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살, 내 생애 첫 이사
우리 부모님은 부동산에 관심이 없으셨다.
그냥 집은 '거주'의 기능을 하는 곳이라 생각하시며
할머니를 모시고, 할머니와 살던 곳에서 그냥 그렇게 계속 살아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한 동네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쭈욱 한 동네에서 살아왔다.
40살 정도 되어 결혼하게 되었지만
남편이 집도, 차도 없어서 그냥 내가 사는 집에 들어와서 새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이다.
한 장소에서 3대가 가정을 꾸린 셈이다.
다행히 그 집은 할머니 소유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아버지의 자가가 되었고
아버지는 퇴직을 하신 후 경기지역으로 귀농 아닌 귀농을 하시면서
그냥 살던 내가 그곳에 혼자 지내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내가 마련한 거주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낡은 주택이 되어버렸지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
그렇게 2년 반을 지냈다.
사실 이렇게 오래 지낸 나의 거주지는 서울의 중구 쪽인데
강남 및 경기지역이 정신없이 개발되는 사이에 이곳은 낙후지역이 되어버렸고
바로 옆 금호, 옥수, 성수를 비롯한 성동구가 정신없이 발달하는 사이
이곳은 오래된 빌라와 주택 그리고 오래된 아파트가 되어버렸다.
재개발 이슈가 언급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쉽게 시작되지 못하다가 작년 가을 무렵부터 이주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우리도 이사할 집을 알아봐야 했다.
중간에 여기저기 꾸준히 청약도 넣어보았지만 되지 않았고
여기저기 전셋집도 알아보았으나
내가 모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남편이 나 정도라도 돈을 좀 모았으면 한결 쉽게 문제를 해결했을 거라는 아쉬운 마음이 간절해진 시기다.
사실 아기에게 IB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
IB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초등학교 근처의 동네로 이사 가고 싶어 부동산을 찾아가
인근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기도 했는데
내가 마련할 수 있는 최대치의 보증금으로는... 웃풍 심한 30년 된, 작은 아파트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았다.
그것도 상당한 대출을 끼고.
그래서 다시 살던 동네 부동산을 보다가
보증금과 집 컨디션이 그럭저럭 괜찮다 생각 든 곳을 발견했다.
정말 살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아파트였다. 1999년도 아파트긴 하지만 수리가 되어 깔끔했다.
이곳으로 정했다.
그렇지만 이사하는 것이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부동산 사이트를 일 년 정도 들락 거리면서 대략적인 보증금컨디션을 맞춰 맘에 든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 후에도 체크하고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특약 같은 것들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계약해야 하며(우리 부부는 둘 다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나름 검색해 보고 부동산에 갔지만 정신없어 제대로 본 게 맞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보증금이 백 프로 현금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대출도 알아봐야 하고
백 프로 현금으로 한다 해도 어떻게 돈을 끌어 마련할 것인지 고민해야 했다.
게다가 결홀할 때 가구와 가전을 하나도 안 했던지라 하나부터 열까지 검색해 보며 정해야 했다.
어떤 회사의 어떤 가전을 할지 리스트 작성, 매장 가서 실제로 보고 설명 듣기, 가격 비교 등
가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직 들어가지 않은 집의 공간감이 없어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을... 거의 나 혼자 해야만 했다.
참, 이사 업체와 입주 청소 정하는 것도 있었네...
뭐 하나 정하기 위해서 계속 검색하고 엑셀 파일로 정리하고 남편에게 공유해서 결정.
평소 가전과 가구에 관심이 없었고 이에 대한 사전지식이 하나도 없던 나는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정보를 찾았고, 혼자 여기저기 다니며 상담도 수없이 받았다. 그렇게 몇 달을 발품을 팔았다.
직장도 다니고
아이 등하원도 내가 다 했고
퇴근도 내가 남편보다 빠르기 때문에 아이 저녁도 챙겨 먹여야 했고
그러면서 이사 준비를 나 혼자 하는 듯한 이 상황이 마음을 더욱 힘들게 했다.
남편은 '일'만 하고도 '힘들고 피곤하다'를 입에 달곤 뻗기 일쑤였으며
밥 먹거나 화장실 가거나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의 틈새 시간에는
SNS로 릴스나 숏츠, 당구나 게임영상 같은 것들을 보더라.
한 번은 너무 짜증이 나서, 그런 틈 나는 시간에 필요한 것들 검색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자기에게 숨 쉴 틈도 안 준다며 버럭 화를 내어 또 크게 싸웠다.
뭐 여하튼 이래저래 잠자는 시간 줄이고 하며 이사 전 많은 것들을 준비했고
이사 짐 싸고 정리하고는 내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을 조금씩 받아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해서 살고 있다.
이사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40년간 이사 한 번 안 하고 살아온 세월이 고맙게 느껴지더라
(사실 이사를 하면서 자산을 늘렸어야 했는데, 그게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란 것을 체감함)
묵은 짐을 정리했어야 했고 새 살림을 싹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더 힘들게 느낀 것일 수도 있겠다만
여하튼 이사를 다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이곳에 정착해서 지낸 지 이제 3달 정도 되었으려나.
아이도 좀 나아진 환경에 좋아하고
나도 나름 만족하며 지내는 중이다.
다음 이사는 언제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빨리 하게 될 수도 있고, 생각보다 늦게 할 수도 있고)
미리 맘 단디 먹고
비우기를 실천하며 살아봐야겠다.