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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min lee May 06. 2017

도깨비

초단편소설 2.



"우당탕탕"


학생들이 서둘러 세미나 실로 몰려들어 실내는 매우 소란스럽다.  


"아, 아, 1학년 학생들 모두 자리에 앉았나요? 출석 체크 후에 바로 세미나가 실시되니 바로 자리에 앉아주길 바라요."  조교의 설명이 있은 후 바로 이름을 부르는 출석체크 절차에 들어간다.


나는 넥타이를 만져보고 셔츠 소매를 재킷 바깥으로 당겨보고 학교 매점에서 산 인스턴트 달달한 커피를 한 모금 주욱 빨아본다.  아무리 사람들 앞에 서도 긴장되는 것은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나름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다듬어보고, 목을 오른쪽, 윈 쪽으로 돌려 긴장된 근육도 풀어본다.


"들어오시죠."

"아, 네"


조교의 안내로 향한 세미나실은 그리 크지 않지만 학생들의 수에 비해 너무나 공허해 보였다.  강단 뒤편에서 두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으고 기다리던 나는 조교의 소개로 강단 앞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인사와 함께 학생들의 박수가 들렸다.

"오늘 여러분에게 우리의 삶과 광고에 대해 한 시간 동안 공감의 시간을 나눌 김신이라고 합니다."


인사가 끝나자 학생들 사이에서 수근 수근 대는 소리와 가끔은 웃는 소리도 들린다.


"아, 여러분이 웃는 이유를 알겠어요.  얼마 전 드라마 '도깨비'가 생각나서이죠?  공유의 극 중 주인공 이름이 바로 '김신'이었는데...  웃음소리는 공감하지 않는 뜻으로 알게요.  하 하 하."


학생들 사이에서도 웃음소리가 함께 터져 나왔다.


"사실 저의 본명은 '김신'이 아닙니다.  그럼 제가 여러분에게 이런 신선한 웃음을 주며 이름을 바꾸어 소개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광고의 힘이라는 것이죠.  어디서든 그 광고가 기억나도록 하는 것, 한번 보고도 기억나는 광고, 상품. 그것이 광고의 역할이자, 힘이자, 의미이자,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맞나요?"


"아! 네..."


"아마 여러분들은 제가 기억날 때 날짜나 시간은 기억나지 않아도, 아 그 도깨비 강사님. 공유 닮지 않은 김신이라고 기억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근데 그 기억하는 시간이 얼마나 갈까요?  아마 여러분이 치매에 걸리지 않는 다면 평생을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담합니다.  제 나이가 40이거든요.  아.. 공감을 안 하는 눈빛이네요.  더 많게 보이나 보죠. 하, 하, 지금도 제 머릿속에는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신문이나 잡지, 라디오에서 들었던 수많은 광고들, 상품의 이름들, 이미지가 생각납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들을 다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은 없죠.  아마 수많은 시간을 저장하려고 그것을 디지털 캠으로 촬영한다면 몇 기가, 아니 테라바이트가 나올까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저장공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맞나요?"


학생들도 나의 이론을 수긍하는 듯 연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왜 우리 기억에 이런 광고와 상품의 이미지가 시간이 흘러도 남아있는 걸까요? 과연 어떤 기법과 소비자의 심리가 맞아들었기에 우리는 평생 그 이미지를 갖고 가끔은 그리워하기도 하고, 그것으로 인해 아직도 그 회사의 제품이나 회사의 이미지로 인해 구매행위를 하게 되는 건가요?  광고! 바로 광고가 이런 역할을 하는 거겠죠?  오늘은 이런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 여러분과 한 시간 동안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기로 할게요.  질문은 마지막에 한꺼번에 받는 걸로.,.."


그렇게 시작된 강의는 내가 준비가 프레젠테이션 자료와 사진, 영상자료, 가끔은 어설픈 유행어 흉내나 연예인들의 광고 속 연기, 광고 속 뒷이야기들로 한 시간을 이어갔다.  나름 학생들의 호기심과 호응은 나에게 더욱 열렬하게 강의하고 더욱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려지도록 가속도를 붙이는 역할을 하였다.  


