않은 존재가 등장한다. 실수로 감정이 프로그래밍 되어버린 경마 기수 로봇, '콜리'이다. 콜리는 인간 아니다 곧, 하나도 인간답지 않다. 원하는 바가 있다면,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손해 보기를 거리끼지 않는다. 콜리는 그 비상한 전자두뇌로 자신이 망가지면 다시 고쳐지기 힘들 것을 알지만, 자신의 오랜 파트너 '투데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자신이 망가지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지, 투데이의 행복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콜리와는 딴판인 존재들이 대거 등장한다. 남을 나만큼 생각할 줄 모르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해주면 남이 좋아하는 줄 알고, 피해 입기가 두려워 남에게 상처 주기를 택하고, 상처를 입어도 아프다 말하기 어려워하는 존재다. '내'가 없기에 남을 나보다 위하는 콜리와 다르고, 제가 좋아하는 것이 없기에 남이 좋아하는 것을 곧잘 해주는 콜리와 다르고, 피해 입기가 두렵지 않아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콜리와 다르고, 상처를 입지 않는 콜리와 다른 존재, 바로 '인간'이다.

두 아이의 엄마 '보경'은 일찍이 남편을 잃고 홀로 두 아이를 키워나가는 강인한 어머니다. 그녀는 어머니로서 굳세게 살아가야 하기에 '나'를 진작에 지워버렸다. 그러나 남편이 그립고 젊은 날의 꿈이 보고파서 들풀처럼 불쑥불쑥 자라나는 '보경'이라는 자아는 그녀를 괴롭게 한다. 그녀는 매번 자아를 지우고 두 아이를 열심히 먹여살린다. 아이들 먹여살리기에 집중하느라 아이들에게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보경의 막내딸 '연재'는 사람이 너무 고파서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시킨 채 살아가는 괴짜 로봇 천재다. 누구보다 사람을 잘 알고 사람에 고픈 연재는 엄마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 연재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바쁜 엄마에게 사랑까지 원하면 힘들 것을 알기에 밖으로 나돈다. 어느 날 연재는 감정이 새겨든 고장 난 경마 기수 로봇 '콜리'에게 연민을 느껴 이를 주워다가 집에서 수리를 하게 된다.

연재의 언니 '은혜'는 소아마비로 휠체어 신세를 평생 지며 살게 된 아이다. 은혜는 누구보다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기에 그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모두가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지만, 그 배려에 숨이 막혀 혼자 살아가기를 택했다. 은혜는 안락사가 확정된 경주마 '투데이'에게 연민을 느껴 살릴 방안을 모색한다.

연재의 친구 '지수'는 좋은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어 사람에게 가장 쌀쌀맞게 대하는 아이다. 눈치가 빠르고 사랑받는 법을 쉬이 파악하는 지수는,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 '연재'를 만나 특유의 무대뽀 방식으로 가까워지게 된다.

이 책은 모순 덩어리들이 모여 스스로의 모순을 인정하는 책이다. 보경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하고, 연재가 사람과 가까워지려 발을 내딛고, 은혜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고, 지수가 친구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연다. 그 모든 시작은 가장 비인간적인 존재, '콜리'에게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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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각기 다르게 '인간다운' 모순을 보여주는 인간들을 향해 콜리는 묻는다. 그리 많은 정보가 입력되어 있지 않기에 본체에 내장된 데이터 마이닝으로 도출할 수 없는 결괏값을 알아내기 위한 순수한 질문.

"왜 '파랑분홍'이나 '노랑회색'같은 색은 없나요?"

"말은 언제 즐겁나요?"

"왜 사랑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나요?"

"당신은 친구에게 왜 친구라고 말하지 않나요?"

인간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모순 덩어리인 이들에게 왜 모순을 품고 있느냐 묻는 질문이었다. 콜리의 질문은 그들에게 파문을 일으킨다. 사랑해서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는 인간이 이유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들이 결국 사랑을 고하도록 만들고야 만다. 이 책은 그토록 '인간다움'을 고수했기에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이들이 못내 사랑을 표현하고 나서야 비로소 끝이 난다.

세상과 단절되었던 연재가 먼저 로봇을 주워와 고치고, 그 로봇을 위해 지수는 친구에게 마음을 열어 다가오고, 그 로봇은 은혜를 기쁘게 해주고 제 파트너를 살리기 위해 은혜의 소원을 이루어주려 하고, 보경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비로소 아이들에게 '걱정된다'라는 당연한 감정을 표출한다. 그 모든 과정은 '사랑'이라 응축할 수 있다. 그래, 이 책은 '사랑한다면 사랑을 표현해라'라는 말을 전하는 책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이 SF 소설이라는 점이다. '공상 과학'이라는 장르에서 사뭇 멀어 보이는 '사랑'이라든지 '서정'이라든지 하는 감정을 주창하는 점은 이 책의 독특한 매력이다.

