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대신 불쌍한
저는 아프리카 동북부에 위치한 조그마한 나라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회사의 파견을 받아 여기까지 왔으나 가족들은 같이 올 수 없는 형편이라 혼자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일 년에 두 번 정도 방문하고, 방문할 때마다 두어 달씩 같이 있다 갑니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르완다가 국경을 봉쇄하는 바람에 3월에 왔던 아내는 겨우 사흘 밤을 자고는 가버렸습니다. 이후로는 계속 저 혼자이고, 당분간은 또 계속 저 혼자일 것 같습니다. 국경이 열리더라도 병원이 부실한 르완다에 아내를 살게 하는 일이나, 역시 코로나바이러스로 어지러운 한국 땅에 딸내미 하나만을 남겨두는 일은 참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불금을 맞는 남자가 됐습니다. 불타는 대신 외로움에 불쌍하기만 한 밤...
혼자 살면 참 외롭습니다. 저녁에 퇴근하여 아파트 문을 열고 집 안 가득히 차있는 짙은 아프리카의 어두움을 대할 때, 온통 영어와 불어로만 나오는 TV를 보면서 혼자 차린 맛없는 밥을 꾸역꾸역 먹을 때, 밤이 되어 모기장이 처진 킹 사이즈 침대 위로 조심조심 혼자 기어들어갈 때 특히 외롭습니다. 주말 아침에 눈을 떠 제게 다시 주어진 48시간을 아무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혼자 보낼 생각을 하면 그 외로움은 극에 달합니다. 지나간 5월 제 생일에는 제가 끓인 맛없는 미역국을 먹다 심술이나 그만 싱크대에 던져 버릴 뻔했습니다.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날이면 아내가 해준 따신 밥이 더 생각나고, 서울의 아내와 딸과 통화를 하고 나면 나 혼자 여기서 뭐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에 외로움이 더 짙어지기도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동료들, 교민들과 어울리지 못하니 외로움이 더 한 것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전에는 퇴근 후 동료들끼리 가끔 모여 술이라도 한 잔 하며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면서 평일을 보냈고, 테니스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주말을 정신없이 보냈었는데 이제는 모두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요즈음에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식당에 들어가 앉는 일도 불안하기만 하여 시간이 되면 다들 말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에 바쁩니다. 회식도 없고, 교회 예배도 없고, 테니스 레슨과 게임도 없으니 말을 거의 안 하고 지나가는 주말이면 입에 거미줄을 쳐도 될 지경입니다.
길기만 한 주말의 외로움을 달래려 혼자서 할 수 있는 여가생활도 이것저것 시도해봤습니다. 온라인 고스톱에도 며칠 빠져봤다가, 한 때 집중했던 바둑이 생각나 온라인 바둑사이트에도 기웃거려봤는데 다 포기하고 나왔습니다. 진짜 돈은 아니지만 판돈을 순식간에 잃게 만드는 야박한 온라인 고스톱이나, 수 계산할 새도 없이 급하게 따라가야 되는 오목 같은 온라인 바둑은 제게 맞지 않고 오히려 짜증만 유발했던 탓입니다. 넷플릭스에도 가입해 보고, 유튜브 동영상도 열심히 찾아보고 있으나 왜 이리 재미없는 콘텐츠들만 잔뜩 모아놨는지... 맨날 뒤적이는 게 일이라 이마저 헛수고로 끝난 밤에는 더 외롭기만 합니다.
인생은 원래 고독한 것이라는 데 하필이면 꼭 제가 이렇게 사서 외로울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그러다가도 한국과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외지에서 외로우니 좋은 점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있습니다. 가족들이, 친척들이, 친구들이 그리고 서울의 동료들이 정말 소중한 존재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게 그 하나이고, 복잡하고 정신없는 한국 사회가 그리워졌다는 게 그 둘입니다. 하루빨리 르완다의 국경 봉쇄가 풀어지고,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좀 진정되어 한국으로 휴가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외로움은 이제 정말 사양입니다.
2020년 6월 3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