사실 강의 대상이 대학에 갓 들어온 1학년 신입생이라 깊은 내용의 강의는 먹히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편안하게 준비한 것이 오히려 득이 되었다.


학생들의 질문과 답변을 마치고 나는 학생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아직 신입생이라 수업이나 이론에 대해 잘 모를 거라 생각해요.  그저 광고인이 살아가는 혹은 보이는 여러 광고들에 대한 기대, 기대되는 월급 등 여러 가지 여러분의 판단으로 상상의 날들을 보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교수님과 의논을 드렸죠.  제가 일주일에 한 시간씩 여러분의 동아리를 지도하기로 말이죠.  여러분의 선배이자, 동문으로, 앞으로 같은 길을 걸어갈 동반자로서 제가 해야 될 일이 아닌가 싶네요.  물론 큰 기대는 하지 말고, 단지 여러분이 광고라는 것에 이해하고, 빠질 수 있도록 조금 도움을 주고자 함이니, 너무 기대는 말고요.  걱정되는 건 이 동아리에 몇 명이나 올는지 그게 제일 걱정이네요.  부디 누구 한 명은 신청을 해주길... 1:1 그것도 참 재미있겠네요.. 하 하 하.  한 시간 동안 지루한 강의를 들어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도깨비의 '김신'이었습니다.  다음에 한번 더 볼 수 있길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강의를 마치고 인사를 마치자 의외의 학생들의 박수와 호응이 나를 더욱 기분 좋게 하였다.  



그리고 이주일 후 나는 약속한 데로 학교로 가서 스승님을 뵙고 안내를 받아 학회실로 향하게 되었다.  


교수님은 몇 명이나 신청했나라는 나의 질문에 그저 웃기만 하셨다.  그 웃음이 어떤 의미가 될지는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교수님이 먼저 학회실을 열고 " 다 왔니?"라고 질문을 하자 학회실 안에서는 "네"라는 대답이 나왔다.  목소리 보아 한 여덟 명 정도 되는 듯했다.  학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상상외로 많은 인원이 있었다.  눈짓으로 학생수를 대충 세워도 열명은 조금 넘어 보였다.


"열다섯 명이야. 만족해? 라며 교수님이 빙긋이 웃으며 던지셨다.

"많은데요, 기대 이상인데요."라며 나도 웃음으로 답하였다.

"그럼 수고해." 어깨를 툭 치시며 교수님은 밖으로 나가셨고, 이제는 나와 신입생 이제 갓 스물 된 나의 절반의 나이를 가진, 나보다 두배의 열정을 가진 열다섯 명의 학생들이 한 공간에 자리 잡았다.  남학생이 여섯, 여학생이 아홉으로 여학생이 많았다.


"역시 예상대로네요."학생들은 뭐가 예상대로인지, 인원을 말하는 건지 궁금하다는 표현을 눈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여학생들이 더 많네요.  이유가 저 때문이죠?"라고 하자 여학생들은 깔깔깔 웃었고, 남학생들은 '에이'라며 야유를 던진다.


"자 그럼 우리 첫 만남이니 인사부터 하고, 오늘은 앞으로 일들을 계획해 봅시다. 저는 도깨비 '김신'입니다."

나의 인사를 시작으로 학생들이 돌아가면 한 명씩 인사를 한다. 누구는 나의 모티브를 닮아 유명한 드라마 주인공 이름으로 인사하기도 하고, 누구는 일어나서, 누구는 수줍은 듯이, 누구는 밝고 경쾌한 목소리를 떨리며 자기소개를 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저 여학생,... 아 이름이... 맞아 혜지 양이 좋네요.  목소리가 밝고 경쾌한데 너무 긴장해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아이러니한 느낌. 좋네요. 기억에 남겠어요."