이 시그러운 모순은 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가장 인간답기에 이기적인 이들이, 가장 이타적이어야 하기에 가장 인간답지 않은 '사랑'이라는 행위를 하면서 행복해지는 모습. 이는 독자의 눈길에 공란을 만들고, 그 부분에 독자의 생각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 빈자리에 걸터앉듯, 나는 마지막 장을 넘겨 덮은 벤치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기적인 존재에게 이타심을 권면하는 이 모순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때 어떤 남녀가 지나갔다. 내 또래로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캠퍼스를 나란히 걸으며 그들은 시끌시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야,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떻게 없냐? 무조건 있지. 솔직히 너랑 나는 완전 찐친 아니냐?"

"아 물론이지. 너랑 나랑은 찐으로 친구야."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았다. 둘은 서로 티격태격 장난스레 밀치기도 하며 걷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장난을 칠 때 힘을 잔뜩 쥔 듯하다가 막상 손이 닿을 때면 힘을 아주 빼버렸다. 여자는 울룩불룩한 바닥을 걸어가는 동안에 남자에게서 초롱초롱한 눈길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둘은 분명히 사랑하고 있었다.

절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통해 사랑을 나누는 남녀를 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의 모순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이 가득한 우리네 세상이었다. 그래, 세상은 더럽고 인간은 악하다. 인간은 고작 욕심 때문에 다른 인간을 대량으로 학살하기도 하고, 고작 제 안위 때문에 수많은 생명의 사망을 적극적으로 묵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들이 할 수 있는바는 사랑뿐인 것이다. 무엇보다 나쁘고 더럽기에, 더 악할 수가 없을 만큼 지독하기에, 이제 이들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그 반대편에 있는 일뿐이다. 무척이나 사랑하기에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내뱉는 두 남녀처럼, 아주 사랑이 많기에 단 한 번도 사랑한다 말하지 않았던 등장인물들처럼.

내가 짜장면이 사천 원이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도 이 지점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예전에는 사랑이 그리 넘치지 않는 사회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넘치지 않았기에, 사랑이 넘치기를 목표로 사람들은 제 몫을 나눌 수 있었다. 사랑이 넘치기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부모님을 기다리며 복도 난간을 타고 오르며 노는 아이를 무시할 수 없던 아주머니는 제 집에서 식혜와 텔레비전을 나눌 수 있었다. 사랑이 없음을 알아서 사랑을 노력할 수 있었기에, 겨드랑이에 이제 털이 한 가닥 올라왔던 어린 나는 옆집 아이가 우리집 대문에 축구공을 쳐박아도 웃으며 인사할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은 사랑이 가득 찬 사회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꽉 차버려서, 사랑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놓일 자리가 없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사랑을 위해 노력하지 않게 되었기에, 문을 활짝 열기에 조금 거슬리는 택배를 보고 분개를 참을 수 없게 된 시대. 사랑을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어졌기에, 그리 늦지 않은 밤에 들려오는 전화 소리에 분노의 민원을 넣고야 만 시대. 그런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이전과 다름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런 시대는 어떻게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물가는 돌아갈 수 없더라도 모두가 사랑을 노력했던 때로 돌아갈 수는 있지 않을까.

/

일전에 내가 창문을 열고 친구와 통화를 길게 하다가 분노한 옆집이 찾아와 내게 쌍욕을 내뱉었던 일이 있었다. 수치스럽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 아주 더 들으라고 스피커폰으로 시끄럽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잠에 들었었다. 다음 날 곰곰이 생각한 나는 '죄송하고 앞으로 주의할 테니 잘 부탁드린다'라는 내용의 손편지와 사과 몇 개를 담아 옆집 문고리에 얹어두었다.

그토록이나 격분하여 나를 죽일 듯이 쏘아붙였던 그 아저씨는 본인도 미안했다는 편지를 담아 우리 집 문고리에 가방을 얹어두셨다. 이제는 내가 무심코 밤에 창을 열고 노래를 들어도 옆집 아저씨는 분노하지 않으신다.

어쩌면 인간답지 않은 일이다. 내가 먼저 큰 욕을 들어 먹었는데, 내가 먼저 굽히고 들어가며 뇌물까지 주는 일이란 손해 보기를 꺼리는 인간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행복해졌다. 욕을 들어 끔찍해졌던 마음이 사과를 통해 싹 풀렸고, 시끄러움에 대한 이해 범위를 약간 더 넓힐 수 있어졌다. 마치 인간답지 않게 먼저 사랑을 표현하고 나서야 행복해졌던 작품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그래, 결국 인간은 너무도 인간답기에 인간답지 않음을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가장 덜 인간다워질 때,

로봇이 가장 덜 로봇다워질 때,

당신이 가장 본능에서 멀어질 때,

이 책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이름을 아우르는 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이다. 우리는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모든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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