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화려한 르완다 병력(病歷)
르완다에 살면 아플 일이 참 많습니다. 조심한다고 조심해보지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덜컥 덜컥 질병의 올가미에 걸려듭니다. 몸이 원래 약한 탓인지 혹은 르완다에서 일하면서 받는 지나친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진 탓인지 저는 자주 아픕니다. 그것도 종류가 다양한 질병을 이유로 병원 신세를 수시로 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중 하나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는 처지라, 신세 한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제가 르완다에서 처음으로 걸린 질병은 말라리아입니다. 말라리아는 아직도 전 세계 사망률 1위의 질병으로 몹시 위험한 질병입니다. 물론 치료를 제때 받으면 사망하는 경우는 드물고,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거나 아니면 증상을 감기쯤으로 무시하다 치료 시기를 놓쳐야 죽습니다. 말라리아는 초기 증상이 고열과 오한과 두통이라 한국에서 흔히 겪는 몸살감기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물론 그 증상들에 더해 복통과 설사도 따르는데 외국인이나 현지인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환자들이 초기에는 감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르완다 모기가 한국 것들과는 달라서 상당히 조용히 와서 살짝 물고 가는 바람에 모기에 물린지도 모르거든요. 재작년 코이카 시니어 봉사단원 한 분도 갑작스레 돌아가셨는데 부검을 안 해봤지만, 아마도 말라리아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았습니다. 발령받고 한 달 여가 지난 어느 날 아침부터 몸이 으슬으슬하고 두통이 심한 데다 배도 살살 아팠습니다. 물이 맞지 않아 설사야 늘 달고 사는 처지였어서 그날 아침의 설사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습니다. 몸살감기라 여기고 못을 껴입은 채 달달 떨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저를 보고 동료들이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급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진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는데 말라리아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제게는 큰 충격이었지만, 농담처럼 검사 결과를 알려준 인도네시아 의사의 처방대로 치료제를 링거로 맞으며 3박 4일 입원한 끝에 완치됐습니다. 입원 중에는 말라리아로 고생했다기보다는 약이 너무 세서 어지럽고 속이 쓰린 데다 식당이 부실하고 병실이 허름하여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에서 하듯이 바쁜 일정을 맞추느라 며칠 야근하면서 사무실에서 말라리아 모기에 물렸던 것 같습니다. 미련하게 감기라 고집하고 계속 근무했더라면 저는 죽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말라리아 외에는 자질구레한 병들에 걸렸습니다. 장염 2회, 식중독 2회, 아메바 감염 3회,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감염과 잇몸 감염에 걸렸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일주일 정도 약물 치료로 끝났습니다. 모두가 깨끗이 소독하지 않은 야채로 인하여 생긴 질병들이었습니다. 햄버거에 든 상추는 빼고, 샐러드에는 손도 안되고, 스테이크에 딸려 나오는 당근이나 양배추도 그냥 버리는 등 식당에서 극도로 조심하기는 하지만, 수시로 이런 내과 질병에 걸려드는 걸 보면 아마도 저의 자체 방어 시스템에 구멍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만 특별히 더 아픈 건 아니었습니다. 동료 중에는 저처럼 장염이나 식중독에 걸린 사례가 많았고 심지어 저보다 더 지저분한 케이스들도 있었으니까요. 믿기 어렵게도 두 사람이나 빈대에 옮아서 가려움증으로 심하게 고통을 당했었습니다. 한 명은 임차한 단독 주택의 자기 침대 위에서, 다른 한 명은 급한 일로 오토바이 택시를 탔다가 헬맷에서 빈대가 옮겼습니다. 둘 다 박박 긁어대며 현지 치료를 몇 주나 받다가 도저히 안되어 둘 다 한국까지 후송 다녀왔습니다.
질병이 흔하니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게 됩니다. 다행히 사설이지만 의료보험이 잘돼 있어서 공짜로 치료와 약을 받을 수 있으니 금전적인 부담은 없습니다. 매번 혈액 검사와 대변 검사가 귀찮고 에이즈가 겁나니 제 팔을 찌르는 저 주사기가 새 것인지 신경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큰 일은 아닙니다. 죽을 만큼 심각한 질병들은 아니니 두려움을 가질 일도 아닙니다. 다만, 귀찮고 불편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위생에 더 신경 쓸 따름입니다. 혼자 살면서 죽 쒀 줄 아내도 없는 데 아픈 건 진짜 서럽거든요.
2020년 10월 7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