"인사를 하면서 느낀 점은 그래요.  그렇죠. 지난 세미나에서 이야기했듯이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 아마 여러분들은 제말을 듣고 지금 자기소개에 임해준 것 같아 되게 고맙게 생각해요.  그런데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억지는 안돼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은 본인도 불편하고 남도 불편하게 만들거든요. 킬힐을 신어보지 않은 여자분이 처음으로 킬힐을 신은 날을 상상해봐요. 그 뒷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상상되죠?  광고도 상품을 어필하는 거고. 여러분은 자신을 어필하는 것이니 되도록 솔직해야 합니다. 몸에 항상 입던 옷을 입은 것처럼. 편안하고 진실되게. 그러면서 단점은 살짝 덮어주는 센스.  제가 처음부터 평가를 너무하네요. 미안해요. 그럼 우리가 한 10주 정도, 열 번이나 그 이상 만나게 될 텐데. 우리가 하고 싶은 거, 오늘은 그걸로 계획을 만들어 봅시다. 여러분이 의견을 주면 오늘은 제가 일단 받아 적고 나중에 그 의견을 편집해서 우리 동아리의 계획을 만들면 좋겠네요. 괜찮죠?"


역시 활기가 넘치는 신입생이라 풍기는 분위기가 신선하다.


그렇게 우리는 '하고 싶은 거'라는 동아리 이름과 10주 동안의 할 일을 정했다.  궁금한 데로, 하고 싶은데로 계획이 완성되자, 모두 만족한 표정이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주가 기대되네요. 나도 열심히 준비할 테니, 여러분들도 바쁘지만 그래도 조금씩은 준비를 해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편하게, 나이도 비슷하니, 나는 여러분 이름 부르고 반말로 할게요. 언짢지 않죠? 여러분들은 나를 음..... '아저씨'로 부르면 되겠네요.  아닌가? '선배님'으로... 교수님이나 선생님은 하지 맙시다.  내가 부담되니... 그럼 다음 주에 봅시다.  아니... 보자... "


아직은 서투른 통성명에 어색하게 첫 만남을 끝내 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나와 천천히 현관을 지날 때쯤 누군가 나의 등을 때리는 목소리를 듣는다.


"아저씨"


뒤를 돌아보니 아까의 아이러니, 이름이... 맞아 혜지라고 했지.


"어, 혜지 학생...."


계단으로 부지런히 따라왔는지 숨이 가쁘게, 멈춰 서서 허리를 굽히고 연실 숨을 몰아쉰다.


"아.. 저 씨... 아니 선배님.  아이고 숨차라... "

"아니 천천히 오지... 다음 주에 볼 건데... 무슨 일 있나요?"

"아니오... 잘 가시라고... 인사... 하러..."

"엥... 아이고 나중에 크게 될 사람이네... 이렇게 확실하게 확인사살로 한번 더 자신을 각인시켜주니... 고마워요. 하 하 하"

"헤 헤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음 주에도 뵐께용..."


웃음과 끝 단어 'ㅇ' 붙임으로 나름 애교를 보여주니.. 이래서 신입생이구나. 신선하구나 싶다.  나도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가는 즐거움과 신선함을 당분간 누려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내가 떠난 그 현관에도 아직도 나를 돌아보는 그 학생을 보면서 나는 손을 흔들어 보여주었다.  그 혜지 학생은 나를 향해 꾸벅하고 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매주마다 함께하는 '하고 싶은 거' 동아리는 딱딱한 이론수업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광고를 중심으로 기법을 설명해주고, 가끔은 그들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그 시절의 광고를 보여주며 나는 나름 향수를 느끼고, 학생들은 '촌스럼움'에 오글거리며 낄낄낄 웃어댔다.


