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펑(雷锋)
일단 중국 공항에 떨어진다면 이 나라에서 여행을 하든, 공부를 하든, 사업을 하든 반드시 자주 보게 되는 중국인이 몇 있다. 일단 안젤라베이비는 공항에서부터 지하철을 비롯한 곳곳에 있는 광고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얼굴이다. 그리고 물건을 계산을 할 때는 겹겹이 누워있는 마오쩌뚱이 그려진 지폐 한 장을 꺼내며 그의 얼굴을 확인한다. 또 매일 뉴스나 신문에서는 시진핑 사진과 함께 담화, 방문 일정을 실으니 그의 얼굴도 경비아저씨 얼굴만큼이나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인기를 타는 연예인인 안젤라베이비는 예전만큼 많은 광고판을 차지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모든 결제가 가능하게 되니 더 이상 마오쩌둥의 얼굴을 확인할 일도 없어졌다. 또 신문을 널어놓고 팔던 좌판들이 사라지고 나니 인터넷 뉴스를 직접 찾아보지 않는 이상 시진핑을 보는 일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 사람, '레이펑(雷锋)' 만큼은 옮겨 다니는 유행과 시대의 변화에도 사라지지 않고 그의 얼굴은 더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 사람을 알기 전에는 몇 번이고 모르고 지나쳤겠지만 알고 나면 이 사람의 얼굴은 중국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거리를 따라 이어진 담벼락에는 빨간 페인트로 얼굴의 음영을 강조해 그린 레이펑의 모습을 볼 수 있고 학교나 아파트 입구에 내걸린 게시판에는 '레이펑을 본받자'라는 문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레이펑(雷锋)은 누구인가? 레이펑은 현대 중국의 애국주의, 공산주의 사상, 도덕정신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가난한 시골 출신의 인민해방군 병사로, 살아서는 인민을 돕는 일에 기쁜 마음으로 나서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고 22살 젊은 나이로 숨진 뒤 발견된 그의 일기에는 마오쩌둥(毛泽东) 연설에 대한 감상과 당에 대한 충성, 사회 일꾼으로서의 다짐과 결의를 적은 내용으로 가득했다. 레이펑의 이야기를 들은 마오쩌둥은 그가 숨진 이듬해 1963년 <인민일보>에 친필로 적은 글을 공개했다. -'레이펑을 본받자(向雷锋同志学习)'
그 이후로 '레이펑을 본받자'는 전국적인 구호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레이펑 정신(雷锋精神)을 본받고 계승하기 위한 교육과 행사는 학교와 지역사회를 넘어 전국적으로 행해진다.
중국은 레이펑 정신을 가리켜 중국 전통문화의 시대적 계승이라고 한다. 즉 중화민족의 문화적 미덕과 사회주의 사상을 결합한 현대 중국 문화로 본다. 레이펑 정신은 현대 중국 사회 전반에 그 뿌리가 박혀있다. 관공서에 대문짝만 하게 걸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간판이 그렇고, 아파트 입구 게시판에 적힌 '레이펑 정신으로 문명사회 건설하자'라는 글귀가 그렇다. 12가지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은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서도 볼 수 있고 식당 테이블 위 아크릴 거치대에도 올려져 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곳곳에 내걸린 '타인에게 성의를 다하고, 기쁜 마음으로 남을 도와주는' 레이펑 정신을 내가 보통의 중국인에게서 느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투에서는 기쁜 마음을 찾아볼 수 없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행정절차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내 일이 아니라서 난 모른다'라는 식의 답변에서 성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재밌는 것은 인간적인 실천을 강조하는 레이펑 정신이 최근 들어 기술을 통해 실현된다는 점이다. 사람이 대면으로 처리해야 했던 행정 서비스들이 기술로 대체되면서 오히려 더 신속하고 친절한 레이펑 정신을 느끼고 있다. '기술은 언제나 당신을 향합니다'라는 모 회사의 광고 카피가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