"자 오늘은 다섯 번째 만남이네. 오늘은 영화를 한편 봅시다. 지난주에도 미리 이야기했지  한두 시간 정도 시간을 비워달라고.  나도 오늘은 오후에 반차를 쓰고 나왔네요.  오늘 볼 영화는 '계춘 할망'. 혹시 본 사람 있나?  잘됐네. 한 사람도 본 사람이 없으니. 그럴 거라 예상은 했죠.  배우들은 좋은데 스토리가 드라마 스타일이라 아마 본 사람이 없겠지? 예상은 했지  흥행도 그리 된 편도 아니고. 근데 영화보기 전에 약속 한 가지.  이영화가 참 재미있어요. 마지막에 슬플기도 하고.  근데 우리 오늘은 스토리 보지 말고 영상만 열심히 봤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영화의 각 씬들이 너무 좋거든. 나중에 여러분들이 콘셉트를 잡을 때 화면의 구도를 잡을 때 참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나도 영화를 보면서 장면 장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참 마음에 들더라고. 알았죠?"


"아저씨, 아니 선배님"  어설픈 호칭에 아이들이 웃는다.

"응 혜지야"

"이 영화 '김고은'나오는 영화죠?"

"어 아네, 이 영화"

"아.. 그냥 지난번에 도깨비 검색하다 연관 검색어로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내용은 읽어봤어요.  혹시 '김고은' 영화라 고르신 거 아니에요?  '도깨비 신부'"

"에이...." 아이들은 나의 김신이라는 호칭 때문에 야유한다. 혜지가 너무 과장된다는 것이다.

"혜지는 나를 도깨비로 보는구나.  고마운데. 나 닮았어 공유?" 하며 턱에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들이대며 얼굴 가까이 가자. 혜지가 얼굴을 붉히며 아래로 고개를 떨군다.

"뭐야?" 아이들이 또 야유한다.


나는 혜지에게로 다가가 가볍게 어깨를 툭 툭 치며 "고마워"라고 답한다.


"영화 보자고요, 시간이 갑니다." 나는 급히 상황을 수습하듯 영화를 틀었고, 아이들은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학회실 창에 커튼을 치고, 불을 끈다.


하얀 작은 벽에 영상이 그려진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학회실은 깜박깜박거린다.  제일 뒷자리에서 나는 천천히 학생들의 표정을 보며, '나중에 이놈들 다 울 거 같은데'라며 내심 속으로 쾌재를 불러본다.  천천히 학생들의 얼굴을 보다 혜지에게로 시선이 멈춘다.


매주 준비도 잘해주고, 마지막 배웅도 잘해주고, 순수한, 딱 스무 살 나이에 맞는 얼굴, 밝은 성격, 목소리... 그러면서 갖는 수줍음은 가끔 한 번씩 집에 돌아가 생각나고 살짝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사실 아까 '고마워'하며 어깨를 칠 때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툭 하고 쳤을 때 그녀에게서는 아니, 혜지에게서는 풋풋한 내음이, 설명할 수 없는, 코로 느끼는 후각이 아닌, 피부로 느끼는 촉각이, 신선한 촉각이 느껴졌다. 장면이 바뀌면서 혜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가 반복되었다. 그 빛으로 인한 얼굴 명암이 더욱 그녀의 얼굴 윤곽을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그녀의, 혜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뜩 정신이 들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른 아이들을 신경 쓰듯, 그대로 시선을 옮겨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마지막으로 가면서 치매 걸린 계춘 할망이 어린 혜지의 손을 놓아 혜지를 잃어버린 그 기억을 더듬으며 '혜지야'를 부르며 어린 혜지를 찾고 있는, 김고은은 그 계춘 할망을 찾았을 때, 그 장면에서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이놈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주욱 학생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남학생들은 묵묵하게 화면을 응시하며 감동을 속으로 삭히는 것 같고, 어느 여학생은 아주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기도 했다. 혜지의 얼굴도 한줄기 눈물이 흘러 턱에서 살짝 반짝이며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또다시 응시하게 되는 그녀의 얼굴. 나는 속으로 자꾸 혜지라는 학생의 이름에서 그녀라는 3인 층으로 바뀌어 가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그 여자, 여자.... 자꾸 혜지가 여자로 느껴졌다.  화면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은 더욱 나를 주시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얼굴을...


"아니, 장면 장면을 잘 보라고 했더니... 어때, 재미있지?"

"감동적이에요, 슬퍼요, 재밌어요" 학생들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나름 느낌을 몇 단어로 이야기한다.


"장면은?  장면들도 잘 본 거지?"

"유채꽃배경 때문에 할머니와 혜지가 잘 보여서, 몰입이 잘되는 것 같아요.  대사가 별로 없어도 서로 교감하는 것이 느껴져요. 기다란 방파제 같은 돌담에서 담배를 피는 혜지의 심정이 잘 이해돼요." 등 나름 장면들을 신경 써서 본 듯했다.

"탁월한 선택이세요. 선배님. 흑.." 밝은 목소리가 나오다 이내 울음을 내는 혜지.

"아! 그러고 보니 주인공 이름이랑, 혜지 이름이랑 같네..."


모두들 눈물진 얼굴로 한바탕 웃는다. 혜지는 나름 부끄러워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본다.

"아! 이거 선배님 혜지 때문에 고른 영화 아니세요?"


또 한 번 다들 한바탕 웃는다. 옆의 짓궂은 남학생이 '선배님 얼굴이 빨개졌네요'라며 툭 옆구리를 친다. '야, 많이 웃어서 그래'라며 나도 그 남학생의 옆구리를 툭 친다. '혜지 얼굴도 빨개'라며 다들 놀려대며 웃자, 그녀도 손사래를 치며 '아냐, 아냐'라며 활달하게 웃는다.  보기 좋아 보인다. 그런 그녀가 좋아 보인다. 좋다.



그날 이후 나에게는 남몰래 고민이 생겼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외치고 싶은 그 사람의 심정. 자꾸 그거와 닮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홀로 사는 자취방에 돌아가 누워 있으면 자꾸 그녀가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웃는다. 32살에 마지막 연애를 끝으로 나는 홀로 지낸다. 그리고 일과 사랑에 빠져, 나 자신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하지만, 회사에서, 사회에서 인정받는 '나'로 변해 있었다.  마지막 연애는 그저 싱겁게 끝나 버렸다.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결혼'이라는 형식에 얽매여 있었으며, 그것이 깨져버리자, 나의 연애세포는 죽어버렸고, 사랑의 감정은 말라버렸다.  그동안 누가 다가오더라도 형식으로 일관하여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으며, 업무적인 태도로 거리감을 두었다.  사실 이 후배들 동아리 프로젝트는 2년 전부터 나를 깨닫게 되면서 무 언간 신선한 환기가 필요한 나를 위해 계획한 것이다.  2년 전부터 졸업한 학교를 찾아가 교수님을 만나고, 교수님들이 후배들을 위한 무언가를 해보자는 권유를, 제안을 받았으며, 심사숙고하다 결정한 것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는 부분에 대해 부담이 있었으나, 나름 자리를 잡은 상태라 회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허락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런 나의 연애세포가 조금씩 살아나는 것인지, 사랑이 샘물이 조금씩 솟아나는 것인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라 조금은 당황스럽고, 그 대상이 이제 갓 스물의 여학생이라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당황스러웠다. 어쩌면 나는 '되지 않을'것을 고민하는 것이라 마음은 더욱 편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나라니' 생각하면 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어, 생각하면 항상 마무리는 헛없는 웃음과 도리질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덧없음'은 '욕심'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어처구니'없음은 '소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가끔은 그녀의 메신저 사진을 훑어보기도 하고, 다시 한번 '뭐 하는 거니' 스스로를 다그치고 혼내기도 했다. '꿈'이라도 나타나면, 다음날 아침 깨면서 '진짜 뭐야'라고 생각하고, 복권방에 들러 복권을 사고 있었다.  나 자신이 하나가 아닌 둘이 되어 갈등하는 것 같았다.


동아리 수업에 가끔 그녀를 응시하는 나 자신에게 '정신 차려'라고 스스로 각성하기도 했다.  나는 좋았다. 그녀의 젊음, 이쁨, 밝음이 좋았다.  그것이 내 내면의 잠자고 있던 감정들을 깨웠는가 보다. 마치 '백설공주'가 왕자의 입맞춤으로 '독사과'로 인한 깊은 잠에서 깨듯이 나도 그런 상태인가, 공감이 들었다.


퇴근 후 욕실에서 물의 온기로 뿌옇게 된 거울을 오른손으로 닦았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다시 오른손으로 얼굴부터 굴곡진 가슴, 볼록한 아랫배까지 물기를 쓸어내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고 거울을 보았다. 언뜻언뜻 보이는 내 얼굴.  '어쩌면 좋니? 하며 거울 속의 나에게 물었다. 거울 속의 그도 나에게 물었다. '좋은 추억만 갖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느낌. 누군가 손을 내밀어 나를 끌어올려주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 손이 그녀의 하얀 손이길 바라는 소망이 들었다.  '사랑하고 싶다.'  그렇게 벌거벗은 채로 욕실 바닥에 앉아 두 무릎을 어므리고 두 팔로 감싸 않은 채로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온기로 뿌옇게 뒤덮인 그 공간엔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만이 메아리쳤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온수로 데어진 나의 몸에 떨어질 때마다 한기를 느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질 때마다 나는 온몸에 곤두세우고 간헐적으로 몸을 떨었다. 그리고 가슴 끝이 바싹 오그라서는,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마음으로 생각으로 감정으로 그녀를 보는 나는 그럴수록 혜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그럴수록 더 다가오고, 물어보고, 배웅하고, 내가 좋아하는 달달한 인스턴트커피를 건네주고 슬며시 돌아갔다. 한 번은 그녀를 손을 뻗어 어깨를 잡아 돌려 얼굴을 보고 참아왔던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남의 이야기인 것처럼 소재를 던지자, 오랫동안 굶은 늑대들처럼 모두들 한 마디씩 쏟아내었다.

 "에이 그건 아니지, 생각해봐, 그 사람이 스무 살에 애를 낳으면 자기 딸 친구잖아."

 "아니 너는 언제 시대 사람이냐? 요즘 연예인들 나이 차이나고 결혼하는 것 못 봤어? 사랑은 그냥 사랑인 거야. 나이건 국경이든 간에. 너도 네 식구랑 여섯 살 차이 나잖아. 생각해봐 너 대학교 1학년 때 네 와이프는 초등학교 6학년이야. 대학생이 초등학생 사귀는 거랑 같은 거지. 너도 그렇잖아."

 "야, 여섯 살은 양호한 거지, 스무 살은 아냐..." 오랜만에 제대로 된 토론 주제를 제시한 건지, 뜯어먹을 안주거리를 던져준 건지 다들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다, 주인의 제제를 받았다.  그리곤 "이거 네 예기 아냐? 맞지? 너 요새 대학교 1학년들 수업한다며,..  맞네... 너 마흔 살, 1학년 스무 살. 네 예기구먼 뭐." "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신이가 그럴애냐? 그럴 능력도 없어.  아마 애들한테 잔소리하고 뭐, 그래서 애들도 그만두고 싶어 할 걸?"

"아냐 아냐 상황이 너무 맞아. 네 예기 맞지, 요거 요거 요거, 늦바람 들더니 스무 살을..." 하던 회사 동료 놈의 다그침은 여섯 살 차이나는 와이프의 전화로 끝을 맺게 되었다. "야 나 들어간다. 낼 사무실에서 보자."

그러자 옆의 또 다른 동료 놈이 "아니지?"라며 툭하며 던져본다. 마치 부럽다는 듯이, 마치 반드시 아닐 거라는 눈빛으로...

"야, 아냐, 아냐, 내 친구 놈 이야기라고... 미쳤냐?  마셔.. 얼른 마시고 가... 늦으면 택시비 많이 나와.. "

미천하나마 회사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이야기한 내가 바보라는 결과만 얻었다. 나는 바보다.  남들의 연애 이야기는 그저 술자리에서 안주로만 사용된다는 거,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쁜 놈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불편하면서 긴장되면서 행복한 삶을 이어가는 동아리 수업이 끝나갈 때쯤,


나는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현장 체험을 권유하였다. 실제로 매장을 가보고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광고의 콘셉트와 주제, 디자인에 대한 느낌을 나눠보자는,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활동을 새기자는 의미에서 뒤풀이도 겸해서 말이다.  역시 학생들의 호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마지막 동아리 수업 날 모두 화려한 시내 중심가에서 세네 개 조로 나뉘어 관심 있는 매장 등을 다녀보고 약속 장소에 모여 의견을 나누고, 저녁을 나누고, 술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학생들의 현장 평가는 기대 이상으로 놀랍게 느껴졌다. 학생들은 모두 나의 덕분이라며, 건배제의도 하고 박수도 치고, 술에 취한 한 남학생은 꼭 선배님 회사에 들어가서 선배님한테 배우고 싶노라 말하고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걸 모두 쏟아내었다. 물론 먹은 것뿐만 아니라 말도 쏟아내었겠지... 나쁜 놈... 시간이 늦어지면 신입생들의 귀가나 기숙사 출입제한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파장을 권한 나는 모두에게 너무나 감사했다고 인사를 했다.

"한 학기 소중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은 1학년이야. 공부만 취업만 생각하지 말고 즐거운 젊음 시간을 보내기를... 다음에 보자.."

"선배님 내년에도 보는 거죠?" 다들 꼭 봐야 한다는 협박 겸 간절한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렇... 지? 그렇겠지. 하 하하"라며 왠지 모를 속 시원하지 않은 답변과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눈빛을 보았다.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은 눈빛, 꼭 보아야 한다는 간절함으로 나는 느꼈다. 나는... 그냥 나는 그렇게 느끼고 싶었다.


모두들 헤어지고, 화려한 간판 불빛을 바라보면 중심가를 지나, 택시 정류장에 도착한 나는, 정류장 조그만 돌 위에 앉아 택시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드리워지는 눈앞이 그림자.  누군가 내 앞에 서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내음을 나는 느끼고 있었고,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녀다. 혜지다.

"어, 안... 가고, 여기서 택시 타려고?"

"네, 택시 타려고요..."

"어디 가는데..."

"집에요..."

어디라는 말이 어느 방면이라고 물었는데, 막상 집이라고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나는 웃어 보였다.

"바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니죠?"

"어?  나?  그렇지 나야. 혜지 먼저 오는 택시 타고 가, 가는 거 보고 가야겠다. 멋있게..."

"하나도 안 멋있어..." 그녀의 말에서 '요'가 사라졌다.

"어디 가서 말해요. 우리." 우리라는 말에 갑자기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이 솟구친다.

"그래, 말하자 우리, " 나도 이제는 후회라는 감정을 느끼고 싶진 않다. 더욱이 나에겐 술이라는 방패가 있다.


그렇게 조금 걸어 한적하지만 한적하지 않은, 조용하지만 조용하지 않은, 나무들과 간판들이 불빛이 어우러지는 작은 공원 벤치에 앉았다. 서늘한 바람이 휙 하고 지나갔다. 아니 바람이 아니라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바람 같은 그 무엇이었다.


"저한테 할 말 있잖아요?"

"할 말... 아니... 아니... 있는 것 같아... 아니 있어" 부정에 부정을 더하며 나는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를 모호한 답을 한다.

"하세요 그 말... 왜 안 해요?" 평소와 같지 않은 당돌함이 느껴지는 그녀, 하지만 맑고 경쾌한 목소리와 떨리는 수줍음은 그대로이다.

"너에게 말해야 하는데... 할 수 없을 것 같아..." 진짜로 나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말해야 한다면서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또 뭐예요..." 그녀가 나를 다그친다. 그러지 말기를 속으로 빌어본다.

"너는 아닌 것 같아... 너에게 할 말도 아닌 것 같아..."

"나 맞아요... 그러니 말해봐요. 할 말 있잖아요..." 그녀가 또 다그친다. '하지 마'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그녀를 뒤로 두고 터벅터벅 걸어간다.


"나 보여요... 나 알아요... 무슨 말하려는지." 그녀가 조그맣게 외친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좋아해요.  아저씨... 많이... 이제 아저씨도 말해요... 하고 싶은 말... 나한테"


말 그대로 심장이 쿵하고 멈추는 것 같은... 아니 그다음에 영화'벤허'에 나오는 경마장 명장면의 음향소리처러 나의 심장이 '두 다다다다'하고 계속 북을 치듯 두드려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알고 있었구나, 너도 그랬구나'


"그래 나는 너를 좋아한다.  사랑한다. 연애하고 싶다. 너랑..... 그 말이 하고 싶었다... 너에게" 말했다. 주저 없이, 오히려 더 보태서... 연애하고 싶다고...


그녀가 달려와 나의 등 뒤로 안겼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내음이 느껴진다. 툭하고 어깨를 쳤을 때의 그 내음. 나는 하늘을 보았다. 현란한 간판 불들로 인해 하늘은 까맣다.  나의 속도 까맣다. 머릿속도 까맣다.  조심스레 나를 안은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아 나의 가슴으로 끌어들여 더욱 나와 밀착되게 당겼다. 그리고 이내 조심스레 손을 풀어 아래로 두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과 두 눈을 응시하였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이 조용해지더니 '삐'하며 이명 증상이라도 나듯 모든 소리가 하나로 들렸다.


"고마워... 그랬구나.... 나도 그랬는데... 고맙다. 정말... 난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고맙다 정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도깨비가 자신의 몸에 박힌 검을 뽑아 사라지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 감정을 그녀에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무슨 생각이 날까? 지금 나는 오로지 '고맙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그런 '고맙다'라고 하는 말을 하는 나를 그녀는 바라보며 이해한다는 듯이, 알겠다는 듯이... 그런 호응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양쪽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만져주고, 이내 돌아서 터벅터벅 걸어간다.  그녀는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무언가 소리가 들리지만, 나는 지금 들을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을 스쳐 지나가고, 거리를 걷고, 거리는 환해지다 깜깜해지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나는 바로 누웠다. 그리고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들어닥칠때 마치 긴 꿈을 꾼 것처럼 아련한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꿈이었던가? 맞나? 배시시 다시 헛웃음을 지어본다.



추운 겨울을 지나면 봄이 온다. 봄에는 꽃이 핀다.


특히 대학교에는 이쁜 웃음꽃이 핀다. 남학생이건, 여학생이건 우리 시절의 대학의 낭만은 여전히 꽃을 피운다. 다행이다. 이런 날들이 계속 이어져서. 너희들도 그걸 느끼고, 혜택 받을 수 있어서, 하지만 이시절이 가면 모두 다시 급행열차를 타야 하는 사람들처럼 달려 나갈 것이다. 그러니 더욱 느껴라, 받아라, 젊음이여, 이쁨이여, 밝음이여.


나는 교수님의 권유로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광고 관련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그리고 동아리도 신입생을 중심으로 지도하고 있다. 여전히 그들에게 활기찬 에너지를 받고 누리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복도에서 혜지를 보았다. 친구들과 웃고 사물함에 책을 꺼내며 장난도 치고, 그 밝은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정도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현관 계단을 나설 때 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달달한 인스턴트커피를 건넨다. 나는 햇살에 빛나는 그녀의 얼굴을 잠시 보고, 커피를 받은 손을 들어 감사 표시를 한다. 걸어간다. 빨대를 꽃아 한 모금 마시니 달달함을 목이 먼저 느낀다. 그리고 재킷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폰 진동소리, 짧게 한번. 문자가 왔다. 잠시 멈춰 문자를 확인한다.


'고마워요, 그리고 언제라도.'


나는 문자를 한참 들어다 보고 휴대폰을 다시 재킷에 넣고 걸어간다.  달달한 인스턴트커피가 좋다. 날이 좋다. 기분이 좋다. 지나가는 여학생들의 웃음과 이야기 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좋다. 그리고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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